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누구보다 친근한 배우 이시언이 오랜만에 낯선 얼굴로 관객들 앞에 섰다. 데뷔 10년 만에 처음 스크린 주연을 맡아 예능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선사한 것. 이시언은 가랑비 옷 젖듯 특유의 은은하고 담백한 매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또 하나 넓혔다. 연기와 위트의 줄다리기가 능숙한 배우. 그런 이시언에게 만능맨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실제로 만난 이시언은 예능 속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뜻 장난기가 스치는 얼굴에 능청스러운 말투가 금세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밝은 모습 아래 의외의 모습들이 하나 둘 불거졌다. 배우로서의 고민, 30대 남자로서의 불안, 보편적인 삶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시언을 둘러싼 숱한 편견과 오해를 걷고 그를 이해해보고 싶은 순간이었다.
“저를 왜 쓰세요?” 이시언이 첫 미팅 때 던진 말
이시언은 <아내를 죽였다>를 통해 제대로 연기 변신을 했다.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채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내달리는 정호 역을 맡아 내밀하고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요즘 대중들에게 MBC <나 혼자 산다>의 고정 멤버로 익숙한 이시언과는 확실히 괴리가 있는 장르와 캐릭터였다. 물론 이러한 의구심은 이시언에게도 있었다. 그 또한 김하라 감독을 만나 “나를 왜 쓰시려고 하시는지 물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Q. 첫 스크린 주연 제안을 받았을 때 어땠나
A. 처음에 놀랐다. 안 해봤던 부분에 대한 도전의식이 있었고 시켜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했지만 감독님에겐 도박일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첫 미팅 때 오히려 내가 물었다. 검증된 다른 배우들도 많은데 왜 나를 쓰려고 하는지. 감독님이 ‘저예산 영화’라고 대답하시더라.(웃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또 tvN <라이브> 같이 영화와 비슷한 톤으로 연기했던 장면들을 보셨다더라. 찾아봐도 진짜 몇 개 없는데 그걸 감독님이 보신 거다.
Q.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는 이제 흔한데 차별화를 둔 점은?
A. 정호가 극중에서 계속 취해 있지 않나. 촬영 순서에 따라 취함에 강도가 들쑥날쑥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영화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잠깐 술에서 깨어났을 때의 미묘한 차이를 관객들이 알아주실지 걱정이다. 수염은 긴 건 내가 제안한 거다. 미팅 때부터 기르고 왔는데 감독님이 좋아해주셨다. 서로 대화를 통해 촬영을 진행했고 감독님이 내 의견을 대부분 받아주셨다. 내 의견이 영화 전체의 절반은 수렴되지 않았을까.
Q. 영화 속 도박에 미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굳이 예능에 힘 없이도 배우로서 경쟁력이 있지 않나
A. 그건 굳이 <나 혼자 산다>를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물론 스케줄을 병행하다보면 나도 지칠 때가 있지만 나는 그저 <나 혼자 산다> 멤버들을 보는 게 좋고 행복하다. 동료나 좋은 친구 그 이상의 느낌이다. 그래서 누구든 나가면(하차하면) 배신 같은 느낌이랄까.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그저 행복하다. 사실 내게 마이너스될 건 전혀 없다.
Q. 반면 캐스팅하는 감독 입장에선 예능 이미지가 부담될 수도 있을 텐데
A. 맞다.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하면 생각해 보겠다는 분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곧장 ‘네! 알겠습니다. 내일 당장 나갈게요’ 라고 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이 열려있는 편이고 의사를 존중해주기 때문에 동료들 혹은 감독님과 더 얘기하고 결정할 문제다.
#악플 #요즘고민 #기안84… 이시언이 쏟아낸 오해들
인터뷰 때마다 이시언은 <나 혼자 산다>의 근황과 이슈를 피해갈 수 없다. 영화 홍보를 만난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배우가 아닌 사람 이시언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어김없이 <나 혼자 산다> 이야기와 엮이고 만다. 하지만 이시언은 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가감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시언의 대표작이 <나 혼자 산다>라는 ‘웃픈’ 반응에도 긍정할 뿐. 이시언에게는 그저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Q. 예능이미지 때문에 오히려 정반대 작품에 더 끌릴 것 같은데?
A. 아니다. 오히려 온도차가 클 거라 생각한다. 나도 평가 다 찾아보는 편인데, 실제로 몰입이 잘 안 된다는 분들도 다수 계셨다.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해도 그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나. 내겐 감사한 프로그램이기에 내가 떨쳐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평생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하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나 혼자 산다>가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기자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싶다.
Q. 부담은 전혀 없나?
A. <나 혼자 산다> 이전에는 ‘나는 배우다’ 라는 생각이 강했다. 신인 땐 신념이나 자부심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부끄러워지더라. 그냥 내 생각이지만,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네까짓 게?’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가끔 <나 혼자 산다>에 배우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 (박)나래나 (한)혜진이가 ‘시언오빠 어떤 것 같아요?’ 라고 물어보면 어떤 댓글들이 달릴지, 오히려 그 후폭풍이 무섭더라.
“대중들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냐고요? 그런 건 없어요. 제가 잘 피하고 혹여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잘 대처해야죠."
Q. 댓글을 전부 읽나? 보통 멘탈로는 어려울 텐데
A. 100개 중 90개는 정독 수준으로 읽는다.(웃음) 확실히 무뎌진 것 같다. <나 혼자 산다>를 예로 들자면, 앉아있어도 서있어도 다리를 꼬아도 말을 해도 안 해도 욕먹는구나 싶더라. ‘기안84를 무시한다’는 댓글을 특히 많이 봤다. ‘기안이랑 사이 안 좋잖아. 딱 봐도 몰라?’ 라고 말하시는데 한 번 만나서 우리가 싸우는 거 봤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난 기안을 제일 사랑하는데. 이 친구가 좋고 어떻게 해야 이 친구의 매력이 나오는지 아니까 하는 말로 알아 달라.
Q. 공인으로서 요즘의 삶이 어떤지 궁금하다
A. 내가 대중들에게 이렇게 많이 알려지게 될지 생각도 못했다. 연기하고 돈 받고 행복하게, 소소하게 살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인기를 얻었을 때의 자기 방어를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얻게 됐는데 나 스스로는 그릇이 좀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해주시는 것에 대해 반응을 유연하게 하지 못하더라. 그분들이 내 반응이 얼마나 서운하시겠나. 그럼 나는 또 욕 먹는거다.(웃음) <나 혼자 산다> 멤버들과도 이런 고민을 나눈다.
Q.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걱정, 고민이 많은 편이다. 이 성격이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끼치나?
A. 끼친다. 대중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동안 비슷한 역할을 많이 했다. 시켜주면 하면 그만이지만 그게 또 걱정되더라. 사람들이 신선한 배우를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나 또한 새로운 느낌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다. 요즘 한참 나오는 선후배, 주목받는 사람들 중에 다른 톤을 구사하는 사람들 것들도 참고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또 나오는 거다.
Q. 어떤 배우에게 그토록 긍정적인 영향을 얻나
A. 조우진 배우다. 영화 <마약왕>에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부산사투리를 구사하기도 하고 친한 지인 중에서 참고할 만큼 비슷한 사람이 있었는데 왜 막상 나는 저런 걸 쓸 생각을 못했을까 싶더라. 조우진 배우에게도 <마약왕>이 도전이었을 거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해보겠다는 마음이 아니었겠나. <보안관>에서의 톤 또한 아무리 연습해도 나는 그렇게 못 살리겠더라.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Q. 향후 계획도 궁금하다. 영화배우로서의 모습도 계속 보고 싶은데
A.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만큼 줄 서있지 않다. 내가 선택하는 입장은 아니다.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곧바로 미팅부터 한다. 음, 배우로서는 어떤 고민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도달 못했을 때의 자괴감 때문에 지금처럼 되는 대로 하자는 주의다.
Q. 2019년 참 바빴다. 돌이켜보면 어떤 한 해였나
A. 본의 아니게 사랑을 많이 주셔서 바쁘게 살았다. <아내를 죽였다> 촬영 도중 <어비스>에 합류했고 지금 TV조선 <간택-여인들의 전쟁>촬영 중이다. <나 혼자 산다>도 쭉 하고 있다. 앞으로 이렇게 바쁘지 않으면 또 걱정되고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간택>도 지금 정말 힘들게 촬영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잘 알아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