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랑" 터널에 갇힌 늑대
[리뷰] "인랑" 터널에 갇힌 늑대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7.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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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김지운 감독이 신작을 들고 나왔다지난 2000년에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견량전설>(오시이 마모루 감독)을 실사화한 영화 <인랑>이다세기말 또는 신세기 초 혼란스러운 시대암울한 세계관을 근간으로 조직에 충성하는 존재들의 고뇌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에 질문한 <견량전설>은 비록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마니아층에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 <견량전설>을 김지운 감독이 실사영화로 만들었다그간 애니메이션 작품을 실사화로 했을 때 성공보다는 불운한 경우가 많았던 터라 우려가 적지 않았다그래도 김지운이라는 명성으로 인해 기대감이 컸고강동원과 정우성한효주김무열한예리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베일을 벗은 <인랑>은 우려의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미장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 감독의 재능은 여전히 빛을 발하며 훌륭한 비주얼을 나타내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주제의식의 설득력 면에서는 전작보다 더 부족함이 엿보인다

줄거리_가치관은 무의미해진 '치킨 게임'

영화의 배경은 2029년이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와 같은 열강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권다툼을 해 국제정세가 요란한 때다. 남북한 정부는 통일을 결정하고 5개년 준비계획을 세우는데, 한국이 아시아의 강대국이 될 것을 우려한 열강은 경제제재를 가한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한국 내 혼란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무장 테러단체 '섹트'가 이빨을 드러낸다. 섹트를 진압하려는 대통령 직속 경찰 특수조직 특수기동대가 창설돼 무력 진압에 나선다. 

늑대인간이라 불리는 특기대가 섹트를 진압하는 가운데 비무장 여고생을 살해하는 '피의 금요일' 사건이 벌어지고, 특기대를 해체하라는 여론이 기승을 부린다. 정보기관인 공안부는 반대 여론에 힘입어 특기대를 말살하고 국가 내 최고 정보 권력을 쥐려 한다. 

그러던 중 '강제 통일 반대'를 외치던 시위대 사이에서 섹트가 등장해 폭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며 경찰을 살상한다. 그러자 특기대가 나타나고 도심의 지하에 숨어 살고 있는 섹트를 말살하려 쫓는다. 그 와중에 임중경(강동원)은 폭탄을 운반하던 빨간 망토를 뒤집어쓴 여고생을 발견하나 소녀는 스스로 자폭한다. 이를 제지하려 했던 임중경은 폭발로 인해 의식을 잃고 이후 트라우마에 사로잡힌다. 

이 사건으로 인해 특기대를 향한 여론은 더욱 악화된다.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공안부의 한상우(김무열)는 섹트의 일원이자 빨간 망토 소녀의 언니인 이윤희(한효주)를 이용해 스캔들을 조작하려 한다. 임중경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이윤희와 좋은 관계를 맺어간다. 이윤희와 임중경의 관계가 짙어지는 가운데 공안부는 임중경·이윤희를 이용한 ‘특기대·섹트 스캔들’로 특기대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정우성)는 공안부의 뒤를 쫓는다. 섹트와 공안부, 임중경이 속한 특기대는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주제의식_조직에 충성하는 희생양

터널은 빛이 차단되고 출구는 한 곳으로만 쏠린다. 시야가 좁은 사람을 두고 '터널 시야'를 가졌다고도 한다. 테러리스트의 현상을 두고 이스라엘 심리학자 아리엘 메아리는 “테러리스트는 빛이 차단된 터널처럼 집단의 규칙과 가치관에 자신도 모르게 지배당해 유연한 사고를 갖지 못하고 조직의 명령대로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인랑>은 터널에 갇힌 늑대가 이를 벗어나 진짜 자신을 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세 조직이 힘의 축을 갖고 권력 다툼을 한다. 반정부 테러 단체인 섹트, 이 섹트를 말살하려는 특기대, 특기대를 해체시키고 권력을 쥐려하는 공안부가 그렇다. 세 조직에는 이념이 특별히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각각 자기가 원하는 힘을 가지려 발버둥 칠뿐이다. 

그 안에서 희생당하는 자들이 있다. 특기대의 임중경, 섹트의 이윤희, 공안부의 한상우다. 조직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조직에 충성하는 개가 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극을 이끄는 임중경은 아버지와 같은 장진태, 사랑과 대적 사이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 이윤희, 과거 동지였다가 처치해야 하는 적이 된 한상우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이 갈등 사이에서 붉은 빛을 내는 강화복을 벗어던지고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영화 결말에서 조직에 충성하는 개나 다름없었던 임중경은 조직의 불합리를 느끼게 되고 기존의 소속을 벗어던지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다. 영화는 이것이 진짜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 말하는 듯 하다.

다만 이 주제의식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임중경의 선택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임중경의 언행과 감정선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이를 막으려는 장진태의 행위도 지극히 감정적이다. 임중경의 심경 변화가 더욱 세밀하게 표현됐다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설득력 있게 와 닿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연출_세련된 스타일은 인정캐릭터 묘사는 '글쎄'

김지운 감독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색감이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등 내용은 전혀 판이하지만 이를 관통하는 다소 어두운 듯 무거운 느낌의 색감은 <인랑>에도 적용된다. 색채만으로도 영화는 폼 난다. 

액션도 세련됐다. 도심의 지하 수로에서 벌어지는 총기 액션은 이전 어느 작품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장면이다. 붉은 눈빛을 드러내는 강화복을 입은 특기대의 활약은 소위 '간지'가 난다. 2029년을 배경으로 정보전을 벌이는 공안부와 특기대의 모습도 멋이 담겨 있다. 

다만 캐릭터의 묘사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우성이 연기한 장진태나 특별출연한 공안부장 이기석(허준호), 섹트 요원 구미경(한예리)은 기능적으로만 활용됐다. 어딘가 비밀을 감춰두고 있는 인물들은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해 기본적인 이해조차 쉽지 않다. 

또한 악의 주축으로 나오는 한상우는 포지션에 비해 무능함이 드러난다. "함정에 빠졌다"는 부하 직원이 갑자기 말이 없자 "내 말 안들려"라고 외치는 장면, 무모하게 특기대와 마주하는 부분은 능력있고 멋진 악역이라 생각하기 힘들다. 배우가 갖고 있는 연기력과는 무관하게 악당의 매력이 약하다.

김 감독의 전작인 <밀정>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이야기를 전개했던데 반해 이번에는 허술하게 이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미 힘이 빠져 숨어 지내는 섹트가 암살 작전이 아닌 대규모 경찰 세력 앞에 자신의 얼굴을 내민다는 점이나 임중경을 유혹하는 이윤희의 환경이 지나치게 초라한 부분, 공안부의 작전에 갑자기 재를 뿌리는 구미경의 모습 등은 높은 개연성을 지니지 않는다. 또 남산타워에서 임중경과 이윤희가 낙하하는 부분에서도 옥의 티가 엿보인다. 

연기_변신에 성공한 한효주아쉬움이 남는 강동원과 김무열

<인랑>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효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순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한효주는 이번 작품에서 되바라진 여인의 이미지로 변신에 성공한다. 기존의 청순미는 그대로 선보이면서도 조직의 명령에 굴복하며 악에 받힌 인간의 내면을 적절히 표현해낸다. 한효주만이 제 갈 길을 간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강동원은 크게 부족함은 없어 보이나 그렇다고 더 발전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이미지적인 모습은 여전히 최고의 멋을 자랑한다. 다만 발음 부분은 이전 작품들보다 더 퇴보한 것 같다. 정우성의 연기에는 다소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아수라>의 연기보다 약간 톤 다운 된 느낌이나, 절제감은 부족하다.

김무열의 연기는 과잉됐다. 말투나 표정에 너무 힘이 들어가 어색함을 준다. 전반적으로 한 템포 떠 있다. 직속 상관으로 나온 허준호처럼 툴툴 털어내듯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이돌 출신 최민호도 감정이 오버돼 있다. 대사가 없는 장면은 꽤나 수려하나, 대사와 함께 영화의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영화는 '어려움'와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남긴다.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고, 몇 몇 장면은 크게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후반부 임중경이 자신의 처한 환경을 탈피하고 벗어나는 대목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지점, 다소 오글거리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만의 미덕인 무거움을 벗기고 실소를 하게 한다. 비록 몇 몇 대목에서 아쉬운 선택들이 보이나, 특기대의 액션이 주는 중압감, 한효주의 변신 등은 매력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한줄평:김지운의 도전인가오만인가

별점:★★★★(4/10)

사진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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