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아직 끝나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살인적인 공포"
[리뷰]"아직 끝나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살인적인 공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6.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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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판씨네마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제7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원제:Jusqu'à la Garde)로 신인 감독상과 감독상을 차지했다. 전주 영화제에서는 이 영화가 매진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자비에 르그랑은 프랑스 최고의 문제적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사회적인 민감한 소재를 자신만의 관점과 독특한 화법으로 풀어내는데 뛰어난 재능이라 평가받았는데, 이 영화로 기존의 평가를 뛰어넘어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두려움과 공포라는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끌어내는 연출적 감각과 자칫 다큐멘터리로 흐를 수 있는 양육권 분쟁을 스릴러와 서스펜스 장르로 풀어내며,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진다. 특별한 액션이나 큰 스케일의 어떤 장치도 없이 관객을 한시도 쉬지 못하게 만든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5%에 걸맞게 새롭고 독특한 느낌으로 일상에 밀접한 이야기를 다룬다. 엄마 미리암 역의 레아 드루케와 앙투앙 역의 드니 메노셰, 200:1의 경쟁률을 뚫은 11살 아들 줄리앙 역의 토마 지오리나, 18세 딸 조세핀 역의 마틸드 오느뵈 등 모두 바늘처럼 세밀한 감정 연기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줄거리_"'그 사람'을 영영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화의 시작은 법정 사무실에서 출발한다. 남편 앙투앙과 미리암은 양육권을 두고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한다. 엄마 미리암은 "아이들이 아버지를 싫어한다. 조세핀이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을 보고 손목을 꺾어버렸다"고 하고, 아빠 앙투앙은 "말도 안 되는 거짓"이라고 답한다. 양육권을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친 부모와 변호인을 지켜본 판사는 일주일 뒤에 판결을 내리기로 한다. 그리고 아빠의 손을 들어준다.

과거로 갈 것 같았던 영화는 아빠의 손을 들어준 이후의 상황에 주목한다. 판사는 앙투앙의 폭력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들 줄리앙을 격주 토요일마다 만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줄리앙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억지로 앙투앙을 만난다. 그리고 불안에 떤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숨긴다. 영화 초반 앙투앙이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사실, 거짓말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줄리앙과 조세핀은 앙투앙을 두고 '그 사람'이라 칭한다.

"아버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앙투앙은 미리암의 실제 거주지가 어딘지, 미리암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더 집중한다. 줄리앙은 미끼이자 포로일 뿐이다. 영화는 미리암을 한 축, 줄리앙과 조세핀을 한 축, 앙투앙을 한 축으로 형성한 뒤 이들의 공포와 불안을 펼쳐낸다.

주제의식_원론적인 판결에 대한 날선 비판

영화는 마치 관객을 판사의 위치에 올려놓은 듯 인물들의 정황과 감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단순히 사건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클로즈업을 자주 활용하면서 인물의 두려움과 공포를 드러낸다. 판결문에는 찾기 힘든 내용이 영화 속에서 표현된다.

감독이 이러한 기법을 사용한 이유는 프랑스의 현실을 명확히 알리기 위해서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쉽게 발생하고 있으며, 언론이 이 부분에 주목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금기의 형태로 다뤄진다. 희생자들은 앞으로 나서기 두려워 한다는 게 감독의 말이다. 영화 초반 업무량이 너무 많은 판사의 얼굴로 판사가 사건 하나 하나를 살펴볼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실제 프랑스 법정에서는 판결을 내는데 약 20분 정도의 시간만 할애한다고 한다.

영화는 이 대목을 지적한다. 매우 짧은 시간에 결정된 판결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프랑스의 사법제도가 자녀의 미래를 망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잘못된 판결로 인해 아이들은 불안에 숨 죽여야 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며, 생일 파티에서도 아찔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억지로 거짓말을 해야 한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쳐야만 한다.

폭력을 당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테두리를 벗어나는 법망의 느슨함과 비현실성을 꼬집는다. 많은 증인을 통해 앙투앙의 폭력을 증명할 정황이 충분함에도 원론적인 법률적 판단만을 한 공무원을 향한 날선 시선이 담겨 있다.

연출_스릴러·공포·서스펜스의 적절한 혼합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혼한 가정의 이야기다. 이를 표현하는 접근법은 새롭다. 감각은 섬세하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재능이 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지 알 수 있다.

영화는 꽤나 친절하게 사람들의 심리와 상황을 전달한다. 인물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가까이 댐으로써 불안, 공포,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알려준다. 이를 온전히 눈빛과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풀어낸다. 대사로 이들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대사로 설명하는 대신 분위기로 알려준다. 여기서 관객이 느낄 공포심은 엄청 강하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보이는 앙투앙으로부터 기필코 도망치고자 하는 미리암과 줄리앙, 조세핀의 모습은 귀신이 없는 공포 영화의 기분을 자아낸다. 모든 것이 마무리 된 마지막에서도 왠지 아직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게 더 소름끼친다. 무서움을 강조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휴대전화 벨소리, 자동차 경고음, 알람 소리 등 실제 소리로 공포와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인물과 가까웠던 카메라는 후반부 멀찍이 떨어지면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도한다. 그리고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보도록 한다. 감독의 영리함은 장면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연기_표정만으로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연기의 경지

감독의 재능이 풍부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다. 먼저 미리암은 각본을 쓸 때부터 레아 드루케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레아 드루케는 겉으로 억지스럽게 당당해 보이는 미리암의 내면에 차오르는 불안을 표정과 작은 떨림에 모두 담아냈다. 힘을 꽉 준 눈으로 공포에 맞서는 법에 꽤나 익숙해 보이고 초월까지 한 듯하지만 자유롭지는 않은 그 면면을 표정만으로 표현해낸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앙투앙 역의 드니 메노셰는 뻔뻔한 얼굴을 가감 없이 들이민다. 연민을 이끌어내는 듯 하지만 결국에는 분노로서 주위를 억누르려 하는 폭력성을 공포스럽게 표현한다.

줄리앙 역의 지오리나와 오느뵈는 베테랑 배우들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지오리나는 공포, 불안, 분노, 슬픔, 절망, 공허함, 괴로움 등의 여러 감정을 표출하지 않은 채 표정만으로 표현한다. 어린 친구에게서 보기 힘든 기대 이상의 지점이 장면마다 녹아있다. 자신의 생일 파티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공포감을 느낀 조세핀 역의 오느뵈의 표정도 압권이다.

최고의 재능들이 모여 만든 합작품이다. 강렬한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신선하다. 끝은 여운이 깊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한국영화에도 이런 영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어떤 누구든 시간을 내서라도 어떤 루트로든, 특히 영화관에서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다.

한줄평:엄청난 재능들의 하모니

별점:★★★★★★★★★(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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