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담아내다, 영화 "우리들" 윤가은 감독
"진짜"를 담아내다, 영화 "우리들" 윤가은 감독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0.2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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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233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연기가 처음인 아이들이 주연배우로 나섰다. 유명배우의 출연은 없다. 하지만 그 섬세한 아이들의 감정에 우리는 매료됐고, 러닝타임동안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아, 저때는 저랬지."

영화 '우리들'은 '제66회 베를린 영화제, '제40회 토론토국제아동영화제', '제18회 우디네극동영화제', '제4회 무브필름페스티벌', '제56회 즐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심지어 '이 선'역의 최수인 배우는 '제19회 상하이 국제영화제' 아시아 신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노미네이트 됐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연출을 맡은 윤가은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영화를 선보였을 때 놀라웠던 부분이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 관객들과 반응이 비슷해서 놀랐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관계'의 부분은 참 어려운데, 그 부분은 세계가 공통적으로 어렵다고 공감하는 부분인 거 같다." 해외의 영화제에서 '우리들'을 만난 관객들 또한 한국 관객들과 같은 웃음 포인트를 갖고 있었다고.

영화 '우리들'은 친해지고, 다투고, 질투하는 한없이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섬세한 아이들의 표현력과 윤가은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영화, '우리들'. 윤가은 감독은 말한다. "영화 <우리들>은 무기력과 자포자기 뒤에 숨어버린 어른들과, 과거의 나처럼 친구의 배신으로 아파하면서도 용기 내어 전진하는 아이들 모두를 위한 위로와 응원의 편지"라고. 그 편지를 지금 꺼내 읽어볼까 한다.

어린이가 주연인 영화 '우리들'

요즘 아역배우들이 다양한 영화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요.

어린 친구들이 해내는 모습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고 응원하게 돼요. 참 멋있어요.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어린이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유치한 영화'라는 선입견이 아직 베 있는 것 같아요. 안타깝죠. 이런 틀을 깨려면 아역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어떠한 극 안에서 등장하는 아역들을 구체적인 역할로 그려주는 게 중요해요. 그렇다면 그 선입견도 깰 수 있지 않을까요?

아역배우를 캐스팅 할 때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셨나요?

여러 가지 측면을 다 고려했어요. 그래도 제일 중점적으로 본 건 저와 대화할 수 있는 친구인지였어요. 보통 아역배우 오디션을 보면 학원에서, 집에서 준비한 대본을 모노 드라마로 펼치고 장기자랑을 연습해서 보여주는 식이에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인 것을 더 많이 물어봤어요.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가족 이야기', '학교생활'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죠. 캐릭터의 성향과 비슷한 기질을 가진 친구가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중 최수인 배우는 실제로도 정말 얌전하고, 친구들의 말도 다 들어보고, 조심성도 많은 친구예요. 그래서 극 중 선이와 조화가 잘 이뤄졌던 것 같아요.

그래도 배우들이 첫 연기도전이라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캐릭터의 기질과 비슷해도 연기는 다르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었어요. '원했던 그림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의 고민과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아이들이 갑자기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떡하지'의 고민이었어요.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아이들에게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너희도 공부해서 같이 이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용기를 주면서 분위기를 이끌어냈죠. 그리고 촬영 시작 전,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스토리가 익숙해지도록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실제가 아닌 연기라고 인지시키는데 좀 더 주력했던 것 같아요.

'우리들'은 소외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어요. 연기지만 아역배우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들었어요.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에게 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진 않을까'였어요. '우리들'이 소재로 한 감정들이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겪을 수 있는 그런 감정이기 때문에 연기경험이 아역배우들에게 상처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심리상담하시는 분이나 아동청소년 연기를 전공한 지인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어요. 이외에도 아이들과 세미나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죠. 아이들도 자신의 비밀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고, 저도 함께 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 시간들을 가지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실제 상황이 아니고 연기는 다른 사람을 잠시나마 체험해보고, 그 사람을 이해해보는 거야"라고 설명했어요.

해외영화제에서 '우리들'이 많은 초청을 받았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베를린에서 상영을 했을 때에요. 당시 영화가 끝나고 GV(Guest Visit)를 하는 자리였는데, 독일에서 청소년 친구들이 취재를 왔어요. 그때 한 친구가 최수인 배우에게 "한국에서는 소외된 친구가 있을 때 학급에서 도와주는 친구가 없냐"는 질문을 던졌어요. 최수인 배우 또한 서로 공통된 문제에 공감하며 답변했죠. 또한 아는 기자님에게 취재 온 독일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들었어요. 독일 친구들도 자신의 일처럼 공감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참, 독일에서는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주는 일종의 경찰 같은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제도는 인상적이었어요.

'윤(강민준 분)'의 캐릭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거예요. 한 아이가 유치원에서 맞고 와서 속상한 마음에 같이 싸우라고 화를 냈더니, 그 아이 왈 "나도 같이 때렸어 그리고 놀았어"라고 대꾸했대요. 어른들 생각엔 싸우고 나서 같이 노는 게 이해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응용하게 됐죠. "그럼 언제 놀아?"는 어른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그 미움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게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 미움을 계속 갖고 있으면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으니까. 놀려고 했던 것, 원래 하려고 했던 것에 좀 더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우리들'이 탄생하기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주관한 산학협력 프로젝트 1등 당선작이 '우리들'이라고 들었어요.

한예종과 CJ E&M이 주관하는 산학협력 프로젝트였어요. 졸업생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공모전이에요. 이창동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좋아서 참여하게 됐죠. 처음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는 이 감독님과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해서 완고를 내는 게 목표였어요. 트리트먼트 형식으로 대결을 펼쳐 당선된 작품이 '우리들'이에요.

이창동 감독님과의 시나리오 개발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요?

2013년 7월부터 2014년 3월까지 2주에 한 번씩 이 감독님을 뵀어요. 작품개발을 함께했던 3명의 친구들과 서로의 작품을 읽고, 이 감독님의 코멘트를 듣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면 좋을지에 관한 시나리오 회의 작업이었어요. 시나리오 개발에 이 감독님께서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이창동 감독님의 조언 중 마음에 화살이 된 조언이 있나요?

이 감독님께서는 너무나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져주셔서 혼란에 빠졌던 적이 많아요. 사실 처음 작성된 '우리들'은 지금의 이야기와는 완전 다른 작품이었거든요. 제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만 가득했고,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주인공의 이야기에도 여러 장식이 많았어요. 자극적인 장치들을 넣으면 관객들이 혹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읽으시곤 "너무 가짜 같다"고 말씀하시며, 진짜를 써보라고 하셨어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을 해서 다 뒤집어엎고 다시 쓰라고 하셔서 멘붕이 왔죠. 이 말씀을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웃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가르침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들'의 시나리오는 초반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이창동 감독님께서 '진짜'를 쓰라고 하시는데 '진짜'가 뭔지 감을 못 잡겠더라고요. '우리들'이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초반에는 그때의 경험을 고백하는 느낌의 시나리오는 쓰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변형된 형태였어요. '내가 진짜 겪은 걸 어떤 것에서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작은 생각들이라도 깊이 들어가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고등학생이었던 주인공이 초등학생으로 바뀌게 된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더 깊고 섬세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궁금해요.

관계에 있어서 다투고 질투하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잖아요. '우리들'은 이처럼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굉장히 아프고 풀기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관객들이 보시고 누군가가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생각나는 영화가 됐다는 건 감독으로서 정말 기쁜 일이더라고요. 생각나는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현지 email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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