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고도 가엾고나... 가짜한테 마음을 뺏기다니..." 영화 "아가씨"
"가엾고도 가엾고나... 가짜한테 마음을 뺏기다니..." 영화 "아가씨"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0.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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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아가씨'가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다.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대단하더니 개봉 후에도 수많은 논란이 오갔다. 좋은 평이든 나쁜 평이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분명 영화를 가지고 얘기할 요소가 많다는 얘기다. 작품에 상징적인 요소를 세련되게 표현해 놓기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이번 '아가씨'에서는 얼마나 풍부하게 생각할 거리를 담아놨는지 펼쳐보자.

'아가씨'의 스토리는 처음부터 이미 반전을 던져 놓았다. 박찬욱 감독이 반전에 집중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면 원작소설을 가지고 영화를 애초에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작소설 '핑거스미스'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반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다. 다만 얼마나 원작과 싱크로율을 가졌는지,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색다른 해석이 얼마나 영화에 가미되었는지가 중요 포인트다. 영화 '곡성'처럼 결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과정이 중요하다. 3부로 나눠서 같은 상황을 캐릭터들의 다른 관점에서 얘기하는 방식이 그 증거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처럼 같은 상황에서도 처한 현실이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의 시선에서만 영화를 보여준다. 영화가 진실과 가짜 사이에서 혼란을 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누구도 명확하게 가짜와 진짜를 가려낼 수 있는 재주는 없다. 오직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을 수밖에.

영화를 보고 나면 이전의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스토커' 이후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더욱 친절해지고 완벽하게 상업 영화의 길을 걷는다. 자신의 영화적 스킬과 형식은 가져가돼 스토리는 쉽게 풀어낸다. 영화가 예술성을 품길 바라는 관객에겐 적당히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보이고, 영화가 좀 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길 원하는 관객에겐 입맛대로 맞춰주기까지 한다. 어디까지 영악해질지 궁금할 정도로 그는 적당한 조율을 시작했다. 영화가 이해하기 쉬워지긴 했지만 단 한 가지 놓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캐릭터들의 생동감이다. 복잡한 감정선조차 단조로운 표정으로 연기하는 영화 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하나하나 공들인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면 그의 감각이 여전함을 느낄 수 있다. 더욱 촘촘해진 짜임새의 캐릭터 때문에 비록 스토리를 알고 있더라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남성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하는 말이 있다. "여성이 돋보이는 영화, 여성을 위한 영화다." 감히 반박컨대 이 영화는 여성이 돋보이긴 했으나 여성이 공감하는 영화는 아니다. '아가씨'에 나오는 숙희(김태리 분)와 히데코(김민희 분)가 돋보였던 것이지 그들이 남성에게서 느끼는 갈등이 과연 일반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일까. 후견인 이모부(조진웅 분)과 그의 손님들의 시선처럼 오히려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식민지 시대에 권력층이 모여 앉아 겉으로는 지식인인 척 체면을 차리고 있지만 그들의 취미는 지극히 변태적이다. 히데코가 책을 읽어나갈 때마다 도취되듯 자세를 취하는 손님들의 모습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숙희가 아가씨를 자신의 아기처럼 돌보는 장면, 그 둘의 사랑 행위 등 다소 자극적인 장면을 보며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 마치 후견인과 백작, 그리고 손님들처럼 그들을 몰래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과 동일시되는 현상이 생긴다.

백작과 후견인의 역할에 하정우와 조진웅이 캐스팅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기력이 '아가씨'에선 비중이 적은 편이다. 원작처럼 백작의 캐릭터는 영화상 그렇게 중요한 역할은 아니다. 그러나 원작과는 다르게 후견인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다만 후견인을 과연 조진웅이 제대로 표현했을까 싶다. 변태스럽고 병적인 캐릭터의 후견인을 소화하기엔 조진웅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호감형이라는 것이 문제다. 정말 나이든 배우가 노인 역할을 맡았다면 단면적인 캐릭터가 나올까 봐 우려했던 모양인지 조진웅을 캐스팅했다지만 박찬욱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영화상에 표현되었는지 의문이다. 노인 같아 보이돼 진짜 노인은 아닌 인물을 소화하기엔 조금 아쉽다.

식민지 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의상과 미술, 건축 등 완벽한 미장센을 선사했던 영화 '아가씨'. 장점이 그 어떤 영화보다 화려했기에 단점은 금방 잊어버리게끔 한다. 은밀한 음란 서적을 과감히 관객에게 보여주듯 자극적인 장면조차 아무렇지 않게 개방해 오히려 '야하다' 느끼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마치 어디까지가 허용점인지 잘 알고 있다는 듯 적절한 선을 지킨 '아가씨'에 매혹됐다.

김서해 free70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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