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공작" 회색빛 첩보 다큐멘터리
[리뷰] "공작" 회색빛 첩보 다큐멘터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8.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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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한 번 울리지 않는 첩보물이 나왔다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이다흔한 액션 신 한 번 없이 엄청난 몰입도와 긴장감을 이끌어낸다한국영화계에 빼놓을 수 없는 황정민과 함께 이성민주지훈조진웅이 출연한다

  

영화는 올해 나온 국내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축에 속한다. <공작>에 버금갈만한 작품이 있다면, <독전>, <1987> 정도다촬영 내내 완벽한 연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몸부림쳤다는 배우들의 연기는 높은 수준을 훌쩍 뛰어넘으며, 2시간 넘게 숨 쉴 틈 없는 긴장감이 이어지고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평양의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남과 북의 구악 정치세력이 국민을 속이고 기득권으로서 공존하려고 했던 작당이 진정 ''이라는 강렬한 메시지와 함께 앞으로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도 제시한다이 모든 것이 거의 완벽한 만듦새로 탄생했다남과 북 정치인들이 보기에 적절하다.

  

최근 개봉한 <인랑>, <신과 함께 인과 연>과 비교했을 때 완성도면에서도 <공작>이 압도적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군도:민란의 시대>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은 <공작>을 통해 새로운 느낌의 한국형 첩보물을 만들며 영화계에 획을 그었다

줄거리_암호명 '흑금성', 북한의 고급정보를 빼내야 한다

1990년대 초 북한이 핵 개발에 성공했다는 정보가 나오자 남한의 정세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다시 슬금슬금 몰아치는 전쟁의 위기가 한반도에 찾아온다. 위기감을 느낀 남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군 정보기관에서 엘리트로 알려진 박석영(황정민)을 스카웃 해 북한 내 고위 인사들을 만나 고급 비밀정보를 빼내도록 지시한다. 

<공작>은 일명 '흑금성 사건'으로 알려진 실화를 모티브로 재가공 돼 만들어진 영화다. 황정민이 맡은 박석영은 박채서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재창조됐다. 실제 안기부에서 흑금성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박석영은 군인 장교로서의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새로운 인물로 세탁시켜, 무역업에 종사하는 장사꾼으로 변신한다. 중국을 주 무대로 삼아 북한 사람들과 만남을 노린다. 당시 북한은 구소련과 이데올로기의 붕괴를 겪으며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처한 시기였고, 안기부와 흑금성은 이 약점을 파고 들어간다. 뛰어난 능력으로 북한의 대외경제위처장 리명운(이성민)을 만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두 사람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눈빛을 교환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진심을 알고 마음을 연다. 

북한에 돈을 벌어줄 아이템으로 광고협약을 맺는 등 화합의 모양새를 이끌며 첩보원으로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뤄가던 박석영은 뜻밖의 암초를 만난다. 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정권교체 바람이 불게 됐고, 안기부 고위층은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자신들이 기득권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판단, 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남한의 서해지역을 공격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돈이 필요했던 북한 정치세력은 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될 경우 평화와 화합의 분위기는 냉랭해질 것이고, 박석영이 일군 광고계약 건은 종잇조각이 될 상황에 처한다. 

평화와 화합을 원했고, 남한 정세에 북한의 개입은 원치 않았던 박채서와 그를 믿고 지지하며 북한 국민들의 삶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리명운은 김정일을 만나 남한정세에 개입하지 말자는 설득에 나선다. 과연 '흑금성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가. 그리고 남과 북은 어떻게 변모해갈 것인가. 

주제의식_진정 한반도의 적폐는 누구인가

오랫동안 남과 북은 마치 성경에서 하나님과 마귀 곧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했다. 자신들은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민족, 그 상처의 골은 언제나 깊었다. 

하지만 <공작>이 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국제사회에서 서로 생존하기 위해, 또 각 나라의 정치에서 살아남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서로에게 더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흰색과 검은색이 아닌 회색빛에 놓인 자들의 이야기다. 특히 김정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굶고 사는 북한 인민들을 위해 노력하는 리명운을 통해 기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북한의 이미지와는 다른 민낯을 들춰낸다. 그 시선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다. 

또 하나 <공작>에서 심판하고자 하는 세력은 국민들의 안위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구악정치세력이다. 정권교체를 막기 위해 전쟁 분위기를 억지로 이끌어내려 했던 당시 여당 정치인들, 남한에서 화합을 주도하는 대통령이 나오는 것보다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이 서로의 체제를 굳건히 하는데 더 일조한다고 판단하는 북의 군 세력이 진정 악으로 묘사된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사고와 판단이 실제 1990년대 있었던 일이었다는 점이 웃지 못 할 코미디다. 

<공작>은 마치 첩보물로 공개가 됐고 공작 활동이 굉장히 면밀하게 진행되지만, 메시지만큼은 정치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세밀하고 예민하게 한반도의 적폐를 꿰뚫어본다. 

연출_긴장감 넘치는 구강액션·압도적인 스케일

첩보물임에도 흔한 액션신 한 번 없다. 그렇다고 여타 다른 첩보영화처럼 고급 도구들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 말투로만 첩보물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감독의 숙제이자 배우들의 숙제이기도 했다. 

황정민과 이성민, 주지훈, 조진웅은 감독이 준 숙제를 완벽에 가깝게 풀어낸다. 대사가 오고 갈 때에 최대한 작은 액션과 무겁고 긴장된 표정으로 장면 장면마다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에너지들이 마치 스노우볼이 굴러가듯 흘러가 후반부에는 큰 눈덩이가 된다. 감정이 차곡차곡 쌓인 뒤 마지막 장면에서 '팍'하고 터진다. 그 감정의 회호리가 충분히 공감되고 이해가 된다. 

또한 스케일이 크다. 제작진이 촬영비용을 영리하게 사용했다는 판단이 든다. 평양의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대목이나, 김정일이 있는 건물의 압도적인 스케일 등 중국과 북한의 주요지점을 가슴이 확 뚫리는 그림을 제공한다. 그 외의 장면은 주로 음식점과 같은 작은 공간을 활용한다. 효과적인 선택과 집중이 분명해 보인다. 

연기_프로 연기자들의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

<공작>의 주요 배우는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조진웅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라 해도 거부감이 없다. 선수들이 모여 최고의 퍼포먼스를 이뤄내는 작품이 <공작>이다. 대사와 표정, 눈빛 만으로 총성 없는 전쟁을 이끌어낸다. 14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숨 죽이며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박석영 역의 황정민은 교묘히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킨다. 정보전에 능한 군인과 어떤 것이든 팔아 제끼며 돈을 버는 장사꾼의 두 얼굴을 오가며 작품의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디서 본 듯 안 본 듯 교묘하게 새로운 얼굴을 또 찾아냈다. 많은 작품을 함에도 매번 교묘하게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는 것이 황정민의 힘이다. 

이성민은 우리의 머릿 속에 각인된 북한군의 냉철한 이미지를, 따뜻한 사람 냄새 나는 사람으로 바꿔낸다. 강인하면서도 그 속에 깊이 깔려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정치인인 리명운을 만든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볼 연기다. 

조진웅은 언제나 강렬하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삼는 최학성이지만 절대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는 비열한 얼굴을 자연스럽게 비췬다. 극단의 감정을 오가는 연기가 아닌 절제하고 묵직한 연기를 보인다. 북한 진영의 최학성 같은 인물이 주지훈이 연기한 정무택이다. 역시 북한을 위하는 듯 하지만 자신의 성공 앞에서 비열해진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제 갈 길을 간 것만으로도 주지훈의 역량은 높이 사야 한다. 

한국형 첩보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작>은 색감이 뚜렷하다. 싸우지 않지만 물 밑에서는 양날의 검이 재빠르게 오가는 긴장감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그 안에 억지는 없다. 자연스러운 강한 에너지만 있을 뿐이다. 텐트폴 영화에는 맞지 않게 오락성이 떨어지지만, 좋은 영화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k 

한줄평더 깊이 알고 싶어진 흑금성의 진실

별점:★★★★★★★★(8/10)

PHOTO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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