영화 "1987" 속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들
영화 "1987" 속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들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2.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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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뜨거워진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1987년의 승리와 함께 했던 이들의 사진이 차례로 스쳐지나간다. 그 당시를 온 몸으로 견뎌낸 그들에게 부채감이 생긴다. 광장을 가득 채워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의 미소는 존재하기 힘들었을테다. 군화발과 최루탄, 총구와 싸웠던 우리 형, 누나, 삼촌들은 기꺼이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희생을 감수했다. 많은 이가 피를 흘렸고, 눈물을 쏟았다. 1987년은 시민들에게 참 가혹했다.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이후 장준환 감독이 4년 만에 김윤석과 함께 복귀한 <1987>은 에너지가 강하다. 하정우부터 유해진, 박희순, 이희준, 김태리까지, 요즘 초호화 캐스팅이 일반적이나 <1987> 이름값의 면면은 특히 더 화려하다. 영화 <추격자>, <황해> 이후 김윤석과 하정우 콤비의 세 번째 명연기를 감상할 수 있으며, 영화 <아가씨>로 한국 영화사상 가장 파격적인 데뷔를 한 김태리의 컴백을 비롯해 이희준, 박희순, 유해진, 오달수, 고창석, 문성근 등 조연으로도 캐스팅 하기 힘든 배우들이 즐비하다.

영화는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로 알려진 故 박종철 군 사망사건부터 故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함께 이어진 6.10항쟁과 6.29 선언까지의 승리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들과 이를 세상에 알리려는 자들의 대립으로 구성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대한민국을 지배한 독재정권의 하수인인 대공수사처의 박처원(김윤석)은 물고문 도중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종철 군의 사망을 심장 쇼크사로 위장한다. 하지만 이를 수상하게 여긴 최검사(하정우)와 사회부 윤기자(이희준)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여겨 집요하게 추적한다. 여기에 평범한 시민이자 교도관인 한병용(유해진)과 그의 조카 대학생 연희(김태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영화는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된다.

<1987>은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그 장점을 활용해 인물 중심으로 흘러간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인 구도가 명확하지만 다양한 인물들로 인해 캐릭터들의 심리는 한결 풍부하게 묘사된다. 특히 극을 이끌어가는 박처원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이 죽어가는 상황을 온 몸으로 겪은 박 처장은 남한으로 와서 빨갱이 색출에 목숨을 건다. 그 대가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그는 손에 직접 피를 묻히며 인간사냥을 멈추지 않는다. 악의 축 박처원의 욕구는 일반적인 이기심과 잘못된 신념이 혼재돼 있다. 뜻을 같이하는 조 반장(박희순)을 보호하기 위해 상급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나 후반부 “기꺼이 너희들의 총알받이가 되겠다”라는 대사를 통해 개인적인 욕구에서 비롯되는 악이 아닌 잘못된 신념이 낳은 악으로 해석된다. 끝내 괴물이 되어 자신의 부하들에게 오랜기간 감옥생활을 강요하는 대목에서의 모습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한 리더의 이기심이 드러난다. 결국에는 본인조차도 꼬리자르기의 대상이 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모습으로 작품은 승리의 기쁨과 함께 애처로운 감정도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 인간들이 권력의 상부를 장악한 1980년대, 그 그늘 한쪽에서 소시민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 유해진이 연기한 한병용은 <1987>의 박처원과 대척점에 서서 감동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노총각 신세에 누나의 슈퍼에서 먹고 자지만, 조카 연희의 입학선물로 워크맨을 사주면서 삼촌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하는 그는 교도소에서 근무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기에 옥중서신을 잡지에 숨겨 전달하는 위험을 감수한다. 이 이름 없는 교도관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언젠가는 국민이 온전히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

영화는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앞장서는 거룩한 희생자들의 시선 대신 “그런다고 나라가 바뀌냐”는 냉소적인 20대 대학생 연희의 시선으로 1987년 6월을 바라본다. 데모하는 선배, 위험천만한 편지를 전달하는 삼촌에게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는 그는 당시를 살다간 또 다른 소시민의 대표다. 그런 연희가 잘못된 진실과 마주하고서는 6월 민주화 항쟁의 동료가 된다. 이 과정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어떻게 변화를 맞았는지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극적인 기록이다.

30년이 지난 2017년은 과연 얼마나 바뀌었는가. 얼마 전 국민은 부정부패를 최순실 게이트로 체감했고, 그의 뒤를 받치는 권력의 부하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다. 그런 가운데 특정인에 의해 한 나라의 행방이 좌지우지된다는것은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지 ‘1987’은 또한번 역설한다.

많은 국민들은 어떻게든 더 나아진 세상에서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투쟁했고 불의에 맞섰다. <1987>의 무게감 만큼은 역대 최고에 가깝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담하게 재현하는 것으로 묵직함을 전달한다. 더 나은 나라, 더 살기 좋은 삶, 그 안의 공존하는 우리를 만들기 위해 서로 바라보며 함성을 지르는 순간 많은 이가 뜨거워진다.

Photo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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