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엣지있는 아가씨야! 배우 "김태리"
나 엣지있는 아가씨야! 배우 "김태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0.0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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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CJ엔터테인먼트 사진출처=CJ엔터테인먼트

올해 칸 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박찬욱 감독 옆에 앉아 있었던 김태리는 자체발광 그 자체였다.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웨이브펌을 한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수줍게 미소 짓는 모습은 천진해 보였다. 고민정 스타일리스트는 '그래서 되도록이면 과도한 의상은 피하자'는데 주력했다. 그녀는 뤼미에르 극장 상영회에서는 실크 롱 화이트 드레스를, 기자회견장에서는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었다. 심플했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다.

수많은 베테랑 기자들이 질문을 하는 상황에서 김태리는 침착하지만 명확하게 대답했다. 데뷔작 영화 <아가씨>에서 파격적인 동성애 연기를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사실 이 부분은 오디션 공고 당시에 수위 논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미 박찬욱 감독님과 협의가 되었고, 영화에 필요했다고 판단했기에 촬영했다'고 말했다.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도와준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아가씨>를 촬영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웠는지 알 수 있다. '신인의 특권을 톡톡히 누렸던 것 같아요'라며 웃을 때에는 정작 신인답지 않은 여유까지 느껴졌다.

문자 그대로 혜성같이 나타난 김태리는 근래 등장한 신인들과 확실히 다르다. 혹독한 통과의례 같았던 <아가씨>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작품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으나 김태리의 존재감과 연기력만큼은 모두 인정했다. 특히 여자관객들의 지지가 높았다. 같이 연기했던 하정우가 '태리야끼'라고 지어준 별명은 그녀를 귀엽다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덧붙이는 신조어다.

처음 김태리가 주목을 받은 것은 동성애 연기 때문이었다. 수위가 센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영국드라마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과연 누가 레즈비언을 연기할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노출 수위에 협상 없음'이라는 하녀 역의 숙희 오디션 공고는 여기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김민희의 캐스팅 소식은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조진웅의 합류도 한몫했다. 그러다 나온 이름 김태리 석자는 무척 낯설었다. 당시 그녀의 필모그래피에는 김소연 감독의 영화 '문영'이라는 독립영화 한 편이 전부였다. 비교적 많은 CF를 찍었다는 것은 '아가씨' 개봉 이후에 알려진 일이었다. 신비주의 콘셉트가 아니라 그녀는 문자 그대로 '초짜 신인'이었다. 그 후에 공개된 스틸컷과 예고편만으로 그녀는 대중들의 우려를 잠재웠다. 눈빛부터 발성과 동작 등 쟁쟁한 배우들과 전혀 위화감 없이 어우러졌다. 김태리는 존재 자체가 새로웠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권세가였던 코우즈키 저택에 들어갔던 하녀 숙희(김태리 분). 아가씨인 히테코(김민희 분)를 부추겨서 백작(하정우 분)과 결혼하게 만들 심산이었지만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백작에게 뒷돈을 받아 조선땅을 뜨려는 계획이었으나 숙희는 아가씨가 가여울 뿐이다. 장물아비 밑에서 갓난아기들한테 젖을 먹일 때에도 숙희는 끝단이와 달랐다. '지 애들한테만 젖을 준다'는 끝단이를 야박하게 홀겨보던 숙희였으니 이 대저택에서 엄마 없이 홀로 자란 히데코가 얼마나 불쌍했을까. 히데코를 씻기면서 입에 사탕을 물리는 것도 이런 모성본능에 기반한다. 다만 그 모성애가 에로스로 변환되는 순간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는 진짜 시작된다.

%ea%b9%80%ed%83%9c%eb%a6%ac2 <사진출처=CJ엔터테인먼트>

이제 막 충무로에 입성한 여배우가 첫 연기로 동성애 장면을 찍었다는 것. 그것에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 그 설정이 왜 작품에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는 지적은 비슷한 맥락에서 박찬욱 감독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를 두고 했던 말이었다. '아가씨'에서 순수함과 저돌적이지만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숙희를 연기하려고 1,500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김태리를 본 순간 주저하지 않았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이 성공하면서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라서 조금 놀랐다. 여태까지 충무로에서 여배우들의 역할은 한정되었다. 주로 멜로영화에서 남자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거나 영화제용 작품에서 주연상을 수상할 정도의 연기력으로 입증될 뿐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가씨'에서 김민희와 김태리의 사랑을 여성들의 연대로까지 받아들였다. 그만큼 설 곳이 좁은 여배우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역설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아가씨'를 본 관객들이 꼽은 최고의 명대사.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이 시적인 울림처럼 김태리가 대중들의 고유명사로 오랫동안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 믿고 보는 배우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매력적인 칭찬과 도발이 또 있을까.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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