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카이 스크래퍼" 진부함·클리셰가 낳은 피로감
[리뷰] "스카이 스크래퍼" 진부함·클리셰가 낳은 피로감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7.1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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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라 불리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에서 옥의 티를 굳이 꼽자면, 옥상에서 떨어져도 날뛰어대는 좀비들이 극중 상화(마동석)의 맨주먹에는 맥을 못 추는 대목이다. 수 십 미터 상공의 중력을 무시하고, 미친 속도로 날뛰던 좀비들이 마동석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설명 해달라고 했을 때 연 감독은 "마동석의 주먹이 중력보다 강하기 때문"이라는 농담으로 대신했다. <부산행>은 이 장면 외에 대다수의 장면이 논리적으로 설득됐기 때문에 옥의 티는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개봉한 로슨 마샬 터버 감독의 신작 <스카이 스크래퍼>는 대다수의 장면이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점철돼 있다. 가족애를 바탕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부각시킨 이 영화는 한 쪽 다리를 잃은 전직 FBI 요원이 인간으로서는 이뤄내기 힘든 미션을 모두 헤쳐 나가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서사와 액션으로 일관한다. "영화니까 괜찮아"라며 폭 넓은 이해심을 가진 관객이라면 볼 만하겠지만, "영화적 상상력은 영화 안에서 논리가 견고하게 갖춰진 후에야 온전한 정당성을 갖는다"라는 취향의 관객에게는 2시간의 러닝 타임이 고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카이 스크래퍼>는 미국의 마동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온 몸이 근육 덩어리인 드웨인 존슨을 위한 영화다. 한 쪽 다리가 의족일지라도 500m에 육박하는 타워크레인도 맨손으로 올라가고, 멀리뛰기는 세계 신기록을 훌쩍 뛰어넘는다. 대기권의 강풍은 무시한 채 건물 외벽을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날라 다닌다. 이 모든 것들을 바다와 같은 넓은 심정으로 이해하는 관객만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줄거리_세계 최고층 빌딩에 있는 가족을 구하라

FBI 요원인 윌 소여(드웨인 존슨)는 10년 전 작전을 수행하다 자폭을 한 범죄자로 인해 왼쪽 다리를 잃는다. 의족의 힘을 빌려 생활하는 그는 방화 전문가가 돼 고층 빌딩의 방화 보안 전문가로서 아내와 쌍둥이 자녀를 키우며 살아간다. 

윌 소여는 240층에 달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 '펄'의 보안 팀장 자리를 소개받고 가족과 함께 그 빌딩에 제일 처음 입주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제2의 인생이 훌륭하게 진행되고 있던 때 윌 소여의 인생에 재난이 시작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테러범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목숨을 연명한다. 그러던 중 펄을 불태워버리겠다는 테러범들의 목적을 알게 된다. 윌 소여의 가족은 고층 빌딩의 화염에 갇혀 있다. 

가족이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윌 소여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불에 타고 있는 빌딩에 직접 들어간다. 윌 소여는 가족을 구하고 테러범들을 저지할 수 있을까. 

연출_뻔 한 전개와 수 없이 본 장면들의 나열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펄은 그나마도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다. 240층의 세계 최고층 빌딩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라 불릴 정도로 최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다. 100층 정도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고, 불길이 일어나면 자동 시스템으로 모든 환기구가 문을 닫고 스프링쿨러 불의 진원지를 잡는다. 요새나 다름 없는 이곳이 불에 타들어가는 모습은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이다. 

이 외에 대부분은 클리셰의 나열에 그친다. 초고층 빌딩 재난 영화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타워링>(1974)과 영웅 서사로 유명한 <다이하드> 시리즈의 컬레버레이션 수준에 머문다. 초고층 빌딩에서 벌어진 재난 영화에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같은 사람이 온갖 위험을 헤치고 가족을 구해낸다는 이야기다. 그 구해내는 과정에 있어서 <스카이 스크래퍼>만이 가진 독특한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클리셰의 사용빈도가 많다고 해서 나쁜 영화라 일컬을 수는 없다. 적재적소에 사용된 경우에는 영화의 재미나 서사의 이해를 훨씬 더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클리셰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기 보다는 영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전형적인 재난 영화의 영웅 이야기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영화를 보다보면 주인공이 어떤 위기에 닥치더라도 다칠 것이라 예상 하기 힘들다. 드웨인 존슨의 액션은 CG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몸부림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만이 갖고 있는 쾌감이 없다.

연기적인 면은 딱히 평가할 것이 없다. 드웨인 존슨과 윌 소여의 아내로 나온 니브 캠벨은 가족애를 바탕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 외에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악당으로 나오는 배우들 역시 특별한 위압감이 전달되지 않는다. 심심한 캐릭터들을 무난하게 그려냈다는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화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영화 내 개연성을 따지는 관객이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퀀스마다 "저게 가능해?"라는 의문을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보다 '쾅쾅' 거리는 액션을 즐기고 싶다면 봐도 무난한 영화라 생각한다. 

한줄평:드웨인 존슨을 차라리 신으로 묘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별점:★★★(3/10)

PHOTO U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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