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와 ‘순수’ 사이 두 가지 극단적 페르조나, 고준의 실체
‘퇴폐’와 ‘순수’ 사이 두 가지 극단적 페르조나, 고준의 실체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4.3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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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 <미스티>에서 김남주의 옛 애인으로 등장. 40대의 중후함과 20대의 도발적인 섹시미로 여심을 흔든 남자 고준은 벌써 21년차 중견배우다. 퇴폐와 순수 사이, 극단의 매력을 지닌 고준의 실체를 파헤친다.

Photographer 이명수·글 앤 그림

웃옷을 벗은 채 김남주를 밀어붙이고 키스를 감행하는 남자. JTBC 드라마 <미스티> 속 고준은 강렬했다. 대중은 뒤틀린 욕망을 가진 케빈 리를 연기하는 그의 섹시함에 열광했다. 마초와는 다른, 그렇다고 온전한 섹시함은 아닌 ‘퇴폐미’가 그를 향하는 키워드다. 악역을 맡더라도 햇빛 아래 보다는 스산한 그늘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어둠을 근원지로 한 그의 매력은, 도덕의 관념이 상실된 상태의 아름다움으로 정의된다. 그 퇴폐적인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실제로 만난 고준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인류애적인 성품을 갖고 있었다. “겸손하게 써주세요”라며 자신을 낮출 줄 아는 남자. 퇴폐미와 순수함이 버무려진 고준의 미소 속에 담긴 진심을 살펴봤다.

퇴폐의 시작 ㅣ  꿈 없던 나는 사고뭉치였다

전형적인 미남형은 아니다. 사나움이 서려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 그러고 보니 격투기 선수 추성훈을 닮았다. 근육미의 김종국이나 스포츠 스타 김동현, 릭윤를 닮았다고도 한다. 녹록하지 않았을 것 같은 지난 삶의 흔적이 고준의 인상에 묻어있다. 실제로도 녹록치 않았다고.

딱히 꿈이 없던 고준은 고3말에 우연히 한 대학교의 졸업작품인 연극 <개미와 베짱이>를 보게 된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독백을 하는 장면에 관객들이 울고 웃는 모습에 홀딱 빠져버린다. 꿈이 없던 그에게 꿈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부랴부랴 입시준비를 하고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웠다. 비디오방에 가서 주인에게 연기 잘하는 배우 두 명을 추천 받고 관련 영화를 몽땅 봤다. 비디오방 주인이 추천한 두 배우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짐 캐리다. 갑작스런 입시준비였지만 서울예술전문대학교에 합격한다. 꿈만 같은 일이 벌어진 것. 하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진 못했다.

“영화과에 입학을 했는데, 여기서부터 힘든 여정이었어요. 전공자들은 영화 공부를 한 상태에서 들어왔는데, 저는 불과 몇 개월 동안 관심이 생겨 들어온 거잖아요. 용어도 못 알아들으니까 자격지심이 깊게 생겼어요. 연기 잘하는 방법을 찾다가 연극무대를 알게 됐죠.”

그가 찾은 연극판에도 이미 기득권이 있었다. 서열을 중시하는 억압하는 문화에 금방 지치고 만다. 연극판에도 연착륙을 하지 못했다.

“자격지심을 혼자서 많이 만들었던 것 같아요. 지고 싶지는 않고 객기도 있었고요. 지금 저는 되게 잘 큰 거예요. 20대에는 정말 말썽꾸러기 사고뭉치였죠. 남자들 다 그런 거 좀 있잖아요.”

그는 연극계를 떠나 독립영화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연기와 연출에 손을 댄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었고 경제적으로는 점점 더 궁핍해졌다.

“아르바이트는 정말 많이 했죠. 우유, 신문, 치킨 배달은 물론 벽돌 나르고, 배선 깔고 하는 단순 노동, 막노동도 했고, 와인 바나 커피숍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이제 와서 느끼는 건 경험이 전부라는 거예요. 사서 고생하라는 말을 이제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때의 처절한 경험이 연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요. A4 용지에 대사만 있으면 문서일 뿐이잖아요. 이해가 안 되면 그 감정까지 연기할 수 없어요. 감정지식이 없으면 ~척을 해야 되죠. 감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순수의 시작 ㅣ 6년 동안 고백하지 못한 짝사랑

사나운 인상이고 거친 삶을 살았지만, 속은 두부처럼 무르다. 인류애가 넘친다. 다소 소심하다.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럽게 건넨다. 자연인 고준은 케빈 리처럼 터프하고 마초적일 거라는 예상을 깨고 순수함을 드러낸다.

고준은 어린 시절에 천주교를 다녔다. 모태 신앙은 아니다. 우연히 간 성당에서 신부가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경청하고 상처를 치유 받는 느낌을 받았다. 신부가 우상화됐고, 수년간 신부 옆에서 수발을 드는 복사를 했다. 복사 대장까지 했다. 종교인이 될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수도원에는 안 들어가기로 결정했어요. 이유는 여자 때문이에요. 사춘기 때부터 한 여자를 대학교 2학년 때까지 6년 동안 짝사랑을 했어요. 아마 그분은 제가 좋아했는지도 모를 거예요. 수줍고 소심하기만 한 거죠.”

이 순수한 마음은 연극으로도 이어진다. 거칠고 압박이 심한 연극계 문화에서 벗어난 고준은 젊은 배우들끼리 힘을 합해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 무대를 만들었다. 트럭을 몰고 산골과 섬을 다녔다. 서울시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의 뜻이 너무 좋아 참여했다고.

“주 관객층이 노인과 아이들이에요. 노인 분들은 왠지 사극을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고전이나 정극을 올렸는데, 뭔가 소통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권유할 게 아니라 그들과 진정 소통하는 게 필요하고 거기서 힘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어요. 개그요소가 강한 희극을 올렸더니 그 때부터 반응이 뜨거워졌어요.”

퇴폐의 성장 ㅣ 영화 <타짜2>의 유령, 드라마 <미스티>의 케빈 리는 운명

독립 영화를 전전하던 그에게 엄청난 기회가 왔다. 강형철 감독의 영화 <타짜2:신의 손>의 유령 역에 캐스팅 됐다. 영화 <써니>와 <과속스캔들>에서 단역으로 나왔던 그를 강 감독이 눈여겨봐줬고, 캐스팅이 끝날 무렵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유령을 맡았다.

목숨을걸고 준비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전라도에서 지내면서 노력한 결과는 스크린에서도 고스란히 비춰진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음지의 악랄함이 드러난다. 극중 아귀 삼촌을 너무 좋아하는 조카 유령 역을 맡은 고준은 조금은 맹하면서도 센 느낌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냈다. 영화 <타짜2>는 약 500만 가까운 스코어를 냈고 신인배우 고준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그는 당시 몸이 아파서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놓친다.

“그때 제 상황을 축구선수로 따지면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에서 3골 넣고 십자 인대가 파열돼 ‘시즌 아웃’ 된 거나 다름이 없었어요. 많이 힘들었죠.”

바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그는 다시 차근히 한 발짝씩 앞을 내딛는다. 영화 <대배우>를 시작으로 <럭키>, <밀정>, <미씽: 사라진 여자>, <청년경찰>, tvN 드라마 <구해줘>까지 굵직한 작품에서 그를 찾고, 분량도 점차 늘어났다. 대부분 음지에서 분노를 드러내는 캐릭터가 많았다. 그러던 중 JTBC <미스티>의 케빈 리가 운명처럼 그를 찾아왔다. 극중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 고혜란(김남주)의 전 연인이자 프로골퍼 케빈 리 역을 맡아 열연했다.

“저는 캐릭터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봐요. 그 운명을 마주하면서 에너지가 발생하죠. 사실 처음엔 저랑 케빈 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게 묘한 섹시함이 있다고 캐스팅을 하셨어요. 전 모르겠거든요.”

본인만 모르는 그의 섹시미는 전국을 강타했다. 섹시를 넘어 퇴폐한 매력이 있는 남자 고준은 뒤틀린 욕망을 표현하는 케빈 리의 불안정한 심리를 훌륭하게 묘사한다. 드라마 <미스티>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에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케빈 리를 연기한 고준의 힘이 컸다.

“케빈 리는 왜곡된 사랑을 하죠. 고혜란(김남주)에게 버림받고 나서 여자라는 기준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고혜란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크다보니 집착단계에 온 거죠. 은주(전혜진)도 그렇고 지원(진기주)도 그렇고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이 아니에요. 비정상적이고 트라우마를 사랑으로 보는 거죠. 저는 그렇게 해석했어요.”

순수의 성장 ㅣ 상처 줄까봐 액션신은 촬영하고 싶지 않다는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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