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휴먼 호러 "나와 봄날의 약속", 독특한 지구 종말 미스터리
[리뷰] 휴먼 호러 "나와 봄날의 약속", 독특한 지구 종말 미스터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6.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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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장 지구 종말이 온다면?”, “갑자기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살면서 한 번쯤 해볼 법한 가정이 영화적 상상을 통해 재구현됐다. 지구 종말을 앞두고 생일을 맞은 사람들과 그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기 위해 나타난 외계인의 만남. 이 재기발랄한 설정은 굳이 공상과학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다.  <나와 봄날의 약속>은 이런 독특한 명제를 통해 예측 불가한 과정과 결말을 만들어낸다. 한없이 인간적이지만 동시에 두렵기 그지없는, ‘휴먼 호러’라는 이색 장르에 딱 어울리는 그런 이야기를 말이다.

줄거리내 생애 가장 쇼킹한 생일 파티

네 가지 독립적인 스토리를 가진 옴니버스 형식의 <나와 봄날의 약속>엔 삶의 절망과 고뇌에 빠진 네 명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타인의 진심 어린 축하 하나 없이, 외로운 생일을 보내는 이들 앞에 정체 모를 존재들이 등장해 특별한 선물을 건넨다. 너무 친근하고 살가워서 오히려 불편한 모습으로. 

10년째 새 작품을 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진 영화감독(강하늘). 생일 자축 겸 시나리오 구성을 위해 떠난 깊은 산 속에서 넉살 좋은 야쿠르트 판매원(이혜영)과 우연히 만난다. 감독은 자신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 여인에게, 생일 선물을 받는 조건으로 어디서도 털어놓지 못한 시나리오를 들려준다. 한편, 생일에 친구로부터 쓰레기통을 선물 받은 왕따 여중생 선화. 미스터리한 굉음과 함께 전교생 조퇴 명령이 떨어진 어느 날, 선화 앞에 자신을 ‘앞집 아저씨’라고 소개하는 남자가 다가온다. 남자와 함께 잊지 못 할 생일을 보낸 선화는 그로부터 의미심장한 선물을 받는다. 

무관심한 남편, 장난꾸러기 아들, 층간소음 항의전화를 멈추지 않는 아래층 주민까지. 일상이 고돼 생일도 무의미해진 주부(장영남). 그는 우연히 “언니를 존경한다”고 말하며 살갑게 접근하는 대학교 후배(이주영)의 집에 초대된다. 고작 담배 한 개비가 일상의 낙이었던 주부는 후배의 뜻밖의 선물에, 일생일대의 일탈을 경험한다. 반면, 낭만주의와 형이상학적인 영미 문학을 가르치지만 한 번도 연애나 사랑을 해보지 못한 대학교수(김학선)는 “질병 같은 사랑을 해보고 싶다”던 불치병 여대생(송예은)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하지만 그 만남은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주제의식비로소 끝자락에서야 찾아오는 삶의 애착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대개 삶에 대해 무기력하고 회의적이다. 무색무취에 진취적인 의욕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지구 종말을 앞두고 이들을 찾아온 외계인은 어쩌면 미확인 존재 그 자체보다는 저승사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 외계인과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인생의 ‘봄날’에 가까워진다. 파괴적이고 기괴한 이 ‘특별한’ 선물은 결국 삶 자체에 대한 애틋함을 발현시킨다. 어쩌면 삶의 공포란 막연한 지구 종말보다 내 안에서 나를 갉아먹는 내면의 두려움일 수 있다. 하지만 “다 같이 잘, 아름답게 망하자”는 영화 속 구절처럼, “리셋 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라는 백승빈 감독의 바람처럼 <나와 봄날의 약속>은 결국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삶의 근원적인 자세와 귀결된다. 

연출_ 본 적 없는 신선함, 재기발랄의 끝판왕!

<나와 봄날의 약속>은 짜임새 있는 탄탄한 스토리,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연출, 배우들의 열연으로 촘촘하게 구성된 요즘 상업 영화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무난한 상업영화들이 극장가에 즐비한 영화 시장에서 이 영화는 어쩌면 돌연변이에 가깝다. 혹자의 말처럼 괴작이자 명작으로 평가받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에 비견될 만한 작품이다. 관객의 이해를 돕는 친절한 영화도 아닐뿐더러 투박하다보니 호불호도 극명하게 나뉜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 낙관적인 지구 종말에 대한 시선 등 한국에서 쉽게 보지 못 했던 독특하고 신선한 시도들이 영화 안에서 자유롭게 얽히고설킨다. 제목의 의미만으로는 쉽게 속단할 수 없는 백승빈 감독의 불친절함에 묘하게 마음이 동하고 어느새 매력을 느낀다. 새로운 영화에 목마른 관객이라면 이 재기발랄함만으로도 93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연기베테랑과 라이징 배우의 시너지 

베테랑 배우 김성균과 장영남, 이혜영 잔뼈 굵은 연극배우 김학선 그리고 대표적인 30대 남자배우 강하늘늘. 여기에 <라이브> <독전>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며 충무로의 보석으로 떠오른 이주영, 주목할 만한 신예 김소희, 송예은 등이 출연한다. 4개의 독립된 에피소드에서 2명의 배우가 인간과 외계인으로 분해 연기 호흡을 보여준다. 일상적이면서도 다소 이질적인 스토리와 배역임에도 어색함 없이 배역을 해낸다. 내공 깊은 배우들과 미래가 주목되는 신예들의 만남 자체로 의미가 깊다.

한줄평 기묘한 매력에 끌린다면, 주저없이 선택하라 

평   점 (3/5) ★★★☆☆

Editor 박주연  Photo 마일스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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