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정민, 연기가 타성에 젖은 걸 알았을 때
[인터뷰] 황정민, 연기가 타성에 젖은 걸 알았을 때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8.1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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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까고 연기했어요."

연기를 매개로 하는 분야 중 연극계가 가장 거칠 기로 소문이 나있다. 무대 위에서 가까운 관객을 앞에 두고 가벼운 연기부터 절정의 감정 소모 연기까지 펼쳐내야 하는 이 콘텐츠는 조명이며 소품 등 작은 것 하나 하나 모두 실시간으로 완벽해야 하기에 늘 긴장감이 맴돈다. 그 지독한 긴장감이 사람을 거칠게 만들 것이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무리 거친 판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배우라 하더라도 "후다 깐다"는 말을 인터뷰 장에서 뱉기란 쉽지 않다. 

'후다'는 화투를 칠 때의 패 혹은 부적 등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후다를 깐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는 말이다. 거친 연극계에서 최정상의 능력을 보여주고, 그 이후 작품 마다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베테랑 연기자 황정민은 <공작> 인터뷰 중에 '후다 까고 연기했다'라는 표현을 잊을만하면 사용했다. 

황정민이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내용은 분명 재밌는 첩보물이었으나, '좀 밋밋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기 선수들이 하는데 뭐 그리 어렵겠어?"라는 타성에 젖은 생각도 있었던 <공작> 촬영장에서 황정민은 자신의 연기력의 밑천이 다 드러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감정을 끌어올려서 연기를 보여도, 최대한 어깨의 힘을 빼고 연기를 보여도 자신이 생각한 만큼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했다. 영화 촬영 초반부부터 느껴버린 그 부족함은 급기야 배우들과 감독, 제작진에 "나의 능력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라는 요청을 하게 됐다. 

옥죄어 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그리하여 매 장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 끝에 초심을 얻기 위해 연극판으로 달려가게 만든, 그리고 '휴식'을 모르는 황정민에게 휴식의 필요성을 안겨준 작품이 <공작>이다. 

최근 황정민을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직접 만난 그는 영화의 높은 완성도와 매체의 뜨거운 반응에 흡족한 듯 보였다. 그럼에도 촬영 현장은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 게 그의 변이다. 베테랑 황정민을 이토록 벼랑 끝에 몰게 한촬영 때 느낀 심리적 압박감은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첩보물인데 총성 한 번 울리지 않는다. <공작>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윤종빈 감독이 내게 팟캐스트 '이이제이 - 흑금성' 편을 보내줬다. 듣고 나서 나만 알고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들하고 꼭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영화 반응이 정말 뜨겁다.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배우들이 현장에서 굉장히 어려웠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베테랑 배우들이 즐비한 <공작>인데, 언제부터 어려웠나. 

A. 고려관 신부터 어려웠다. 촬영 초반이었다. 본격적으로 연기의 힘이 올라온 시기는 아니었다. 사실 쉽게 생각했다. 윤종빈 감독이 대사 신에서 다이나믹한 액션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긴장감을 갖는 액션을 하려고 했다. 막상해보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거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Q. 무엇이 어려웠다는 건가. 

A. 모두 대사를 외워서 온다. 대사 NG가 났다는 것은 아니다. 다 긴장감을 연기하고자 했다. 그렇게 연기를 하면 서로의 호흡이 딱 맞아떨어져 가면서 긴장감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섞이지가 않더라. 따로 따로 놀더라. 이상한 장면이 되더라. 흑금성과 리명운(이성민)이 얘기를 하는데, 서로 속내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고, 책상 밑에서는 양날의 칼이 왔다 갔다 해야 되는데 뭔가 이상했다. 테이크도 많이 갔고 숨소리 하나 조절을 하고, 작은 몸짓도 정말 조심했다. 전전긍긍하면서 연기했다.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드니까 서로서로 얘기를 하면서 풀어나갔다. 얼마만의 이렇게 리허설을 하고 연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Q. 평소 작품에서는 이런식으로 리허설을 한다거나 미리 합을 짜보거나 하지 않나.

A. 다 잘하는 사람들인데, 대학생 졸업 작품도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다 프로선수들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 밑천이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이성민, 주지훈 모두 서로 도와 달라면서 연기했다. 그러면서 돈독해지기도 했고, 장면 장면에서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Q. 그렇게 힘들었던 촬영 현장이었던 것 치고는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배우 황정민은 또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베테랑>의 서도철이나, <국제시장>의 덕수, <히말라야> 엄홍길, <검사외전> 변재욱과는 다른 교묘한 지점의 새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A. 사실 이 지점은 노력 밖에 답이 없다. 오직 이것만 고민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새로운 색깔이 쌓여지는 것 같다. 배우가 사실 관성이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관성대로 연기하게 된다. 이번에는 사실 밑천이 다 드러났고, 후다가 까여진 거다. 그 때는 제일 중요한 게 솔직함이다. 나를 채워달라고 서로 얘기를 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것 같다.

Q. 이 작품을 하면서 밑천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리고 달려간 작품이 연극 <리처드3세>다. 이유가 있나. 

A. 사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말이 쉽지 그렇게 예전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연극을 하면서 진짜 처음으로 가보고자 했다. 연극은 엄청난 연습량이 필요하다. 대사를 뼈에 새긴다고도 한다. 그만큼 많은 연습량이 필요한데, 영화는 사실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는다. <공작> 하면서 아차 싶었다. 내가 많은 작품을 많이 했음에도 모자르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연극하고 푹 쉬려고 했다. 그리고 1년째 잘 쉬고 있다.

Q. 연극하고 난 소감은 좀 어떤가. 

A. 대사들이 오랜만에 하니까 너무 어렵더라. 장단음 맞추는 것도 그렇고, 쉽지 않았다. 대사를 꼼꼼히 체크하면서 연습했다. '이렇게까지 해야되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옛날에 이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라는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공연이 과하게 잘됐고, 오랜만에 좋은 공부를 하게 됐다. 

Q. 배우 황정민은 이상하게도 실화를 많이 찾는다. <국제시장>, <히말라야>, <군함도>나 <공작> 모두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실화를 찾는 이유가 있나. 

A. 그런 건 없다.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갖는다. 이런 재밌는 이야기가 있으니 영화로 나오면 봐주세요라는 마인드로 접근한다. 아마 실화에 참여를 많이 한 이유는 실화가 갖고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샀는데 정말 재밌다고 쳐봐요. 책장 넘기기 아까운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 책을 선물하다는 생각으로 결정해요. 작품은 인연이라 생각해서 가장 먼저 들어온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합니다.

Q. 흑금성 프로젝트의 실존 인물인 박채서를 만났다고 들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말 특이한 지점의 인물이라 소감이 궁금하다. 

A. 보통 저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때 실존 인물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어지는 게 있을까봐. 그 사람은 삶인 거고, 나는 재창조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점을 경계한다. 그런데 이번은 정말 엄청 궁금했다. 특히 그 신념이 궁금했다. 왜 이 일을 택했으며, 나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뒷통수를 맞고 무너지는 자괴감도 궁금했는데, 그런 부분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실제 그 분이 북한통이다. 개성공단이며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다 그 분이 연관돼 있다. 눈이 어떨지 정말 궁금했는데, 눈을 읽을 수가 없다. 눈이 까맣더라. 진짜 읽을 수가 없었다. 깜짝 놀랐다. 저 내공은 뭘까 싶더라. 대단한 바위, 벽 같은 느낌이었다. 저 에너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Q. 박채서 가족은 영화를 어떻게 봤나?

A. 그 분은 울컥했다고 하시더라. 그 분께서 가장 무서워하는 분이 사모님인데, 정말 잘봤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사모님이 저한테 '우리 남편이랑 비슷한 얼굴을 봐서 놀랐다. 고맙다'고 했다. 저한테는 그게 가장 큰 칭찬이었다.

Q. 영화가 첩보물이라고는 하지만 정치 드라마에 가깝다. 여름에 개봉하는 일반적인 텐트폴 영화랑은 차이가 있다. 

A. 관객이 알고 있는 첩보물과 결이 완전히 다른 작품이긴 하다. 첩보는 하나의 소재고, 정치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배우가 그걸 설득해야 한다. 텐트폴에 껴서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정치드라마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우정과 화합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감정이 회오리를 치더라. 그 감정이 이해가 된다면 꽤 좋은 영화 봤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Q. 이제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 윤제균 감독의 <귀환>이다. SF 장르다. 어떤 각오를 하고 있나. 

A. 사실 1년 간 정말 잘 쉬었다. 그냥 쉬는 게 아니라 되짚어보게 되더라. 후회는 없다. 군함도 이후에 '영화계에 황정민 밖에 없냐'라는 나에 대한 평가를 많이 바라봤다. 처음에는 속상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내 영화를 다 봤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내린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니까 고마운 거다.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와 관련된 작품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미래로 간다.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된다. 쉬면서 충전을 많이 한 만큼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높다.

PHOTO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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