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해일의 ‘욕망’은 오늘 더 뜨겁다
[인터뷰] 박해일의 ‘욕망’은 오늘 더 뜨겁다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8.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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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가장 열심히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누구나 인정하는 걸출한 연기 베테랑이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과 열정만은 오롯하다. 2000년 연극 데뷔 이후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행보만 봐도 그러하다. 살인 누명을 쓴 청년, 노년 소설가, 사건을 파헤치는 PD, 조선 임금 등으로 분했고 이번엔 출세를 위해 발버둥치는 대학교수로 태어났다. 무궁무진한 캐릭터를 소화하고도 아직  새로운 얼굴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관객에게 부푼 기대감을 안긴다.

박해일은 <상류사회>의 장태준을 통해 그간 보여주지 않은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명확한 목표와 소신이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권력을 갈망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정해 놓은 선은 넘지 않는 남자다. 밖에선 모두가 존경하는 대학교수지만, 집에서는 마스크 팩을 붙이고 노래 삼매경에 빠지는 인간적인 모습도 갖췄다. 각 인물의 욕망으로 뒤엉킨 가운데서도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고 빈틈 많은 장태준은 이중적인 매력으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긴장시켰다가, 피식 웃게도 만든다. 박해일의 내공이 총집합된 캐릭터다. 

최근 종로구 팔판동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박해일은 “장태준의 다채로운 매력에 끌렸다”고 <상류사회>에 합류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고르고 신중하게 대답하는 박해일에겐 작품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Editor 박주연  |  Photographer 박용진 

 

Q. 정치입문자로서 영화에서 간접 경험을 하셨는데기분이 어떠셨나

A. 앞으로도 못 해볼 거기 때문에 이번에 간접 경험이라도 했다. (웃음) 사실적인 뉘앙스를 살려보고자 뉴스를 많이 봤다. 실제로 YTN 방송국에서 토론 장면을 촬영했는데 경력이 많은 앵커와 실제 교수님들이 참석했다. 진짜 토론회 같은 느낌이었고 엄청 떨렸다. 사실 토론회는 안방에서 발 뻗고들 편하게 보시지 않나. 현장에서는 혈압을 높여 이야기하시는데 그 기에 눌리더라. 좋은 경험이었다. 

Q. 상대 배우 수애가 먼저 <상류사회>를 권했다는 사실이 화제였다

A. 수애 씨에게 고맙다. 배우가 배우에게 뭔가 제안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이후에 영화사 쪽에서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런 지점들 때문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은 후에는 작품의 밀도, 속도감에 매력을 느꼈고 장태준 캐릭터의 변화, 흐름이 다채롭다고 생각됐다. ‘박해일이 장태준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했고, 또 수애 씨와 처음으로 작품에서 부부로 만나 호흡한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 궁금함이 있었다. 여러 가지들을 갖고 작품을 맞이했다. 

Q. 장태준은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속물적이지만 수애가 맡은 오수연 보다는 절제된 인물이고 출세를 욕망하면서도 빈틈을 보이는 인물인데 어떻게 접근하려고 하셨나?

A. 최대한 현실에 발붙인 남자라고 생각을 했다. 전문직업인이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처럼 허점도 있고 인간미도 있다. 장태준과 오수연의 차이점은 말하자면, 장태준은 선이나 경계에 대한 개념을 갖추고 있다는 거다. 그걸 본인이 스스로 말하고 지켜나간다는 게 흥미로웠다. 또 현실과도 타협이 가능한 친구고 ‘이런 뜻을 이뤄낸다면야 난 손을 잡겠다’ 하는 타입이기에 실용주의적이기도 하다. 상당히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Q.  집에서 마스크 팩 붙이고 노래하는 씬에서 웃음이 많이 터졌다그 장면에서 수애와의 호흡도 좋았다

A. 생각보다 그 장면을 많이들 언급하시더라. 원래 준비된 노래가 있었는데 저작권 문제가 정리가 안 돼서 촬영 이틀 전에 곡이 바뀌었다. 편하게 불렀다. 풀어져야 텐션이 생기니까. 집은 아내 오수연과 함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뭘 해도 서로 부담이 없는 관계처럼 그리려다보니 그런 장면도 나온 게 아닐까.

괜찮은 콘셉트의 부부였다. 쿨하고 동료 같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사실 오수연 캐릭터가 더 세고 장태준이 따라 가는 느낌이지 않나. 아마 장태준은 목표의식이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라, 결혼도 오수연이 먼저 제안했을 것 같다.(웃음) 안 그랬으면 장태준은 교수로 한량처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지냈을 거다. 불을 당긴 건 오수연이었다. 

Q. 그렇다면 실제 박해일은 어떤 남편인가?

A. 나서서 당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캐릭터라, 영화에서 센 걸 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과는 상반된 곳에서라도 에너지를 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웃음) 

Q. 수애 이외에 김강우와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A.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되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연기하시더라. 조폭에다가, 비열한 사업가로 위장한 캐릭터지만 폭력은 안 쓰는 캐릭터다. 코를 살짝 비튼다거나, 이런 게 오히려 더 세게 느껴지더라. 장태준은 잘 모르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막 달라 드는 모습이 참신하지 않았나. 그 장면은 실제로 술의 기운을 빌려서 촬영을 했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참치 해체부터 요트 신까지는 김강우가 주인공이었다. 김강우 배우 이외에도 이진욱, 박성훈, 김규선, 한주영, 김승훈 배우 등 처음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이 유독 많았다. 

Q. 영화에서 미술품으로 비자금을 세탁하거나 재벌 회장의 적나라한 성생활들이 드러나는데주연 배우로서 부담감은 없었나.

A. 실제 시사 문제나 뉴스에 나온 것을 활용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상류사회>는 정확하게 쌓여진 내러티브가 있고 순수 창작물이다. 그렇기게 구체적인 인물을 떠올려 대입한 적은 없었다. 물론 시대에 맞게 세팅해야하고 그 수준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건 맞지만 영화는 영화로 봐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 

Q. 그렇다면 실제 박해일의 야망은 뭘까?

A. 아마 재미없는 대답일 텐데… 배우다 보니 참여하고 싶은 작품에 합류해 촬영하고 파이팅 넘치게 만든 결과물을 가지고 관객에게 선보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서 깊고 넓고 다양해질 수 있고 또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배우로서 개인적인 욕심이자 바람이다. 

Q. 오래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셨지만 유독 다양한 캐릭터들을 맡아오셨다시나리오를 고를 때 캐릭터가 크게 작용을 하는가

A. 재미있는 길일 수도 있고 어려운 산길일 수도 있지만 내게 재미있으면 일단 그 시나리오엔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안 해본 역할 중에서는 언론인 역할을 해보고 싶다. <제보자> 때 PD가 된 적은 있는데 이번엔 기자 역할로. 근래에 사건들만 보더라도 기자의 힘이 무시무시하지 않나. 그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본다. 

Q. 말씀하신대로 <제보자>의 PD 역도 그랬고, 이지적인 역할을 꽤 많이 해오셨다

A. 앞으로는 귀농해서 농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참여하고 싶다. 농촌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스릴러 말고 (웃음)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해 집을 짓고 자연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전원일기>같은 느낌으로. 멜로에 대한 이야기도 하시는데, 다른 톤으로 풀 수 있는 멜로라면 그것도 해보고 싶다. 뭐, 해보고 싶은 게 많다. 내 나이가 열심히 해야 할 나이이기도 하고, 많이 해보고 싶은 나이이기도 하다. 

Q. 마지막으로 <상류사회>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으면 좋겠나

A. 19세 이상만 볼 수 있는 드문 영화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소재의 영화다.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민낯을 풍자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공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은 욕망들에 대해 한 번쯤 ‘나는 어떨까’ 돌아볼 수 있는 지점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 자체를 즐겨주셔도 물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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