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세상 앞에서 사랑을 외치다, 배우 "김고은"
거친 세상 앞에서 사랑을 외치다, 배우 "김고은"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8.0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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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b9%80%ea%b3%a0%ec%9d%802 <사진출처=CGV아트하우스>

그래서 그녀는 그곳에서 엄마가 되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엄마나 줄 법한 사랑을 받았을까. 한준희 감독의 영화 '차이나타운'을 보고나면 일영(김고은 분)의 남은 삶을 상상하게 된다. 한국에선 드물게, 그것도 느와르 장르에서 김혜수와 함께 극강의 '여여케미'를 보여줬던 김고은. 그녀는 장르와 무관하게 독특한 작품들에 출연하며 연기력의 폭을 넓혔다.

'차이나타운'에서 일영(김고은 분)은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버려진 아이로 나온다. 그 차갑고 비좁은 공간에서 어린 핏덩이를 끄집어낸 것은 엄마(김혜수 분)의 하수인인 어떤 남자다. 여기에서 엄마는 '차이나타운'이라는 검은 세계를 지배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자신을 발견해서 데려온 남자도 무수한 깡패들 가운데 한 명이다. 결과적으로 일영은 온기 없는 곳에서 또 다시 냉혹한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어린 그녀는 그 세계에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혹독하게 단련된다. 가치가 없으면 버려지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다. 돈을 빌려주고 곱절로 받아내는 일을 하는 엄마가 지목하면 상대가 누구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극 초반에 노름판에서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한다는 명목 하에 빚을 지고 있던 남자와 대면하는 장면은 일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요약해서 보여준다.

돈을 갚으라는 일영의 머리를 재떨이로 내갈기는 남자. 그런 남자의 귀에 핸드폰을 대고 아내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영. 한 번만 봐달라는 남자한테 일영은 원금 회수는 물론, 재떨이로 그의 머리를 내려찍으며 이자까지 톡톡히 받는다. 이것이 '차이나타운의 방식'이고, 일영은 그 시스템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엄마도, 일영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갈 줄 알았다. 일영이 석현(박보검 분)을 만나기 전까진.

movie_image7vif66in <사진출처=CGV아트하우스>

일영이 흔들린 것은 석현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감정만 없었다면 그녀 역시 차이나타운의 무수한 부속품들처럼 거부감 없이 살았을 것이다. 일영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을 보며 놀랐고, 그것이 싫었다. 차이나타운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품는다는 것은 나약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니까. 그런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석현이 알려줬다. 처음 치마를 입고 영화도 보며 남들처럼 데이트를 하지만 엄마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김고은의 연기 전환점이 되었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로 데뷔했을 때, 그녀는 단숨에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배우가 되었다. 김고은은 눈에 확 띌 정도로 예쁜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은교'에서 선한 눈망울이 빛나는 깨끗한 마스크로 관능미를 연기했을 때에는 미묘했다. 논란의 시발점은 노교수와 열일곱 소녀의 사랑이라는 남성들의 판타지였다. 외설적인 것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마치 박범신의 동명 원작 소설 속 문체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한 김고은의 연기력에 있었다. 거기에는 분명 '롤리타 콤플렉스'와는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차이나타운'에서 석현을 사랑한 일영처럼, 은교 역시 생에 더 이상 기댈 것 없는, 부질없는 노인을 사랑했던 것이 전부다.

아직 20대인 그녀를 보면 과거의 전도연을 보는 기분이다. 그 당시 전도연도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했다. 지난 '제68회 칸영화제'에서 전도연은 오승욱 감독의 영화 '무뢰한'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김고은은 '차이나타운'이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되어 만난 바 있다. 그때 김고은은 '무뢰한'을 보고 "전도연 선배처럼 연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고은은 해맑고 청순한 이미지를 유지하며 또래 여배우들에 비해 안정적이지만 파격적인 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해, 김고은은 '죽여주는' 여배우 윤여정과 같이 창감독의 영화 '계춘할망' 에 출연해 '무공해 감동'을 안겨줬다. 3월에 종영한 tvN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선 착실하고 소심한 홍실 역을 맡아 심장 쫄깃한 로맨스를 보여줬다.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돌아가서, 일영이 잔상에 남는 것은 김고은의 존재감 때문이다. 관객은 일영을 통해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엄마가 은연중에 베풀었던 숨겨진 모성의 실체가 드러나며 일영의 마음에 실금을 낸다. 시종일관 일영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졌지만 석현을 만나 여자가 되었을 때, 엄마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김고은도 깊이 있는 배우가 되었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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