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카리스마와 착한 여자의 따스함을 지닌 배우 "손예진"
악녀의 카리스마와 착한 여자의 따스함을 지닌 배우 "손예진"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0.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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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CJ엔터테인먼트>

'그녀는 너무 예뻤다. 그래서 더 슬펐다'라는 노랫말을 손예진에게 적용시킨다면 어떨까. 아마 '그녀는 너무 예뻤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가 되지 않을까. 이경미 감독의 영화 '비밀은 없다'를 봤다면 충격적이라는 말로도 그녀의 연기를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몇몇 평론가들은 손예진이 이 작품에서 인생연기를 보여줬다고까지 했다. 관객들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덕혜옹주'가 그녀의 대표작이 될 거라 말했다. 마치 잭팟이 터진 것처럼 각각 다른 톤으로 절정의 연기를 펼친 그녀는 충무로를 독식했다.

'비밀은 없다'는 그동안 손예진이 쌓아온 모든 공력을 아낌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연홍(손예진 분)은 지금까지 한국영화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내재된 인물로 나왔다. 국회의원 출마를 앞둔 종찬(김주혁 분)을 위해 선거 캠프 직원들에게 먹일 김밥을 만드는 아내. 그러면서 딸 민진(신지훈 분)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은 대중에게 익숙한 손예진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실종을 확신하는 순간 눈빛부터 돌변하는 모습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손예진이 연기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사라진 딸의 행적을 뒤쫓으며 진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서서히 미쳐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전도연처럼 신경증적인 발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김용한 감독의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유선처럼 눈물과 폭력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는 영역에서 벗어나 그로테스크한 모성애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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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니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온 이경미 감독은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 공효진에게 그랬듯 손예진에게도 '배우의 민낯'을 요구했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에서도 공효진은 언제나 공효진이었지만 손예진은 달랐다. 연홍을 위해 연기의 일부만 변형하지 않았다. 연기력 전체를 새롭게 선보였다. 새끼를 잃고 피 흘리는 짐승이 발톱을 곤두세우듯 남편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는 소름끼쳤다. 도로 한복판에서 남편의 목을 조르며 "여기서 계속 하면 내가 지는 거야"라며 음산하게 웃던 그녀는 그 시퀀스 자체를 씹어먹었다.

뒤이어 개봉한 '덕혜옹주'는 다른 의미에서 더 파격적이었다. 허진호 감독의 뮤즈로 다시 발탁되었다는 점이나 자비 10억 원을 투자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각색한 이 작품을 위해 왜 그녀가 그토록 공을 들였는지 의문이었다. 제작발표회 당시 그녀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소화한다는 데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비운의 운명으로 얼룩졌던 덕혜옹주를 기대 이상으로 보여준다 해도 '비밀은 없다'의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손예진은 예전부터 그랬듯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그것으로 자신이 배우라는 존재증명을 했다. 청순가련형 미녀의 대명사였던 그녀가 노인분장까지 감행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이마에 깊게 새겨진 주름이며 손등에 핀 검버섯. 뒤로 묶은 부스스한 흰머리. 그 상태로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 갇혀 장한(박해일 분)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던 수인(囚人). 카메라가 노년의 덕혜옹주를 클로즈업 할 때 상영관 곳곳에서는 흐느낌이 들렸다.

잘생기거나 예쁜 배우들을 보면 눈이 즐겁다. 거기에 착하기까지 한 배우를 만나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게다가 최고이면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를 보면 온 몸이 뜨겁다. 새로 피를 수혈 받는 느낌이랄까. 매번 배역을 맡을 때마다 여러 부분에서 더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그녀. 깊이와 흥행. 두 극단을 오가며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성실한 배우 손예진의 노력은 그래서 언제나 반갑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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