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존재와 그 조력자들의 초상,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불멸의 존재와 그 조력자들의 초상,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2.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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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사진제공=(주)티캐스트>

천재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올해 개봉한 영화들을 보면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영화 '에이미'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본인), 제이 로치 감독의 영화 '트럼보'에서 '로마의 휴일' 원작자로 잘 알려진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 분)만 봐도 알 수 있다. 열정과 광기가 가득한 괴짜였던 그들은 만취상태로 무대에 올라가서 팬들의 빈축을 사거나(에이미) 욕조 안에서 몇 시간이고 글을 쓰다가 딸(니콜라 트럼보)의 경멸을 받았다(트럼보). 그들이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자신의 재능으로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버티는 과정을 일반인들은 '정신 나간 짓'으로 단정 지었다. 나란히 개봉한 다니엘르 톰슨 감독의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이하 세잔)'과 디터 베르너 감독의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하 쉴레)'에도 이런 모습은 여과 없이 나왔다.

11 <사진제공=(주)티캐스트>

이 두 작품을 보고 나서 '불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폴 세잔과 에곤 쉴레의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멸은 아니었을까. 감독은 이들이 어떻게 불멸의 존재가 되는지 보여주었다. 아티스트의 주변인들을 통해 마스터피스를 역추적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곁에서 평생 동안 머문 베티나, 혹은 장 폴 사르트르의 연인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랑의 이름으로 불멸의 일부가 된 연인이었다.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mpo'쉴레'에 등장하는 뮤즈들도 비슷하다. 에곤 쉴레(노아 자베드라 분)는 28살에 요절했지만 많은 모델들과 작업했다. 그 결과 그의 뮤즈를 자처하거나 혹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여자들의 잦은 다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첫 번째 뮤즈인 게르티 쉴레(마레지 리크너 분)는 그의 여동생으로 가장 먼저 쉴레의 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오빠의 재능을 높이 샀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거기에는 예술적인 유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암묵적인 동조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또 다른 모델인 모아 만두(라리사 에이미 브라이드바흐 분)와 상극이었다. 모아 만두는 쉴레의 그림에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남긴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니 게르티가 가만있었을 리 없었다. 그녀들이 이상적인 모델에만 한정되었다면, 발리 노이질(발레리 파흐너 분)은 쉴레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이었다. '죽음과 소녀'의 주인공이 되어 세계 미술사에서 또 다른 모나리자가 된 발리 노이질은 전쟁으로 인해 일찍 죽었다.

쉴레 주변의 여성들은 쉴레를 사랑했다. 쉴레 앞에 선다는 것은 그녀들에게 회화의 오브제가 되는 것 이상이었다. 피터 웨버 감독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베르메르(콜린 퍼스 분)와 그리엣(스칼렛 요한슨 분)이 보여준 침묵의 교감과 흡사한 감정. 직접적인 행위 없이 캔버스 위로 붓이 오가는 동안 쉴레는 뮤즈들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가닿았고, 거기에는 물감이 번지는 것처럼 다채로운 감정들이 피어났다. 그림이 아니었다면 관념에만 머물렀을 순간이 실제가 될 때. 쉴레의 뮤즈들은 누구보다 그 시간들을 가장 먼저 독점하기를 원했고, 가장 오래 간직되고 싶어 했다. 그 지점에는 쉴레의 시선이 피사체를 투사하는 관찰자의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향한 아름다운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녀들에게 와 닿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질투하고 화낸다. 영화를 보면 쉴레도, 그의 뮤즈들도 이 감정에 솔직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일화 자체가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movie_imagecqgo2k40세잔도 불멸의 아이콘이다. 다니엘르 톰슨 감독은 사랑이 아닌 '우정'이라는 렌즈로 세잔의 삶을 추억했다. 그 대상은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에밀 졸라(기욤 까네 분). 이 정도면 웬만한 연애담보다 구미가 당길 법하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수 있는 이야기를 다니엘르 톰슨 감독은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재능 있지만 가난하고 병약한 소년이었던 에밀 졸라. 같은 반 아이들의 괴롭힘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는 부잣집 도련님이자 호탕한 성격을 지녔던 폴 세잔(기욤 갈리엔 분). 두 사람은 그림자처럼 서로 붙어 다녔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하지만 그 우정에 실금을 낸 것은 '성공'이라는 세속적 가치였다.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캥', '목로주점', '나나' 등을 발표하며 모파상도 팬으로 만들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동안 세잔은 계속 생활고에 허덕이며 온 몸이 물감으로 물들어 있는 무명화가였을 뿐이었다.

극이 전개될수록 점점 변해가는 세잔의 성격을 조망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다니엘르 톰슨 감독은 졸라와의 우정을 통해서 세잔을 입체적으로 부각시켰다. 졸라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세잔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세잔은 언제나 불행했다. 가난 때문에 아내(데보라 프랑소와 분)에게 환멸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진심이나 사랑은 매번 외면당했다. 영화를 보면 밤새 모델을 선 아내가 잠든 사이, 날이 밝자 세잔이 그녀의 젖가슴을 보며 왜 피부 색깔이 변하는지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아내는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림 속에 있는 저 여자'라며 그 피사체를 추악하고 역겨운 것으로 간주했다. 세잔이 즐겨 사용한 어두운 색조와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차별화된 사실적 구도는 당시 사람들이 수용하기에는 이질적이었다. 심지어 아내조차 미치기 직전까지 만들었으니까.

CÉZANNE_&_MOI Danièle_THOMPSON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주)>

점점 난폭해지고 외골수가 되어 고독해지는 세잔의 모습은 영광으로 빛나는 졸라와 대조적이다. 사실 졸라는 말년에 세잔과 우정을 유지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세잔이 졸라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을 담고 있지만 이것으로 그들이 끝까지 친구였다고 할 수 없다. 졸라가 세잔을 향해 '사산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혼합한 다니엘르 톰슨 감독의 중의적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 졸라는 세잔을 끝가지 인정한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를 버린 것 또한 졸라였다. '쉴레'에서 뮤즈들은 쉴레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돕는 조력자였다면, '세잔'에서 그 역할을 하는 졸라는 산파인 동시에 사행 집행인이었다. 물심양면으로 세잔을 도와주어 그가 말년에 걸작들을 남길 수 있도록 해주었으나, 말 한 마디로 세잔을 죽여버리다 싶이 한 사람이 졸라였기 때문이다. 다니엘르 톰슨 감독은 세잔과 졸라의 변치 않은 우정을 서정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졸라의 이중성과 피로함 또한 공존했다.

CÉZANNE_&_MOI Danièle_THOMPSON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주)>

'세잔'과 '쉴레'는 극단적으로 다른 영화들이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주변인들의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시대와 그들의 모티브만 달랐을 뿐. 천재의 초상에만 클로즈업하지 않고 그들의 관계성에 시점을 골고루 분산한 구성이 흥미롭다. 그것은 예술이 사회와 타인들과 밀접한 연관성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어떠한 감정이든 거미줄처럼 복잡 미묘하게 뻗어 나가지만 그것이 인간을 숨 쉬게 한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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