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배우가 사는 법, 영화 "데몰리션"
이 명배우가 사는 법, 영화 "데몰리션"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1.0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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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_imageq5lbofei가끔 사춘기라는 단어가 왜 있는지 궁금, 아니 황당하다. 사전적인 뜻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라고 하는데 어른이 되어도 이 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신작 '데몰리션'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 상당수는 이런 치열함으로 가득하다. 특이하게 이런 성향은 영화를 만들수록 짙어진다. 그렇다고 영화제용 영화 위주로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항상 상처입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부각된다.

캐런(나오미 왓츠 분)의 삶은 표면적으론 평온하다. 성실하고 듬직한 남편(브랜단 둘링 분)이 있고, 반항적이지만 너무 사랑하는 아들(유다 르위스 분)이 있다. 그런데 마음이 헛헛하다.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고객센터 업무를 담당하는 그녀는(직원은 그녀 한 명 뿐이지만) 어느 날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분)에게 편지를 받는다. 병원에 있는 귀사의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는데 돈만 꿀꺽하고 초콜릿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

편지라는 형식도 특이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자판기 사건을 시작으로 그동안 자신이 겪은 일을 구구절절 작성한 내용을 읽으며 그녀는 그에게 빠져든다. 그녀도 대책 없긴 매한가지인 듯. 어느 날 새벽 2시에 데이비스에게 전화를 건다. 편지를 다 읽었다며, 기꺼이 변상하겠다며, 아내를 잃고 지금 괜찮은지 묻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이다.

영화 데몰리션의 한 장면 <사진출처=리틀빅픽처스>

이런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해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주특기다. 그런데 '데몰리션'은 약간 다르다. 캐런의 아들인 필이 그 대가를 치르면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지 않는 필이 아이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해 병원에 간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남편은 캐런의 외도를 알고도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아들은 엄마의 내연남이 집에 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색하지 않지만 그녀 주변의 인물들만 힘겨울 뿐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이런 상황들을 모를까. 자신의 마음은 편했을까. 욕조에 들어가서 대마초를 피우며 감정을 추스르는 장면은 응집된 그녀의 감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보며 마치 자신에게 암시를 거는 것처럼 소리지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네 원래 모습을 감추지 마. 그 모습대로 살아."

피폐한 인물을 연기하는데 나오미 왓츠는 적격이다. 니콜 키드먼과 함께 호주를 대표하는 배우인 그녀를 먼저 알아본 사람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영화 '21그램'에 서 그녀는 숀 펜, 베네치오 델 토로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내공으로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물론 그전부터 평론가들의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각광받았다. 보는 사람들까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처절한 슬픔을 연기하는 것은 그녀만의 인장(印章)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는 조금씩 변했다. 영화 '세인트 빈센트'와 '위아영'을 기점으로 '데몰리션'에서는 절제된 톤을 유지한다. 나오미 왓츠는 정중동의 모습으로 캐런 그 자체가 되었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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