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를 물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영화 "곡성"
미끼를 물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영화 "곡성"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9.2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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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사진출처=이십세기폭스코리아>

지옥은 본 사람도 없지만 거기에 익숙한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단테가 '신곡 지옥편'에서 묘사한 광경들을 읽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지옥에 대해 짐작할 길이 없다. 천국에 대한 환상은 갖고 있으나 지옥에 대한 예측은 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면에서 나홍진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일관되게 자신만의 지옥도를 그리고 있다. 영화 '곡성'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영화는 곡성에 있는 어느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 자기 집 마루에 앉아 있는 남자를 클로즈업하면서 타이틀이 뜨는 서늘한 오프닝은 강렬하다. 주요 갈등은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과 종구(곽도원 분)의 딸인 효진(김환희 분)이 악령에 시달리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인(쿠니무라 준 분)과 무명(천우희 분)이 번갈아 나오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인 무광(황정민 분)이 찾아와 굿을 하면서 극의 흐름은 파죽지세로 치닫는다.

'곡성'의 플롯은 간단하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현지인과 외지인,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으로 표현되는 가톨릭적 요소, 공존하는 선과 악 등 대립항들이 주를 이룬다. 이 충돌이 혼란을 유발하고 관객을 속고 또 속인다. '제69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선정되기 전부터 나홍진 감독은 전작 '황해'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보여줬다"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은 '곡성'에서는 뒤집히지만 맥락이 다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줄곧 추구해온 철학을 업그레이드시킨 버전이랄까.

movie_image8gmomgha <사진출처=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추격자'에서는 연쇄살인마가 지영민(하정우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시작했다. '황해'에서는 김구남(하정우 분)이 살인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전개했다. 그 동기는 바람난 아내를 찾는 남자의 순정이었다. 초반에 모든 패를 다 보여주고 판을 벌인 셈이다. '곡성'에서 나홍진 감독은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진짜'는 보이지 않는다.

이 의구심은 올해 유행어가 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와 상통한다. 왜 이 마을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좀비가 되며, 무고한 아이가 악의 제물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피 흘리는 사람, 시든 버섯처럼 일관되게 표현되는 죽음의 이미지만이 모든 맥거핀을 넘어서 선명한 인장으로 남는다. 결국 인간은 영화에서 인용된 성경의 한 구절처럼 직접 보고 만져 봐도 의심한다. 물증이 있어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사실을 수용한다. 신의 사제로 나온 이삼(김도윤 분)마저 뿌리칠 수 없었던 유혹. 그것은 종구가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라'며 자신의 손목을 잡았던 무명을 떨쳐내던 동선과 대조되며 메시지를 강화한다. 살아남은 자나 죽어가는 자나 모두 외쳤을 공통된 탄식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처럼.

movie_imagedvlbujo8 <사진출처=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다만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화법을 고수하는 나홍진 감독은 그래서 여전히 낯설다. 무수한 추측들은 과연 관객을 위한 것일까, 자신을 위한 것일까.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영관을 나서던 학생들도 진심으로 현혹되었을까. 시나리오만으로 충무로 관계자들을 떨게 만들었던 '곡성'이 15세 관람가인 점은 의외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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