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결핍과 결핍의 충돌
"7년의 밤" 결핍과 결핍의 충돌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3.22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함을 근간으로 하기에대부분이 결핍이 있다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결핍이 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 테다그나마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정도의 결핍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결핍을 숨기고감춘 채로 이 사회를 살아간다그러나 여기 사회규범의 범주에 들어오기 버거운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영화 <7년의 밤>의 최현수(류승룡)와 오영제(장동건)

  

한 번 붙잡으면 놓을 수 없다는 마력의 소설 <7년의 밤>이 영화화됐다제작사만 15곳이 달려들어 엄청난 판권 전쟁을 일으킨 작품이다책 좀 읽는 사람 중에 <7년의 밤>을 놓치고 지나간 독자는 없을 것이라는 소설이다. ‘악의 근원을 쫓으며 치달리는 가운데 복잡하게 구성된 플롯과 상상만으로도 가늠이 안 되는 엄청난 공간상식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정서가 이 소설의 미덕이다영화는 결말이 소설과 달리하면서 더 세고 무겁고 강해졌다. <광해:왕이 된 남자>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이 날카롭게 갈고 갈아 관객 앞에 내놓는다

줄거리_두려움과 집착 사이에서 시작된 복수

댐 관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최현수는 괴로움을 숨기고 사는 남자다.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에 길들여져 살았다. 그 트라우마가 만성적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런 그가 쉼 없이 바가지를 긁는 아내(문정희) 때문에 아파트를 장만한다. 버는 돈은 적은데 빚을 지고 산다. 아들 서원(고경표)은 점점 큰다. 아파트는 세를 주고 가족과 살 집은 댐 근처에 장만했다. 2시간 반을 달려 집을 보러 가는 길, 갑자기 한 여자아이가 튀어나왔다. ‘쾅’.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 순간,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살 수도 있는 아이를 죽이고 호수에 던졌다.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만성적 두려움에 불을 붙였고, 걷잡을 수 없이 미쳐간다. 

오영제는 어긋난 사랑을 하고 있다. 처음으로 갈증을 느낀 아내 하영에 집착한다. 아내가 자신을 무서워해 도망쳤다는 사실 따윈 의미 없다. 내 옆에만 있으면 된다. 사이코패스가 기저에 깔려 있다. 딸 세령(이레)이 엄마 물건을 손을 대자 메고 있던 혁대로 팬다. 아이가 도망을 가도 느긋하고 여유를 부리며 뒤쫓는다. 막다른 골목길에 놓인 쥐를 바라보는 고양이 같다. 도망간 아이가 금방 돌아올 줄 알았는데, 실종됐다. 아내는 외딴 곳에서 자살했다. 호수에서 죽은 아이의 시체를 발견한다. 갈증이 더욱 깊어졌다. 딸을 죽인 놈을 찾아 내가 느낀 고통보다 더 아프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주제의식_악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 역시도 소설이 그랬듯이 악의 정의를 묻는다. 무엇이 진짜 악인가를 묻는다. 영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악한 행동이 나온다. 얼떨결에 사람을 죽인 악행을 한 자, 당한만큼 그 이상의 처절한 고통을 주려는 자, 살려달라는 아이의 눈물을 외면하는 자, 악행을 지켜보고 방관하는 자, 남편의 자존심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긁어내는 자, 가족의 죄를 묻고 넘기려는 자,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고한 사람이 죽을 줄 알면서도 죽이는 행위를 한 자 등등 다양한 악행이 나온다. 

다양한 악이 존재하지만, 최현수를 제외하고는 악행을 저지르는 이의 전사가 없다. 왜 저런 인간만도 못할 짓을 서슴없이 하는 가에 대한 설명이 없어, 대부분 캐릭터에 가까이 몰입하지 못하고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게 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강하고 특이하며, 인물들이 이 모든 악행이 어떤 결핍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감지된다. 정서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드나, 악인이라고 손가락질 하기도 어렵다. 영화가 끝나면 악과 악 사이에서 혼돈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연출_그림을 만드는 고수추창민 감독의 진가

<광해:왕이 된 남자>는 높은 흥행을 기록하긴 했으나, 영화사에 깊게 남을 만한 영화로 꼽히지는 않는다. 중간 중간 개연성이 부족하기도 했고, 늘어지는 지점도 있었다. 한 번 보면 좋게 느껴지지만, 여러 번 봐도 좋을 영화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7년의 밤>은 여러 번 보고 싶은 영화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각자만의 취향으로 인해 영화가 재밌고 재미없고를 떠나 영화적으로는 완성도가 높다. 미장센과 영화를 이어가는 플롯, 깊은 안개에 잠기는 듯한 무거움, 배우들의 연기, 색다른 스토리와 충격적인 엔딩까지 어느 하나 쉽게 흠 잡기가 어렵다. 

특히 독자들의 머릿속에만 있을 마을을 탄성이 나올 정도로 구현해낸 미장센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압도한다. 댐 주위에 있는 잔잔한 호수는 이상하리만치 을씨년스럽게 만들었고, 어두컴컴한 동네를 묘사한 지점이나 과거 회상 신에서 나오는 우물 등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다. 추창민 감독은 그림을 만드는 영역에서 엄청난 고수가 됐다. 

워낙 무거운 감정소모가 이어지고 숨 통 튀는 장면 하나도 없이 시종일과 관객의 목줄을 쥐어잡는 탓에 영화를 보기가 어렵다. 중후반부 다소간 늘어지는 느낌도 있다. 정서가 조금도 이해되지 않게 만들어, 확 느껴지는 건 없다. 그러나 강점이 단점을 압도한다.

연기_류승룡·장동건의 인생연기 뿐만 아니라..

영화의 흥행 여부는 예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류승룡과 장동건이 각종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될 것이라는 예언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내공 있는 연기력은 어마어마하다. 언제나 흔들리는 불안한 류승룡의 얼굴과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는 장동건 얼굴을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다. 

류승룡은 두려움을 표출하는 최현수의 울분을 쏟아내는 연기가 일품이다. 소시민의 얼굴과 극도의 두려움을 가진 결핍된 자의 얼굴을 표현하는 것이 숙제였는데, 두 얼굴다 오롯이 훌륭하게 표현한다. 

장동건은 감정을 삼킨다. 먹이를 노리는 육식 짐승의 눈매로 상대의 빈틈을 노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방해한 자는 악랄하게 괴롭히는 오영제는 장동건의 인생연기로 구현된다. 소리를 지르는데 치중했던 과거의 모습과는 다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마가 장동건을 통해 나타난다. 연민이 가지 않는 악, 그렇다고 클리셰는 없다. 

두 사람의 크게 작품을 이끌고 간다면 그 주위에 있는 송새벽과 고경표, 문정희의 연기도 일품이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승환(송새벽)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며 악이 모든 것을 잠식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서원은 악의 공격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발악한다. 고경표는 매 작품마다 성장 중인 것 같다. 현수의 아내 역을 맡은 문정희는 내 아내가 저렇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할 것만 같은 인간을 그려낸다. 그녀와 사는 것만으로도 지옥 같은 그런 여자로 분해 현수의 감정에 이입하게 만든다. 

한줄평소름끼치는 악마의 탄생

별점:★★★★★★★(7/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