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희애 “"허스토리", 내 이미지 벗어던진 기분”
[인터뷰] 김희애 “"허스토리", 내 이미지 벗어던진 기분”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6.1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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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내 모습저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오늘의 김희애가 어제의 김희애를 완전히 지웠다. 새치가 듬성듬성 난 투박한 단발머리에 큰 잠자리안경을 쓰고 사투리를 내뱉는 그는 우리가 알던 ‘우아함의 대명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관부 재판을 다룬 <허스토리>를 통해 김희애는 기존의 자신을 벗어던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터닝포인트’라고 칭할 만큼 남긴 것도 많았다. <허스토리>를 둘러싼 김희애의 진솔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ditor 박주연   Photo YG엔터테인먼트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간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힘겨운 공방을 벌인 10여 명의 원고단과 이들의 승소에 모든 걸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희애는 극중 할머니들을 이끄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으로 분해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여성대장부 매력을 뽐냈다.

Q.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허스토리>가 결코 쉽지 않았겠다

A. 위안부 영화라기보다는 여성이 법정에서 내 얘기를 하는, 법정드라마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처음에는 덥썩 물고 시작했는데 연기 인생 중에 가장 큰 위기를 겪었던 것 같다. 욕심을 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고 어려울 줄은 몰랐다. 큰 산을 하나 넘었던 것 같다. 

Q. 관부재판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A. 전혀 몰랐다. ‘나만 모르는 거 아니야?’ 싶었다.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심지어 인터넷을 찾아도 안 나오더라. 영화를 찍으면서 가까운 역사 이야기도 잘 모르고 주위를 안 살피고 살았구나 싶어서 부끄럽기도 했다. 

Q. 배우들이 일제히 촬영 후 후유증을 토로하셨다김희애는 어땠나.

A. 나 같은 경우엔 촬영 석 달 전부터 일본어와 사투리를 능숙하게 써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심했다. 특히 사투리는 성조가 길고, 짧고, 높고, 세고 이런 것들이 있었다. 그걸 표시해가면서 외웠다. 그런데 어떤 날은 또 다르게 알려주시더라. (웃음) 너무 힘들어서 ‘이것만 끝나면 두 다리 쭉 뻗겠구나’ 싶었는데 마지막 촬영날 왜 그랬는지 눈물이 나더라. 촬영 끝난다고 운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날은 이상했다. 좋아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Q. 민규동 감독 또한 <허스토리>로 김희애의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다고 하셨다

A. 내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캐릭터였다. 감독님도 내 안의 다른 선입견을 전부 치우고 그걸 넘어서게 하기 위해서 이 역할을 주신 거다. 그걸 해낼 수 있게 도움을 많이 주셨다. 사실 여배우로서 뷰티나 패션, 외모적인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할머니들의 조력자로 설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외모 신경 안 쓰고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말이다. 

Q. 외적인 것을 언급하시니영화 속 의상에도 눈길이 많이 가더라.

A. 전혀 나 같지 않게 보이고 싶었다. 김해숙 선배도 처음엔 못 알아보시더라. (웃음) 머리를 더 짧게 치고 싶었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치가 보이려면 그 정도 길이가 적당하다고 하시더라. 체중도 10kg 늘렸다. 의상 얘기를 하자면, 김희애를 완전히 벗어던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언맨’처럼 말이다. 외형적으로 잘 꾸몄을 때 연기의 반은 한 것 같다. 

Q. 워낙 걸출한 선배들과의 연기를 하셨다든든하면서도 동병상련 느낌이 있었겠다.

A. 의지가 됐다. 다 똑같이 부담을 나눠가진 상황이고 처절하고 힘든 상황을 같이 느끼고 있으니 더욱 가족처럼 지냈던 것 같다. 누구 하나 불평이나 말씀 없이 촬영에 임했던 좋은 경험이 있다. 특히 김선영 배우와의 호흡도 좋았다. 캐릭터 연구를 많이 해와서 그런지, 내가 먼저 애드리브를 치면 그 어떤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줄 정도로 이완돼 있던 배우였다. 

Q. 민규동 감독이 사전에 도서를 몇 권 권했다고 얘기를 들었는데어떤 책을 읽으셨나.

A. 감독님이 영화를 하고 싶게 됐을 때 자극이나 용기를 줬던 책이라고 했다. 근데 어렵더라. (웃음) 남자로서 관심을 갖기 힘든 부분인데 용기를 내고 만드신 게 대단하구나 싶었다. 읽은 책이 꼭 하나라고 할 순 없다. 부딪히고 흡수되고 거부되고 농축 되면서 내가 되고 연기로 나오는 거지 않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라도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Q. 힘들게 만든 영화인데가족들에게 <허스토리>를 보여주고 싶지 않나.

A. 가족들은 내 영화를 안 본다. 이상해하더라. (웃음) 근데 알 것 같다. 가족끼리 응원해주는 것도 좋지만 모르는 척 해주는 것도 응원하지 않나. 촬영장에 가족들이 와서 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싫을 것 같다. 하지만 <허스토리>는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일단 좋은 영화고, 야하거나 부끄러운 장면도 없다. 이런 영화를 출연하게 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Q. 요즘 드라마나 영화계에서 여성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 두드러지지 않나. <허스토리>도 마찬가지고이런 사회적 변화나 일련의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A. 작은 용기가 변화를 만드는 거다.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디 있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건 계속 바뀌게 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나리오에 나오는 여성상, 인간상, 사회구조상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대가 왔고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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