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해숙 “연기인생 44년 째, 새 작품 아직도 설레요”
[인터뷰] 김해숙 “연기인생 44년 째, 새 작품 아직도 설레요”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6.14 1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단한 연기내공을 기반으로 한 흔들림 없는 카리스마쉽게 휘어지거나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묵직한 내공배우 김해숙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이미지다하지만 실제 만나 본 김해숙은 훨씬 더 푸근했고 한편으로 소녀 같았다특히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 누구보다 눈을 반짝였다아직까지도 연기가 좋고 새로운 작품에 몰입하는 게 설렌다는 그의 말처럼영화 <허스토리>에서 그야말로 미친 연기로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놓은 김해숙그가 애정을 가득 담아 털어놓은 <허스토리>의 히스토리와 배우로서의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ditor 박주연  Photographer 박용진

◇ 김해숙 “<허스토리속 내 모습을 확인하기가 두려웠죠”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영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간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힘겨운 공방을 벌인 10여 명의 원고단과 이들의 승소에 모든 걸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해숙은 극중 긴 세월에 걸쳐 비밀을 품어 온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았다.

연기를 끝마치고 난 뒤 여운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할 정도로 <허스토리>는 김해숙에게 진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기도 했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으로 완성본을 본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게 두렵고 무서워서 몇 번이나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배정길 역을 연기하다 보니 자꾸만 울고 싶어지는데 그건 김해숙이 느낀 슬픈 감정이잖아요. 아마 배정길이라면 울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표정은 무덤덤해도 모든 것을 그 안에 삭혔을 인물이잖아요. 연기하면서 빠져나오기 힘들 거라는 걸 애초에 알았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서 쉬고 싶었는데, 이대로 쉬면 더 안 좋아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과 다음 작품도 상의했고요. 문진에도 다녀왔는데 의사가 ‘여행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떠났어요. 갔다 와서는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모든 걸 털어낼 수 있었어요. 다행이도 지금은 원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사진제공= NEW

촬영을 하면서 지칠 걸 알면서도 김해숙은 이 작품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는 이 버겁고 힘든 작품을 왜 선뜻 선택하게 된 걸까. 김해숙은 “그동안 위안부와 관련된 이야기가 참 많지 않았나요. 하지만 현재의 삶에 대해 그린 작품은 많이 없었다고 봐요. 과거 신이 영화에 하나도 안 나오고, 오로지 그 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개개인의 삶을 보며주고 관부재판 법정신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어요” 라고 말했다. 김해숙은 법정에 서서 그분들의 삶이 어땠을까, 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실존 사건과 실존 인물을 다루는 탓에 연기적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김해숙은 시나리오를 읽을수록 ‘과연 내가 이분들이 겪은 감정을 0.01%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고 말했다.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과연 대신해도 되는지, 아직 살아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게 되진 않을는지 하는 고민들이었다. 김해숙은 혹시라도 캐릭터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갈 것을 염려해 실존 인물도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우 김해숙의 생각을 넣으면 안 되잖아요. 제 식대로 해석하게 될까봐 실존 인물을 만나진 않았어요. 다만 민규동 감독님이 충분한 사전 자료조사를 했기 때문에, 또 섬세하고 자세하게 풀었기 때문에 거기에 따랐어요. 감독님이 오랜 시간 준비해온 시나리오라, 굉장히 정확했어요” 

<허스토리>를 통해 실로 오랜만에 프로모션 인터뷰에 참여한 김해숙은 이 영화가 관객뿐만 아니라,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떠안은 할머니들에게 힘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서고 이런 걸 안 좋아해요.(웃음) 하지만 모든 스태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임한 현장이라 너무 행복했고요.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고 또 한 사람으로서는 이번 영화의 좋은 의미와 뜻이 알려져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직 살아계신 할머니들도, 영화를 못 보고 돌아가신 할머니들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이나마 힘을 드리고 싶어요. 이런 메시지들을 다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 김해숙이 말하는 엄마론

연기 경력 44년째. 김해숙은 쉬이 지치지 않고 영화, 드라마에서 꾸준히 다양한 모습으로 분해왔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작품 욕심이 많은 배우”라고 지칭했다. 너무 자주 나오기 때문에 행여 ‘지겹다’는 평가가 나올 수는 있지만 연기를 향한 김해숙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는 것이다. 

“사실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계속 연기하고 싶은데 저도 사람인지라, 한 사람이 그 수많은 작품을 하는데 어떻게 안 비슷할 수가 있겠어요. 연기 철칙이라는 게 있다면 조금이라도 안 비슷해지고 싶다는 생각이죠. 영화 <해바라기>, <무방비도시>, <박쥐> 등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모정은 하나지만 엄마의 모습은 여럿’이라는 거예요. 작품마다 조금씩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한 때는 삭발이라도 해볼까, 농담처럼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웃음)”

<허스토리>에서도 김해숙은 가슴 깊숙이 짠해지는 들끓는 모정을 연기했다. 김해숙표 엄마 연기는 유독 마음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 이에 김해숙은 남다른 ‘엄마론(論)’을 펼쳤다. 그는 “엄마라고 하면 지고지순한 이미지의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상징적이고요. 하지만 엄마는 상징이 아니에요. 직업도, 표현 방법도 여럿이죠.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릇된 사랑일 수도 있잖아요. 거기서 엄마도 하나의 장르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내 나름대로 쉽게 정리를 해본 거예요” 

그러면서 김해숙은 2008년 개봉했던 영화 <경축! 우리 사랑>을 언급했다. 김해숙은 극중 딸 정윤(김혜나)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살림을 차리는 봉순 역을 맡았다. 김해숙은 “엄마이지만, 내 이름을 불러주는 한 사람을 찾는 인물이었죠. 사실 그 연기를 하기 전에 주변에서 많이 말렸거든요. 배우들 보면 악역을 머뭇거리는 분들도 많은데 겁 없이 했던 걸 보면 좀 용감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기를 사랑하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싶은 배우로서, 나에 대한 책임감이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일할 수 있고 새 작품을 보면 아직 설레고 그런 열정이 여전하다는 게 전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느끼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 김해숙 연기의 신아직도 부담스러워요

‘믿고 보는 배우’ ‘연기의 신’… 이견 없는 연기력으로 배우로서는 최고의 수식어를 받아온 김해숙이지만 정작 김해숙은 이런 평가가 너무나 부담스럽다고 손사래를 쳤다. 쿨할 것 같은데, 의의로 소심한 모습이었다. 김해숙은 “작품 수가 늘어나다보니 점점 무서워지긴 해요. 작품을 하는 데에 두려움이 있죠. 설레는 건 지극히 배우로서의 제 느낌이고 하다 보면 기대치들이 무겁게 다가올 때가 있거든요. 절 믿어주시는 분들에게 실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해요”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해숙이 지치지 않고 이토록 다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그는 연기에 대한 변치 않는 열정 이외에 타고난 체력을 꼽았다. “부모님에게 참 감사하죠. 건강한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 것 같아요. (웃음) ‘원래 이런 거 아니야?’ 할 정도로 늘 건강하게 살았어요. 물론 이건 부차적인 거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그걸 버티게 해준 거라고 봐요. 사실 저는 저 자신을 많이 돌보지 않는 편이거든요. 운동도 먹는 운동, 숨 쉬는 운동뿐인데 그냥 배우일 땐 딱 배우의 모습이고 평소 때는 저 자체로 돌아오는 게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행복은 나 자신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되도록 모든 것들을 즐겁고 감사하게 생각하려고 해요”

인생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취재진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숱한 고민들에 빠진 2030 젊은 세대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김해숙은 “인생을 살았다고 다 아는 건 아니에요” 라고 말하면서도 진중하게 조언을 이어나갔다. “먼저 본인이 본인을 이기지 않으면 안 돼요. 모든 건 내 자신과의 싸움이거든요. 세상도 세대도 달라지는데, 어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인생은 긴 마라톤’이라는 말이에요. 후배나 딸에게도 5년 뒤의 내 모습을 생각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해요” 

그렇다면 김해숙의 5년 뒤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김해숙은 여전히 소녀 같은 해사한 웃음으로 “현장에 있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다. 그는 “주연이나 조연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고 또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5년 뒤에도 현장에 있길 바라고 또 너무 많이 나와서 지겹다고들 말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라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