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통해 "새로운 나"를 보는 우연, 영화 "사랑이 이끄는 대로"
연인을 통해 "새로운 나"를 보는 우연, 영화 "사랑이 이끄는 대로"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0.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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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사랑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외도라고 한다. 흔히 불륜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수식어들이다. 판단은 당사자들의 몫이 아니라 제삼자의 몫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준다는 점. 끌로드 를르슈 감독은 영화 '사랑이 이끄는 대로'에서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말한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 어떻게 생성되고,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지 보여준다. 그러니 속단하지 말고 끝까지 이 연인들을 지켜볼 것을 권유한다.

영화 음악 작곡가 앙투안(장 뒤자르댕 분)은 일 때문에 방문한 인도에서 대사 부인 안나(엘자 질버스테인 분)를 만난다. 서로 상반된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은 처음 만난 대사관 만찬 자리에서 급격한 호감을 느낀다. 그날 밤, 이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던 안나의 남편 사무엘(크리스토퍼 램버트 분)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안나를 추궁한다.

%ed%8f%ac%ec%8a%a4%ed%84%b0울면서 뛰쳐나온 안나는 앙투안의 방으로 가고, 이야기 도중에 바라나시로 여행갈 계획을 말한다. 결혼한 지 오래되었으나 아이가 없어서 기도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인다. 아이가 생기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며.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난다. 그러던 중 앙투안은 평소 시달리던 심한 두통의 원인이 뇌혈관에 있음을 알게 된다. 기압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것도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그는 안나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안나를 따라 바라나시로 떠난다.

끌로드 를르슈라는 이름에서 영화 '남과 여'의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다. 아니면 영화 '레이디스 앤 젠틀맨'에서 제레미 아이언스와 패트리시아 카스가 보여준 우아한 사랑을 떠올릴 수도 있다. 전작들에서 엿볼 수 있는 애절한 사랑과 섬세한 감정선은 이번 신작 '사랑이 이끄는 대로'에서도 여전하다. 노감독의 연륜이 느껴지는 성숙한 연출의 힘은 앙투안과 안나의 사랑을 통속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잡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관객에게 이해시키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다. 국내용 제목 그대로 '사랑이 이끄는' 그대로 따라간다.

극중 두 사람의 여행지가 되는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이 흐르는 '힌두교의 성지'다. 강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은 장관이다. 혼탁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신을 향해 고개 숙이는 사람. 강물을 두 손에 모아 자신의 몸에 뿌리며 신과 하나가 되는 사람들. 배를 타고 이들 사이를 가로 질러 다시 지상으로 나아가는 사람...

그들의 몸을 감싸는 형형색색의 옷처럼 여행객들은 각양각색이지만 본질은 같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라는 점. 정성껏 온 몸을 적시며 아기를 간구하던 안나의 몸짓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끄는 앙투안의 손길은 따스하다. 다시 땅 위로 올라가 삶을 시작하라는 무언의 격려를 담은 것처럼.

'사랑이 이끄는 대로'는 양감이 풍부한 작품이다. 두 사람이 타고 다니는 기차나 배는 '그들만의 공간'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암시하는 복선으로도 변주된다. 종교적, 혹은 이념의 차이가 있는 관객들도 동요될법한 인도의 풍광은 탁월하다. 연애로 시작해 여행으로 전환되는 전개는 여러 물감을 뒤섞은 데칼코마니처럼 알 수 없지만 매혹적이다.

안나의 남편이 앙투안을 의심해서 자신에게 찾아온 엘리스(엘리스 폴 분)와 있던 일을 폭로하는 장면은 프랑스 영화답다. 나이든 남자의 치졸함이나 졸렬함 등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게 인간의 본성임을 어쩌랴. 같은 소재를 같은 장소에서 다르게 풀어낸 전규환 감독의 영화 '불륜의 시대'와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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