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위안부 다룬 "허스토리", 비극 속 꽃피운 희망
[리뷰] 위안부 다룬 "허스토리", 비극 속 꽃피운 희망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6.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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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부터 김해숙까지여배우들이 앞 다퉈 고통을 호소했다연기하는 내내 우울증세를 보이는가하면실존 인물들의 아픔을 짐작할 수 없어 더 힘들었단다지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간 23회에 걸친 관부 재판을 다룬 영화 <허스토리>는 이렇듯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 줄거리묵직한 실화의 힘

1991년 할머니 한 분이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진실을 밝히자 세간은 금세 떠들썩해진다. 여행사 대표 문정숙(김희애)은 “혼자 잘 먹고 잘 산 게 부끄러워”서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대표해 일본을 상대로 기나긴 소송 싸움을 건다. 남몰래 비밀을 품고 사는 배정길(김해숙), 거칠고 억세게 살아온 욕쟁이 박순녀(예수정), 정신대 피해자로 갖은 고생을 했던 서귀순(문숙),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마음의 병을 얻은 이옥주(이용녀) 할머니와 함께 이상일(김준한) 등 일본 측 무료 변호인단의 도움으로 역사적인 재판에 나선다.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간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힘겨운 공방을 벌인 10여 명의 원고단과 이들의 승소에 모든 걸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의미한 결과를 낳은 재판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히스토리와 재판 과정을 담담히 다룬다. 

◇ 주제의식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위안부 영화로 보지 말고 여성-법정물로도 봐 달라는 민규동 감독의 말처럼, <허스토리>는 이 이야기를 국가적인 비극, 민족의 상처로 단순히 규정짓지 않는다. 법정에 오른 할머니들 개개인의 사연에 집중하며 한 여성이 겪었던 생생한 이야기를 밝혀낸다. 할머니들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스스로 드러내며 “내가 바로 증인이자 증거”라고 울부짖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수치스러워하거나 죄인처럼 움츠러들던 할머니들도 재판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며, 후세에 이 같은 일이 또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들을 ‘국가대표’라 칭한다. 그리고 이내 응어리를 토해낸다. 과거의 일은 나의 부주의가 아니며 그 인고의 시간을 버텨온 것은 그저 살기 위함이었다고. 

◇ 연출담백하게 담담하게민규동 감독의 위로법

상업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은 <허스토리>에 거의 없다. 민규동 감독은 억지 감동, 눈물을 유발하는 연출을 최대한 배제했다. 여러 번 반복돼 다소 지루하다 느낄 수도 있는 재판 과정을 느리고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라는 큰 카테고리로 묶여 국가적 아픔으로 환원됐던 이 사건을, 개개인의 서사로 풀어내며 관객들과의 깊은 유대감을 선사했다. 반면 가해자이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서는 일본의 파렴치한 태도를 가차 없이 꾸짖는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 마음속에 들끓는 분노는 할머니들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비극적인 고백과 맞닿아 강렬한 울림을 선사한다. 

◇ 연기연기 베테랑들이 증명한 관록 

<허스토리>엔 주·조연 배우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다. 할머니 개개인의 상처를 조명한 만큼, 모든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이끄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 역을 맡은 김희애는 씩씩하면서도 정 많은 여장부로 극을 이끌어나간다. 비밀을 품고 일본 사법부에 맞서는 배정길 역을 맡은 김해숙을 비롯해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시종일관 <허스토리>를 반짝반짝 빛낸다. 중간 중간 웃음을 안겼던 김선영의 맛깔나는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연기 경력이 증명하듯 적잖은 내공을 쌓아온 배우들은 완숙한 연기 강약조절을 해내며 완전히 그 역할로 분했다. 한 데 어우러지는 연기의 향연만으로도 <허스토리>의 가치는 충분히 증명된다.

한줄평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절대 잊어선 안 될 이야기

평점 (4/5) ★★★★☆

Editor 박주연  Photo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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