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효주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하고 있어요"
[인터뷰] 한효주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하고 있어요"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7.3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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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발랄한 얼굴때묻지 않은 미소밝은 이미지 안의 청초함배우로서의 프로페셔널함까지배우 한효주가 아닌 인간 한효주의 이미지다어린 아이같은 순수함을 가진 동시에 배우로서의 깊이있는 언어로 자신의 속내를 표현할 줄 아는 점이 그가 가진 매력이다수차례 현장에서 만났던 그는 언제나 맑은 이미지의 범주 안에 있었다배우로서의 이미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가 신작 <인랑>에서 변신을 선보인다변신은 성공적이다한효주는 신작 <인랑>에서 이전에는 보여준 적 없었던 강인함앙칼짐날카로움을 선보인다반정부통일단체에서 여성분과부장까지 올랐으나공안부와 손을 잡고 특기대를 공격하는 지점에 있는 이윤희가 한효주가 맡은 역할이다워낙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은 탓에 결핍의 덩어리가 돼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조차 힘든 인물이다아울러 자신을 조여 오는 숨 쉬기 힘든 환경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고 괴로워한다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임중경(강동원앞에서 갈팡질팡 한다

  

영화 <쎄시봉>에서의 되바라진 느낌, <해어화>에서의 복수심에서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한효주의 새 얼굴이 있다혼란한 정세 속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힘없는 한 여인의 혼돈이 한효주의 얼굴에 담겨 있다불친절한 영화적 설명모호한 감정선이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효주는 자기가 갈 곳을 묵묵히 걸어간다. <인랑>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이는 한효주다

그런 한효주를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딘가 모르게 아픈, 그러면서도 몇 발자국은 더 성장해 있는 느낌이 그녀의 얼굴에서 비췄다.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며 꾸준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갈등이 많은 이윤희, 어려웠다"

김지운 감독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한효주는 6년 전 김 감독이 애니메이션 작품을 실사화 한다는 얘기를 듣고 다짜고짜 찾아간다. 자신을 써달라는 이유에서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김 감독은 그 때를 잊지 않고 한효주에게 캐스팅을 제안한다. 한효주는 시나리오도 읽지 않은 상황에서 OK를 해버린다. 

여기까지야 크게 문제 없는 상황.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고나서부터 한효주의 고민은 증폭된다. 이윤희라는 인물이 손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읽고 '큰일났다' 싶었어요. 이걸 어떻게 해야되나 싶더라고요. 한 번에 딱 캐치가 되는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여러 번 읽었어요. 그래도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나도 이 캐릭터를 이해하는게 어려운데, 관객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 욕구에 새로운 얼굴을 보이고 싶었던 게 있었지만, 쉽지 않았죠. 그리고 너무 불친절 하잖아요. 마지막이 되서야 이윤희의 실체가 드러나고요. 그 외에도 힌트가 너무 적기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하고요. 정말 어려웠죠."

이윤희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다. 임중경에게 애정이 있지만, 이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임중경을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행동도 한다. 그러다가 "같이 떠나자"라고 모든 것을 던지고 임중경에게 올인을 하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를 반복한다. 불안정한 시대적 상황에 희생양이 되어 자신의 감정마저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없는 인물이 이윤희다. 

"그만큼 갈등이 많은 캐릭터라 너무 힘들었어요. 처해져 있는 상황이 너무 힘들잖아요. 살아가긴 해야겠고, 아픈 동생도 보살펴야 하고, 공안부랑 손을 잡자니 못 미덥고, 임중경은 좋아하는데 철저하게 나를 보살피지는 않고,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기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원하기도 하고요. 갈등의 끝이죠."

한효주는 이러한 이윤희를 대사도 많지 않아 이 모든 갈등을 얼굴로만 표현해야 하는 숙제를 맡았음에도, 꽤나 높은 점수로 풀어낸 편이다. 한효주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윤희가 가진 힘겨움과 혼돈,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연민까지 모두 얻어냈다. 

"감독님이 관객들로 하여금 이윤희에게 연민이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또 제안에 새로운 얼굴을 꺼내고 싶으셔 하셨고요. 은유적인 디렝팅으로 저를 자극하시면서, 많이 생각하게 만드셨죠. 제 연기를 좋게 봐주신 건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겐 감사한 일이죠."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하고 있어요.""

이날 인터뷰를 하던 중에 한효주는 이전의 그와 사뭇 달랐다. 조심스럽고 차분하며,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무기력해보이는 부분도 있었고, 틈틈이 나오는 한숨은 그녀가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 있어보였다. 단순히 영화 때문은 아니었다. 그 빈틈을 찾아 들어가자 한효주가 서른살 '삼춘기'를 겪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 데뷔 후 쉼 없이 달려온 그다. 독보적인 여성미와 함께 안정된 연기력을 갖춘 한효주에게 충무로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했다. 영화판이 아니면 드라마에서 그를 찾았다. 휴식기에도 한효주는 차기작 캐릭터를 어떻게 꾸밀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언제나 배우로서의 업무와 함께 살아온 한효주는 이제야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이번에는 배우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어떤 배우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배우 이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한효주를 되돌아보는 시기에요. 정말 원 없이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연기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와서 드는 생각은 다른 옷을 입으려고만 했지, 스스로 옷을 입으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스스로 옷을 입지 않는다는 표현이 다소 희미하게 다가왔다. 무슨 의미였을까.

"이 캐릭터는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할까, 성격은 어떨까, 뭘 좋아하고 싫어할까에 대한 고민만 있었다는 거죠. 역할에 대한 것들은 찾아가고 있었는데, 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는 거예요.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번에 <인랑> 이후 데뷔 후 처음으로 차기작이 없어요. 쉬는 시간이 생겼는데,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좀 당황스럽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는 뭘 좋아했지, 뭘 싫어하지?'라는 근본적인 고민부터 하고 있어요. 사실 그 과정이 좀 불편하긴 해요. 다른 것보다 저는 그것부터 채워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은 서른 살이 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 다시 한 번 봉착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을지를 되돌아본다. 적지 않는 이들이 겪는 서른 살 ‘삼춘기’라는 고민 앞에 한효주도 서 있었다. 더 나은 배우, 더 나은 인간, 더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사회적인 이야기에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그. 이 성장통을 극복해내면, 이전의 한효주보다 더 온전하고 훌륭한 배우를 보게 되지 않을까. 언제나 배우로서 새로운 얼굴을 추구했던 한효주가 내면의 그릇을 넓혀 또 다른 얼굴로 나오길 응원한다. 

PHOTO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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