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스타포커스 INTERVIEW 편견에 갇힌 세상을 향한 신선한 환기 장혜영 감독 인터뷰
시리즈스타포커스 INTERVIEW 편견에 갇힌 세상을 향한 신선한 환기 장혜영 감독 인터뷰
  • 스타포커스
  • 승인 2019.01.16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년 간 시설에서 생활해온 발달장애 동생과 하루아침에 동거하게 된다면? 혹자는 텍스트만으로도 부정적, 비극적인 앞날을 떠올릴 것이다. 장애란 무릇 불행의 서사를 동반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 장애는 불행이 아닌 불평등임을, 장애가 있다고 삶 자체가 달라지는 게 아님을 유쾌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작품이 있다. <어른이 되면>의 연출자이자 주연을 맡은 장혜영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었다.

Editor 박주연 | Photographer 양언의 · 시네마달 제공 

“누군가 13살의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 외딴 산꼭대기 건물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아야 해. 그게 가족의 결정이고 너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어. 네가 장애를 타고났기 때문에.” 장혜영 감독은 여태껏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동생 혜정의 삶에 대해 이렇게 돌이킨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두려움이 동반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내린 선택이다. <어른이 되면>은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뒤 지난 해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의 첫 6개월을 담았다. 유쾌한 혜정의 성격 덕분에 웃음이 터지는 장면과 장애에 대한 편견에 허를 찌르는 대목이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 “지금 아니면 안돼!”…<어른이 되면>의 탄생비화 

“아무래도 혜정이와 공동연출이 아닐까요?” 장혜영 감독의 너스레 그대로였다. 영상 제작, 편집 등은 장혜영 감독의 손을 거쳤지만 영상 속에서 활개 치는 날 것 그대로의 혜정은 이 영화의 리듬을 완성하는 존재다. <어른이 되면>은 장혜영 감독에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한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제작된 건 아니었다고 말한다.

Q. 감독 데뷔작으로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계기가 궁금해요

A. 기화를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유튜브 채널을 2년 째 운영 중인데 사실 그 전까진 동생을 직접 등장시킬 생각은 없었거든요. 일본 여행을 가면서 브이로그를 할 생각에 영상을 찍어뒀는데 찍고 보니 어떻게 편집해야할지 알겠더라고요. 처음에는 장애와 관련된 영상이니까 우리가 받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어쩌면 우리의 일상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게 가장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Q. 제작비 펀딩을 통해 영화 제작을 하셨죠?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A. 5천만 원 목표였는데 금액이 좀 컸죠. 주변에서도 너무 무모한 거 아니냐고 많이 들었는데 이런 데서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필요한 걸 필요하다고 말하지 못 하는 게 싫어요. 만약 잘 안 됐더라도, ‘아직 이 서사에 공감하는 사람이 이 정도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니까요. 목표 금액이 중간 정도 차고서 소강상태에 머물렀는데 그때 촬영 감독님이 예고편을 멋지게 만들어주셔서 그걸로 쭉 치고 올라가게 됐고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죠.

Q. 결국 감독님의 무모한 추진력이 이 영화를 만든 셈이네요?

A. 제 삶과 작업방식은 동일한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고요. 사실 ‘중증발달장애를 가졌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이건 명백하게 불행 트랙이 예정돼 있는 거잖아요. 그럴 때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건 과감하게 불확실성을 높이는 거예요. 10년 뒤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지금부터 한 달 동안 제가 살아오지 않은 방식으로 뭔가를 해내면 한 달 후에는 안 보이던 선택지가 생기는 거잖아요.

Q. 경우에 따라서는 과감하게 지르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A. 그 전까지는 내가 성공해서 좋은 여건을 마련한 뒤에 챙겨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잘될 거라는 보장도 없거니와, 잘 되더라도 그 때까지 동생이 기다려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어요. 인생에 완벽한 준비는 없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안 돼! 하는 생각이었고요. 결정적으로 사고 전환의 계기가 된 건, 동생이 있던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불거졌던 사건 때문이었어요. 내부 고발로 폭로가 됐는데 저 말고 다른 장애 가족들은 공론화되는 걸 원치 않으시더라고요. 충격이었죠. 한 인간으로, 한 시민으로 더 바라보게 된 것 계기였어요. 내게 당연한 것들이 동생에겐 당연하지 않지? 하고요. 그렇게 직면하고 나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할 것인가,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될 것인가. 전 후자였던 것 같아요.

◇ “촬영 힘들지 않았냐고요? 작품보다 중요한 건 삶이에요”

혜정에게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자매의 일상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매는 함께 울고 웃으며 평범하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즐긴다. 그 속에서 혜정의 기분이 어떤지, 취향이 뭔지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장혜영 감독은 하나씩 습득해나간다. 친동생이라는 것,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 외에 혜정에 대해 전혀 몰랐던 장혜영 감독은 아직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Q. 혜정과 본격적으로 살기 전에 어떤 것들을 준비했는지 궁금해요

A. 제가 같이 살기로 했다고 혜정을 당위적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 역시 혜정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1년 동안 열심히 꼬드겼어요. ‘나랑 살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하면서 구애를 했죠. 처음엔 시설을 집이라고 생각했는지 나 언제 돌아가냐는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언니랑 밖에서 나와서 함께 산다는 개념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했어요.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함께 여행도 다녔죠.

Q. 준비가 철저하더라도 분명 시행착오는 있었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저 조차도 혜정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성이 장애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장애를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가는 게 좋고, 거기서 서바이벌 할 수 있다면 사회에서도 잘 적응하리라 믿었어요. ‘노들야학’(노들장애인야간학교)을 상징적으로 생각했던 거죠. 여길 통과 못하면 그 다음은 생각할 수 없었기에 성과를 내야하고 잘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앞섰어요. 마음의 함정에 빠진 거죠. 다행이도 저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스톱!’을 외치는데 노들야학을 그만두고 둘이서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자, 했던 게 잘한 일인 것 같아요.

Q.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혜정 씨가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느끼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A. 사실 영화만 보고 제 교우관계가 좋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동생과 함께 살면서 드라마틱하게 개선된 부분이에요. 동생과 살겠다고 하고 보니, 아무리 날고 기어도 시간 앞엔 장사 없더라고요. 내가 일하는 시간을 채워줄 사람이, 혜정을 인격체로서 대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곁에 남은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부탁을 했죠. 동생의 친구가 돼 달라고요. 동생이 시설에서 잃어버린 것은 자길 아끼고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한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끊어진 관계의 실들을 연결해주고 싶었어요. 거절할 수도 있으니 상처 받을 각오하고 던진 말인데, 친구, 지인들이 흔쾌히 응해줬기에 모든 게 가능했어요.

Q. 친구 은경 씨가 인상적이었어요. 혜정 씨와 실랑이를 하다가 인터뷰에서 ‘혜정언니 짜증나요’ 라고 한 마디 던지잖아요. 관객들이 가장 공감하면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컷이었죠 

A. 저도 놀랐어요. 동생은 절대 저에게 고집 부리지 않거든요. 명확하게 위계를 인식하고 있죠. 하지만 저 조차도 누군가를 만날 때 다른 사람이 되는 걸요. 혜정도 은경이 앞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저도 ‘혜정언니 짜증나요’라는 은경이의 말이 너무 좋았어요. 장애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으면 안 된다는 도그마를 정면으로 깨뜨려주는 말이잖아요.

Q. 혜정 씨가 촬영을 내키지 않아 할 때도 분명히 있죠. 변수가 많은 작업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 그럴 땐 어떻게 풀어나갔나요?

A. 원칙이 있었어요. ‘작품보다 중요한 건 삶’이라는 거요. 카메라의 존재가 동생을 변화시키는 것 같을 땐 촬영을 중단했어요. 다시 사회로 나와서 살아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찍고 있어’가 디폴트값이 되면 안 되니까요. 일단 우리가 좋은 커뮤니티가 되는 게 먼저고, 그 안에서 혜정이 자유로울 때 촬영을 했죠.

◇ 영화감독, 유튜버, 가수, 강연… 장혜영의 키워드

장혜영 감독을 그저 영화감독만으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고등학생 때부터 해왔던 영상 작업을 토대로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종 사회적 현안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정식으로 음원을 발매한 가수이자, 발언에 기회가 주어질 땐 스스럼없이 강단에 오르는 강연자가 된다. 아직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Q.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방향성을 어디다 두고 계신가요?

A. 지금까지 그랬듯 제가 다른 사람과 의논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들 중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어요. 생각이 변화하고 도달할 땐 그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모두가 3분 요약을 할 때, 전 30분 동안 천천히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싶거든요. 무엇보다 장애 이슈에 대해서도 책임을 갖게 됐어요. 이 또한 결국 민주주의로 집결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나와 다른 사람을 죽이지도 해치지도 않는 지혜로운 길들을 이야기하는 게 민주주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마주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요.

Q.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배경이 돼 주고 싶다는 사명감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A. 두 가지의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 가족이 평범하게 잘 살다 죽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욕망이 있고요. 또 하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이 문제의 당사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완벽하게 배제돼서 마이크 앞으로 갈 기회가 없던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제가 잘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자면 물론 저는 아직 멀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요.

Q. 영화 촬영은 계속 하실 예정이죠? 다음 계획이 궁금해요 

A.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구상이야 많은데 만드는 게 문제죠.(웃음) 혜정의 존재를 픽션화해서 ‘장애인도 연예인이 될 수 있나요?’ 혹은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를 조승우가 아닌 초원이가 연기할 수 있나요?’ 하는 이야기들도 구상하고 있고요. 인간의 가치를 수량화, 서열화 해서 높은 사람은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행해도 어쩔 수 없다는 서사가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데 그것에 맞붙는 서사를 가열차게 만들고 싶어요. 그거야말로 첨예한 싸움이 아닐까요? 하지만 진검승부가 될 테니 그만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더 자세한 내용은 <스타포커스> 1월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