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 추악한 이기심
"킬링 디어" 추악한 이기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7.0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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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디어>의 원제는 <The Killing of a Sacred Deer>다. 성스러운 사슴의 살해다. 에우리피데스가 쓴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심리호러영화다. 영화의 원제에 해당하는 ‘신성한 사슴의 살해’는 아가멤논 왕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키기로 하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딸 대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슴의 형상으로 변해버리는 희곡 속 장면에서 착안해 지은 제목이다. 아가멤논 왕처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킬링 디어>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방문한 한 소년으로 인해 충격적인 비극을 겪어야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인간 본성을 묘사하는데 극단적인 불편함을 선사한 영화 <송곳니>와 <더 랍스터>를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이다. 워낙 독특한 색감을 가진 감독의 작품이라 꽤나 두터운 마니아층이 존재한다. 

이번 영화 역시 인간 본성의 위선을 밑바닥까지 들춰낸다. 굉장히 불편하고 혼란스러우나 영화를 보고 나면 소름이 끼치는 듯 묘한 쾌감도 전달된다. 어떤 작품에서든 영화가 요구하는 이상의 연기를 표현하는 니콜 키드먼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배우 배리 케오간의 연기력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줄거리_3명의 가족 중 한 명을 선택해라

심장전문의 스티븐(콜린 파렐)은 일과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성공했음에도 안정적인 가정을 위해 노력한다.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평화로운 일상에 한 아이 나타난다. 마틴(배리 케오간)이라는 소년이다. 막내아들 밥(써니 술리치)과 친하게 지내더니 킴(래피 캐시디)과도 가까워진다. 

마틴은 병원에도 불쑥불쑥 찾아오고 스티븐을 집에도 초대한다. 그 초대에는 불온한 의도가 있다. 마틴의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맺고 아버지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스티븐은 심장 수술을 하다 마틴의 아버지의 의료사고를 낸 인물이다. 죄책감은 있으나 마틴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어 마틴을 피한다. 

계속해서 마틴을 피하던 스티븐은 어쩔 수 없이 마틴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때 마틴이 예언을 한다. 

"스티븐의 아내 애나 머피(니콜 키드먼), 큰 딸 킴, 막내 아들 밥은 사지가 마비될 것이고, 밥을 기피하는 거식증에 걸릴 것이며, 이내 눈에서 피를 흘릴 것이다. 눈에서 피가 나면 몇 시간 뒤 그 사람은 죽는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세 사람 모두 죽는다."

말이 안 된다고 여긴 스티븐은 마틴을 내쫓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이 다리가 마비되고, 거식증에 걸린다. 호화스러운 의료 혜택을 받음에도 밥의 하반신이 마비가 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얼마 뒤 킴 역시 사지가 마비되고 거식증에 걸린다. 

애나는 이러한 일이 발생한 이유를 찾고, 그 원인에는 스티븐의 의료사고가 있음을 파악한다. 죄를 묻는 애나 앞에서 스티븐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를 낼 뿐 아니라, 마틴을 협박하고 감금한다. 그럼에도 세 사람의 목숨은 스티븐으로부터 결정된다. 스티븐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주제의식_인간 이기심의 극단

스티븐이 처한 상황은 극단적이다. 마틴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인물에게 아내와 두 자식을 죽일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준다. 진정한 분노와 고통을 느끼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당신이 스티븐이라면 이런 상황에 누구를 택할 것인가와 당신이 아내 혹은 자식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상식적으로 스티븐의 입장에서라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스티븐은 침착하게 두 자식 중 누가 더 가치 있는 자식인 확인할 뿐 아니라, 아내와도 거리를 둔다. 세 사람 중 한 명을 고르기 위해 고심한다. 그 고심 사이에서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권력을 행할 준비를 한다. 이기적인 가장 그 자체다. 

재밌는 점은 아내와 자식들이다. 목숨을 두고 경쟁적인 위치에 놓인 모자지간은 자신이 더 스티븐을 사랑하는 존재임을 과시한다. 밥은 아버지가 원했던 이발을 스스로 하고, 킴 역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아버지라고 말한다. 애나는 스티븐에게 제물을 바치듯 자신의 몸을 바친다. 그리고 "애들은 또 낳으면 된다"며 자신을 살려줄 것을 요구한다. 

피를 나눈 가족 간의 희생은 없다. 자신의 살 길만 모색할 뿐이다. 영화는 목숨 앞에서 인간의 희생정신은 무의미하다고 일갈하는 듯 하다. 놀라울 정도의 차분함과 침착한 얼굴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오싹하게 다가온다. 

연기_절제의 미학

연기를 하는 모든 배우들은 침착하고 차분하다. 감정이 터지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절제한 상태의 포커페이스가 다수 얼굴에서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마틴 역의 배리 케오간이다. 어딘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 하면서도 인간의 선을 넘어서는 신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마틴 역을 맡아 장면 장면마다 압도한다. 어딘가 어눌하면서도 눈빛에는 강한 힘이 있다. 목숨을 가지고 저울질 하는 발언을 하면서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배리 케오간의 표정은 뇌리에 각인된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배역을 완벽히 표현한다. 이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니콜 키드먼은 존재만으로도 그 위엄이 상당하다. 모성애를 보이다가도 자식들이 자신의 권위를 침범하는 우를 범하면 매서운 눈초리를 보이는 날카로움을 가진 애나를 훌륭히 표현한다. 후반부 남편에게 몸을 바치는 장면이나 진실을 알기 위해서 자존심을 파는 장면 등에서의 니콜 키드먼의 위압감은 이름값을 한다. 엄청난 배우임을 또 한 번 증명하는 작품이다. 

스티븐 역의 콜린 파렐은 권위적인 가장에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가장을 오고 간다. 배리 케오간과 니콜 키드먼이 워낙 강렬함을 뽐내, 이들만큼 임팩트가 있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서 자식의 가치를 확인하는 등 이기적인 가장의 모습을 지극히 평범한 얼굴로 표현하는 대목은 놀랍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초반부의 시퀀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혼란스러울 수 있다. 굉장히 불친절하며 힌트도 많이 주지 않는 이 감독의 성향은 변태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요밀조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정확하게 묘사돼 있어, 영화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는 쾌감이 강렬하다. 답을 알고 문제를 풀어가는 기분이 상당히 재밌는 작품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불온적인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황해>, <곡성>처럼 어려운 문제를 던지는 나홍진 감독의 작품에 흥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아마 꽤 만족할 것이다. 반대로 영화를 영화로만 보고 생각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는 시간, 영화가 끝나고 나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역일테다. 

한줄평혼돈의 카오스그리고 쾌감

별점:★★★★★★★★(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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