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거나 숨을 멈추거나, 영화 "맨 인 더 다크"
눈을 감거나 숨을 멈추거나, 영화 "맨 인 더 다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1.26 2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ain_poster올 하반기를 맞아 페데 데이비즈 감독의 영화 '맨 인 더 다크'가 북미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다. 샘 레이미 감독의 고전 '이블 데드'를 리메이크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제작진들이 다시 의기투합했다는 점에서 일찍이 할리우드에선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1위를 하며(올해 개봉한 공포영화들 가운데 유일하다) 개봉한지 열흘 만에 순제작비 5배 이상에 달하는 5,11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지금 극장가가 비수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맨 인 더 다크'의 선전은 독보적이다.

'맨 인 더 다크'의 내용은 간단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록키(제인 레비 분)와 알렉스(딜렌 미네트 분), 머니(다니엘 조바토 분)는 어느 맹인(스티븐 랭 분)의 집을 털기로 한다. 머니가 집요하게 사전 조사해서 결정한 사냥감이다. 머니는 집주인이 퇴역군인이라는 것은 알지만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일이 수월할 거라고 친구들을 설득한다. 게다가 그에겐 딸이 교통사고로 죽어서 받은 보험금이 있다. 록키와 알렉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합류한다. 그러나 남의 돈을 거저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맹인은 이라크 참전 용사였던 점을 증명하듯 괴물 같은 존재다. 비록 볼 수 없지만 홈그라운드의 동선을 속속들이 파악하며 침입자들을 응징한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돈을 갖고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영화의 원제는 'Don't Breathe'다. 국내외 영화 포스터와 부합하는 제목이지만 국내용 제목은 '맨 인 더 다크'로 수정되었다. 북미 제목이 제인 레비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국내 제목은 스티븐 랭에게 집중했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보는 관점에 따라 다채롭게 공포를 만끽할 수 있음을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 가시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 도식이 전부는 아니다.

'볼 수 있다는 것'과 '볼 수 없다는 것'의 대립은 시각과 촉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의 충돌로 이어진다. 맹인은 볼 수 없기 때문에 시각을 제외한 모든 기관이 상대적으로 발달했다. 머니가 뜯어낸 문고리를 맹인이 더듬더듬 발로 밟으며 실체를 확인할 때. 그가 총을 쏠 때에도 상대방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총부리로 관자놀이를 찾아 더듬더듬 손을 움직일 때. 관객은 총알이 발사되는 것보다 더 극도의 긴장감을 느낀다.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공을 들인 공포 스릴러다.

이런 전개는 영화 후반에는 가치관의 갈등으로까지 확대된다. 시작은 단순한 '빈집털이'였으나 본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로 압축된다. 그 중심엔 록키가 있다. 그녀는 디트로이트라는 불모지에서 자포자기 상태인 엄마와 실업자인 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록키는 어린 여동생을 위해 범행을 결심한다. 알렉스와 머니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일을 벌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사랑과 희생을 이유로 움직인다. 여기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동생이 안전한 생활을 하고, 교육을 받아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관객은 결과적으로 그녀가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맹인에게 무자비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살아남기를 원한다. 그래서 새로운 기회를 손에 넣기 바란다. 이 작품에서 어린 여동생은 관객이 록키에게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는 근거가 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관계가 차단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맨 인 더 다크'의 배경이 되는 황폐한 노란 집은 상대의 실체를 알 수 없는 이 사회에 대한 은유다. 누군가는 겉보기에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며 정당화하지만 온전한 행동은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맹인은 장애자다. 그러나 집에 들어선 순간 공포의 주체와 대상은 뒤바뀐다. 절대적인 강자와 약자는 없다. 디트로이트의 빈집털이 십대들은 치기 어린 행동으로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다. 그렇다고 맹인이 절대악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 그의 삶은 상처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개개인의 무지함이 어떤 비극으로 치닫는지 관객에게 제대로 알려준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