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나,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살인사건"
누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나,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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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0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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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영화사 진진 <사진출처=영화사 진진>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살인사건'을 보고 나면 '내 이웃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보다는, 내 이웃을 이전보다 더 경계하게 될 것이다. 그게 기획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관객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반응처럼 영화의 전개도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일본에서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칭송받는다.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영화 '회로'와 '도쿄 소나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그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가 추구하는 공포는 말초적이고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기괴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심리적인 긴장감을 구축한다.

그의 최신작 '크리피: 일가족 연쇄 살인사건'은 제15회 일본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작인 '크리피'를 영화화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다카무라(니시지마 히데토시 분)는 전직 형사였으나 지금은 범죄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형사 시절, 자신이 취조하던 사이코패스한테 공격받은 뒤에도 계속 그들을 연구한다.

movie_imagezkya3gfv <사진출처=영화사 진진>

그러다 이사를 한 동네에서 낯선 이웃 남자 니시노(카가와 테루유키 분)를 만난다. 워낙 폐쇄적인 지역이어서 다카무라 부부가 인사를 다녀도 주변인들은 냉대로 일관한다. 그런 상황에 나타난 니시노는 '좋은 이웃'이라기보다는 '이상한 이웃'에 가깝다. 묘하게 뒤틀린 표정이며 집요한 언행, 끈적끈적한 눈빛은 다카무라를 불편하게 한다.

집에서 기르는 개를 계기로 서로 가까워진 아내 야스코(다케우치 유코 분)는 니시다와 그의 딸 미오(후지니 료코 분)를 집에 초대한다. 여러모로 니시다를 미심쩍어 하는 다카무라는 식사를 마치고 부녀를 배웅하는 도중에 미오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니시다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다'는 사실. 혼란에 빠진 다카무라는 자신이 착수한 '히노시 일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면서 직감적으로 이 일이 니시다와 연관되었음을 알게 된다.

movie_imageenplfd18'크리피: 일가족 연쇄 살인 사건'을 본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원작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용이 원래 이런 건가', '반전이 왜 이래'... 참고로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불쾌하고 서늘한 분위기는 답습했으나 각색하는 과정에서 많이 생략했다는 후문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가시적 요소보다는 오감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장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충격적인 장면들은 영화 곳곳에 포진해있지만 고어나 호러에서 볼 법한 끔찍한 비주얼은 없다. 그 충격도 상황 속에 녹여내서 플롯으로 전개되는데 기여할 뿐, 단편적인 것은 아니다. 서로를 보고도 시선을 피한 채 모르는 척하는 이웃들. 화재가 나고 사람이 죽어도 아무 반응 없는 그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다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런 장면 곳곳에 연기처럼 피어나는 의심과 불신의 단서들을 최소한으로 설정해, 후반부에선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여러 사람들이 극찬한 카가와 테루유키(니시다 역)의 연기는 관객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나중에는 극에서 그의 등장만으로 뭔가 터질 것 같은 '걸어 다니는 폭탄'처럼 작용한다. 그가 터널 앞에서 자신의 손을 뿌리치는 야스코를 붙들며 상냥한 말투로 남편이 좋은지, 자신이 더 좋은지 묻는 부분은 압권이다. 매듭처럼 엉켜서 떨어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두 남녀의 손을 클로즈업하는 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올해 초, '제5회 마리클레르 영화제'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해안가로의 여행'이 개봉했다. 아사다 타다노부와 후카츠 에리가 부부로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몽환적이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바다에 나가 실종된 지 3년 만에 돌아온 남편(유스케 역)이나, 그런 남편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아내(미즈키 역)나 제삼자가 보기에는 비정상적이다. 남편의 제안으로 부부는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머무는 공간들은 황량하고 쓸쓸하다. 남편의 어린 시절 기억이 깃든 곳들이지만 이젠 아무 것도 없다. 그 공간성으로 부부의 공허한 내면을 포착한 연출력으로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분위기 메이커로는 손색없다. 그러나 영화감독이라면 언제까지 이런 기시감에만 의존할 수 없는 노릇 아닐까.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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