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과 용기의 하모니,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위안과 용기의 하모니,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2.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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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niel-blake-main-final어느 순간부터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주입받는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 되었다.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 자체가 양면성을 띄고 있다. 그만큼 예전에는 그들의 권리조차 공론화 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시선이 변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편견과 부조리는 공존한다는 불편한 진실. 올해 '제69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는 무능한 정부 앞에서 개인이 어떻게 연대를 맺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일깨워준다. 이 과정을 켄 로치 감독처럼 잔잔한 흐름 속에서 강렬하게 보여주는 거장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평생 성실히 일하며 세금을 납부했고 정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실업급여를 받기는 어렵다. 그러다 생활보조금을 신청하러 온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든 다니엘은 그녀를 도와준다.

켄 로치 영화에서 국가나 사회는 영화의 배경, 사건의 단초로 등장한다. 그는 그 틈에서 자신의 의지력으로 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들꽃 같은 노동자들에게 집중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의 국가정책을 소재로 했다. 나이든 사람이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과정은 녹록치 않다. 다니엘을 도와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다. 그에게 계속 실업급여 작성법을 알려주던 직원 한 명은 오히려 동료에게 지적을 받는다. 그런 식으로 '특별대우' 해주지 말라는 식이다. 그 질타에는 '그러면 우리가 더 피곤해진다'는 타박이 생략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근무하라고 세금을 받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본분을 등한시하는 모습.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도 자주 목격해서 익숙하지만, 매번 켄 로치 영화에 한 두 번씩 등장하며 무언의 질타를 담고 있다.

bs6 <사진제공=(주)티캐스트>

어쩌면 다니엘이 케이티와 그녀의 아이들을 도와주게 된 계기도 누군가의 소소한 관심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관공서에서 그에게 마우스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던 어느 학생이나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처럼. 다니엘은 자신이 가진 것 없다며 미안해했지만 케이티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다'며 그의 진심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따스한 빛처럼 가장 강력한 유대가 되었다. 노년의 황폐한 삶에 지친 다니엘이 세상과 관계를 끊고 본격적으로 칩거생활을 시작할 때, 케이티의 딸인 데이지(브이라나 샨 분)가 찾아와 '그때 우리를 도와주셨던 것처럼 저도 아저씨를 돕고 싶어요'라며 다니엘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요즘 들어 '연대'라는 말을 많은 이들이 편하게 사용한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연대의 의미를 구체화한다. 순간적인 동정심에 기인해서 단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유대를 맺을 것을 강조한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잃지 말라고. 자신을 지켜야 휴머니즘도 지킬 수 있음을 다니엘을 통해 보여준다.

bs5 <사진제공=(주)티캐스트>

시나리오를 집필한 폴 래버티 작가는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와 케이티는 우리가 만났던 어떤 사람들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저 현실을 베껴서 푸드 뱅크 혹은 실업자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것을 '각본'이라고 할 수 없다"며 "그래서 댄과 케이티는 둘 다 완전히 허구인 동시에 우리가 만난 모두가 그 두 캐릭터에 스며들어있다고 볼 수 있으며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복지'라는 이름으로 잘못 명명된 연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기 힘든 극한에 상황에 몰렸을 때, 다니엘은 관공서 벽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써내려간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다." 다니엘의, 다니엘에 의한, 다니엘을 위한 숭고한 선언서 같은 존재증명.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의 페르소나들이 절대로 부당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도록 한다. 그때 우리는 기적과도 같은 경이로운 순간을 목도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이 영화에서는 가능하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켄 로치 감독은 끊임없이 말한다. 아일랜드의 영화인이자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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