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결핍된 어른들의 단상
[리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결핍된 어른들의 단상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4.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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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복판에서 호랑이를 마주치는 상상보다, 남루한 모습으로 우연히 옛 연인과 마주치는 현실이 더 끔찍하고 두려울 때가 있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처지, 달갑지 않은 타인을 대하는 어른들의 눈물겨운 속사정을 담았다.

#줄거리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  

  

호랑이 탈출 뉴스가 들려오던 어느 겨울 날, 여자친구 집에 얹혀살던 경유(이진욱)는 그녀에게 황당한 방식으로 이별을 통보받는다. 나이는 찼는데 집도, 변변한 직업도 없는 경유가 손에 쥔 건 여자친구의 집에서 갖고 나온 캐리어 하나 뿐. 손님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며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던 중, 경유는 자신이 그토록 꿈꿨던 소설가가 된 옛 연인 유정(고현정)과 우연히 마주친다. 거짓말 같은 재회의 순간, 유정은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오랜만이야, 잘지냈어?” 하고. 

경유는 이 기막힌 우연이 놀랍긴 해도 반갑진 않다. 대리운전 기사와 손님인 관계가, 유정의 앞에서 차마 숨겨지지 않는 자신의 처지가 못내 부끄럽다. 반면 유정은 시종일관 적극적이다. 늦은 밤 경유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내는가하면 자신의 집 비밀번호까지 공유한다. 안락한 쉼터가 절실한데다가, 팍팍한 삶에 지친 경유는 유정의 손을 잡아보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주제의식 호랑이보다 더 두려운 것은  

경유 앞에 갑자기 나타난 유정은 위안의 대상이었을까, 고통의 재현이었을까. 현실에 굴복해 소설가 꿈을 접고 절필한 경유에게, 유정은 ‘나’의 찬란한 순간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존재이자, 지금의 초라한 ‘나’를 비춰주는 자아의 거울이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쁜 경유에겐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노릴지도 모르는 야생의 호랑이보다 두려운, 또 결코 달갑지 않은 겨울손님이다. 

이렇듯 삶이 급급하다보니 두 사람의 로맨스는 극 속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사귀었던 사이로 언급은 되지만, 어떤 연애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영화는 달달한 로맨스보다 현실에 찌들어 웃음을 잃은 경유와 글이 풀리지 않아 술에 빠져 사는 유정의 권태로운 ‘현재’를 조명한다. 이들은 가슴 뻥 뚫린 상실을 안은 채 부재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불안한 어른이다. 삶에 도사리는 두려움을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모른다. 다만 허둥대고 발버둥치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뿐.  

그때 감독은 경유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넌지시 메시지를 던진다. “두려움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건가요?” 라고. 이제 질문의 대상은 경유가 아닌 관객이 된다.

#연출 담담하게 그래서 심심하게  

상당수 장면이 롱테이크 기법으로 사용됐고, 여백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인물의 감정 표현을 극대화시켰다. 주고받는 대사들보다, 인물이 느끼는 찰나의 감정 포착이 더 중요해 보이는 이 영화에 딱 어울리는 방식이다. 단, 너무 단조롭고 건조해서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터다. 극적인 BGM을 최소화해 리얼리티를 살렸지만 정적인 느낌에 한몫했다. 그래서일까, <꿈보다 해몽>(2014) <로맨스 조>(2011>를 통해 재담꾼으로서 인정받은 이광국 감독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우리네 삶에 도사리는 두려움의 상징으로 호랑이를 사용했지만 조금 더 매력적이고 고차원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연기 이진욱-고현정이라는 보물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처럼 여백이 많은 영화에서는 무엇보다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둘 수 있는 배우의 내공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진욱과 고현정의 연기는 합격점이다. 매사 말을 아끼는 경유 역을 맡은 이진욱은 토해내는 대사보다는 절제된 눈빛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러닝타임 내내 고요하게 일렁이는 눈빛이 경유에게 타당성을 불어넣었다. 고현정은 다소 엉뚱하고 미스터리해 보이기까지 한 유정에게 사랑스러움을 불어넣었다.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줄평 경유(이진욱)의 운수 나쁜 날 

별점★★☆☆☆(2/5)

Editor 박주연   Photo 그린나래미디어/무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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