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돼지 같은 여자" 장문일 감독의 못다 한 이야기
영화 "돼지 같은 여자" 장문일 감독의 못다 한 이야기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8.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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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이명수 <Photographer. 이명수>

한국영화의 치우침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짙은 상업성 요소가 없는 영화는 소위 ‘전문관’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들 스스로 그들을 ‘작은 영화’라며 선을 긋고 있다. 영화가 주는 감동은 똑같을진대, 한 발 물러서서 크기로 규정하고 있다. 제목부터 생소하다는 이유로 멀리 했던 영화가 있다. 뒤늦게 일본에서 진가를 발휘한 ‘돼지 같은 여자’다.

스타포커스는 이번 호부터 영화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명감독과 만나는 시간을 마련한다. 이번에 만날 주인공은 장문일 감독이다. 지난 3월6일부터 3월15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제 11회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이하 오사카 아시안 영화제)’에서 영화 ‘돼지 같은 여자’가 그랑프리(대상)을 받았다. 황정음-이종혁-최여진 등 인지도 높은 연기자가 출연했음에도, 한국에서 외면 받은 작품이다. 일본이 먼저 주목한 영화 ‘돼지 같은 여자’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장문일 감독과 나눴다.

좀 늦은 감이 있다.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배급사에서 영화 ‘돼지 같은 여자’를 출품했다. 사실 몰랐고 그냥 오사카, 교토 여행이나 하자 셈 쳤다. 대상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정이 잡혀서 갔는데 뜻밖의 행복이었다.

수상소감이 독특했다고.

대상을 받던 날,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결해 첫승을 올린 날이었다. 이세돌이 태어나 자란 곳은 전남 신안이다. 그리고 ‘돼지 같은 여자’ 촬영지는 전남 여수다. 이세돌의 고향 옆이 여수 아닌가(웃음). 수상소감에서 “이세돌의 기질을 보면 ‘돼지 같은 여자’ 인물들의 기질을 이해할 수 있다. 끝내 이겨내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 풍경에서 자라난 사람, 사람들의 생활과 기질이 ‘돼지 같은 여자’와 일치했다. 당시 이세돌이 이긴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이세돌을 통해 인공지능과 다른 인간을 봤기에, 전 세계가 감동하지 않았는가.

일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다. 심사위원장인 대만의 이치엔 감독은 “이 작품은 연출에 있어 상업적인 면과 예술적인 면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전문성과 창작의 완벽한 조합이다”고 극찬했다.

‘키네마 준보’(キネマ旬報) 관계자를 만났는데 좋은 평을 해주셔서 고마웠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내 사인을 받기 위해 관객이 줄을 서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오사카 아시안 영화제의 한 프로듀서는 “한국에서 ‘돼지 같은 여자’에 관심이 왜 없었는지, 의아하다. 약속이 있어서 앞부분만 보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끝까지 봤다”고 인사했다. 많은 관객이 ‘돼지 같은 여자’의 메시지를 잘 이해한 것 같아 놀랐다. 지금 일본 측과 개봉 일정을 논의 중이다.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아쉬운 마음이 컸을 것 같다. 결말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황정음(재화)의 선택에는 은유와 상징이 많다. 황정음의 마지막은 ‘현실에 대한 상징’이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가야 하는 것. 이것은 비극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황정음이 한 선택으로 국한돼 보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황정음은 살기 위한 의지가 있기에, 황정음의 삶 자체가 아름답다. 긍정적 메시지라고 생각했는데 해석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돼지 같은 여자의 황정음, 이종혁(준섭), 최여진(유자), 박진주(미자)를 보면 다 행복하지 않았다. 황정음이 주인공이라 두드러지게 보였을 뿐, ‘돼지 같은 여자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한 인물은 없는 것 같다.

네 인물 다 삶의 딜레마를 안고 산다. 이 딜레마를 풀어가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가 된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듯, 삶을 안고가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김우석(극 중 황정음 동생)이 자신의 첫사랑을 위해서 싸우는 장면을 엔딩으로 처리한 것도 삶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일본이 반한 돼지 같은 여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자. 영화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시대가 언제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사람은 그렇게’살 것 같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내는 인간, 그런 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다. 1970~1980년대를 그리긴 했지만 그 시대의 특성을 도드라지게 그리지 않았다.

Photographer. 이명수 <Photographer. 이명수>

돼지 같은 여자에서 일이 계속 터지고 사람들은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골에서 겪을 수 있는 시련을 다 보는 것 같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색다른 흥미가 될 것 같다.

어렸을 때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끊임없이 태풍이 불면 할아버지가 초가지붕을 고치셨다. 새끼줄을 들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못한다고 역정을 내셨다(웃음). 늘 맞서 싸워야 하는 환경이 그 사람들의 기질과 습성을 만들어냈다.

돼지 같은 여자를 보면 미신, 무속 경향이 느껴진다. 예민하게 봤는지 모르겠다.

어린 기억을 더듬어 ‘돼지 같은 여자’를 준비했다. 그런 요소가 있다. 어렸을 때 여건이 좋지 못해서 어머니가 씻김굿을 했다. 난 씻김굿이 무서웠다.

언젠가 내가 많이 아팠는데 어머니가 나를 치면 낫는다고 하셨다(웃음). 의지로 나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에피소드는 시나리오에 있었는데 촬영하지 못해 아쉽더라(웃음).

돼지 같은 여자는 영상미가 뛰어나다. 돼지, , 갈치, 닭 등 동물이 총 집합한다. 유쾌한 경험이었다.

동물이 등장함으로써, 스크린에 화면이 넘치고 생기가 느껴진다. ‘자연과 생명(동물)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인간의 욕망을 동물과 비교해 질문을 던졌다. 자연의 풍광을 끊임없이 찍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 소중하고 좋지 않은가.

특히 화면 속 갈치가 눈이 부셨다. 만선이 된 배가 들어오는데, 순간 눈을 감았다. 갈치의 빛깔이 그렇게 화려한지 몰랐다.

갈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을 가진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돼지처럼 투박하면서 아름답다.

돼지 같은 여자가 제목이니까 돼지와 늘 붙어있었나.

당연하다(웃음). 촬영장에서 같이 놀았다. 촬영장 밖에서 돼지가 늘 대기했다. 촬영하면 돼지는 옆에서 잤다.

돼지가 참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것을 돼지 같은 여자를 통해 알게 됐다. 돼지를 보며 따스함을 느끼긴 처음인 것 같다.

석양이 저무는 들판에서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어디 있을까. 거기에 아름다운 선을 가진 돼지까지 있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을까. 장 프랑수아 밀레의 명작 ‘만종’속 농부의 기도하는 마음이 꼭 이랬을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뒤에서 도와준 이가 많을 것 같다.

정훈탁 IHQ 대표가 오사카 아시안 영화제 대상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함께 작업한 김영호 촬영감독, 황순옥 조명감독, 신민경 편집감독, 정차식 음악감독 등 많은 스태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들의 노고 덕분에 이만큼의 이미지가 나왔다.

모든 감독이 마찬가지겠지만 돼지 같은 여자에 가진 열정이 대단하다. 개봉하기까지, 그리고 작품성을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영화가 개봉해서 흥행하고 평가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같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소중한 일이더라. 영화 개봉을 못해 배급사에 부탁한 적이 있다. 열심히 힘써준 스태프를 위한 시사회를 열어달라고 했다. 사실 예산이 없어서 VIP 시사회조차 못했다. 스태프를 위한 시사회가 열려서 정말 기뻤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직접 새끼돼지를 안고 등장했다(웃음). 정확히 돼지 세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내가 안고, 두 마리는 출연배우들이 안고 들어갔다. 신선한 발상이라고 하더라. 모두 포복절도했던 기억이 난다.

조심스럽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영화 돼지 같은 여자는 여자 캐릭터의 비중이 높다. 최근 흥행한 한국영화는 남자 캐릭터가 중심이다. 황정음, 최여진, 박진주처럼 개성이 넘치는 여자 캐릭터가 드물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스릴러만 봐야 해서 안타깝다. 황정음은 드라마에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영화에서도 잘됐으면 좋겠다. 최여진, 박진주는 참 좋은 배우다. 살아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줘서 참 고마웠다. '돼지 같은 여자'는 인물의 시각을 따라 가면 달리 보이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최여진, 박진주의 활약 덕분이다. 앞으로 스크린에서 자주 보고 싶다.

도돌이표같은 질문이다. 영화 돼지 같은 여자처럼 훌륭한 작품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빛을 못 보고 있다. 영화계가 높여야 할 자성의 목소리가 있다면.

영화가 한 장르로 쏠리지 않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을 만들어 보고 유명 배우가 출연해도 마땅한 수가 없다. 제작 예산을 늘여도 통하지 않는다. 배급 구조를 바꿔야 해결될 기미가 보일 것이다. 계속 영화계가 비판하고 질문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비판할 문제 같다. 전반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오현지 email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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