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시들지 않는 여배우의 품격 임수정
결코 시들지 않는 여배우의 품격 임수정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7.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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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배우 임수정의 말 속엔 어떠한 힘이 느껴진다. 입가 미소엔 온화함이 넘쳤지만 천천히 꼭꼭 내뱉는 말투와 작은 몸에서 내뿜는 기운에는 심지가 곧은 배우로서의 신념과 소신이 있다. 한 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임수정은 요즘, 스스로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잔잔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Photo 명필름

진정한 포기를 알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거야.” <당신의 부탁>에서 효진(임수정)이 내뱉은 대사다. 그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그의 의붓아들 종욱(윤찬영)을 떠맡게 된다. 당장은 암담하지만 아직 기회가 많은 자신의 미래나 다가올 새 인연을 포기하는 대신 종욱을 받아들이고 잃었던 가족을 되찾는다. 어떤 선택에든 포기가 수반된다는 말이다.

임수정의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비건(Vegan) 채식을 선언하며 육식 섭취를 전면 포기했다. 누구의 시선에서는 불편하다고 할 법한 선택을 함으로써, 건강을 얻었다. 매년 1000만 관객 영화가 줄줄이 탄생하는 가운데서도 임수정은 기꺼이 저예산 영화에 출연했다. 한때 큰 영화에 속속 이름을 올렸던 행보를 떠올려보면 의아한 선택이지만, 그는 요즘 더 값진 것들을 얻었다고 한다. 임수정이 포기하고 얻은 것들, 과연 뭐가 있을까.

임수정이 갑자기 ‘엄마’가 돼 버린 이유  

임수정은 영화 <당신의 부탁> 러닝타임 내내 화장기 없는 얼굴과 질끈 묶은  머리, 헐렁해서 볼품없고 더 가녀려 보이는 옷 몇 벌로 등장한다. 드라마틱한 몸짓이나 기분 좋은 웃음도 없다. 삶의 시름과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얼굴로 극을 유영한다. 청순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임수정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손사래를 쳤다.

“맨 얼굴에 부담감이 있었으면 이 영화 못 찍었죠.(웃음) 오히려 엄마로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우선이었어요. 아직 임수정하면 엄마를 연상하는 게 낯설잖아요. 하지만 이동은 감독님은 그렇기 때문에 효진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이 잘 표현될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저 또한 아직 결혼이나 출산 경험이 없다보니 낯설었고 효진의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엄마 역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임수정이 가진 독보적인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인들이 그의 선택을 만류할 수도 있었을 터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있으니 엄마 역이 들어오더라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친한 친구들 중에서는 결혼하고 아이들도 꽤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어색하지도 않았어요. 효진 역을 한다고 해서 향후 몇 년 동안 ‘이제 싱글 역할을 못 하겠구나’ 하는 걱정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당신의 부탁>에서 임수정의 외향적인 변화만큼이나 눈길을 끈 건 연기 톤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빼고 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내밀한 감정 변화를 선보여야하는 만큼 어려운 면도 분명 있었다.

“힘을 빼고 연기를 했는데 오히려 그 전의 연기 접근 방법보다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깊이, 더 섬세하게 표현될 때도 있고 유연해지는 느낌도 들었어요. 다음 작품에서 좀 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18년차 배우 임수정, 변화를 즐기다 

2001년 KBS2 드라마 <학교4>로 데뷔한 이래 벌써 18년차 배우가 됐다. 독보적인 동안 이미지가 한 몫 했고 어렸을 때부터 활동해온 터라, 아직도 그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중견배우’ 타이틀이 낯설다. 하지만 임수정은 이제 현장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선배가 됐다. <당신의 부탁>에서 호흡을 맞췄던 아역배우 윤찬영이 임수정을 어떤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은 채 쭈뼛거렸다는 귀여운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차였다. 임수정은 이에 크게 공감했다.

“어딜 가도 절 선배라고 불러요.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시간아 왜 이렇게 빠른 거야~’ 하고 있어요. 진짜 깜짝 깜짝 놀라요. 난 아직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선배라고 하니까. 하지만 그만큼 경력이 쌓인 거니까 현장에서도 좋은 작업을 위해 분위기를 잘 리드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다들 의지를 하는 게 보이니까요. 또 ‘임수정?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것들도 눈에 보이고요. 부담도 있지만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가도 <당신의 부탁> 때처럼 오미연, 김선영 등 선배들과 연기하면 너무 행복하고 편하더라고요. 이 부담감을 같이 나눌 수 있잖아요.(웃음)”

18년차가 되니 촬영 현장에서의 위치만 변한 게 아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화려한 상업 영화에 주로 이름을 올렸던 임수정이 최근 저예산 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2016년 <더 테이블>에 이어 <당신의 부탁>까지, 변화로 꿈틀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크고 작은 장·단편 영화제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다양한 저예산 영화들을 접했어요. 정말 완성도 높은 훌륭한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감독, 배우뿐만 아니라 소재의 다양성을 접하면서

‘이런 게 한국영화의 힘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독특하고 신선하고 난리예요.(웃음)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업 영화에 주력하던 감독, 제작사, 배우들이 독립영화와 협업을 한다면 영화 전체 시장에서 봤을 때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부터 좋은 기회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예산 영화에 대한 임수정의 애정과 갈망은 생각보다 컸다. 그는 더 다양한 작품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싶고, 또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도록 좀 더 원활한 환경이 주어지기를 소망했다.

“요즘 남성중심의 영화들이 확률적으로 많다 보니까 여성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제한적이잖아요.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있으니까, 저는 이런 작품을 함으로써 상업 영화에서는 해볼 수 없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맡을 수 있고 연기하는 재미가 생기겠죠. 독립영화 쪽에서는 나를 통해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 좋은 상호작용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동안 배우? 청순 이미지? 임수정이 떠안은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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