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순례 감독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인터뷰)임순례 감독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3.0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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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무서운 세상이다. 여기저기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마음 속 깊숙이 파인 상처를 드러낸다. 대중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위선을 확인하면서 충격을 받는다. 아직도 여전히 곪아 있을 상처받은 자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게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이다. 권력과 위력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비단 미투 운동 뿐은 아닐 것이다. 직장 내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사장과 사원, 선임과 후임, 친구와 친구, 교사와 제자, 부모와 자식, 형제와 형제, 인간과 반려동물 사이에서 서열이 발생하고 권력과 위력을 발휘하는 일들이 횡행이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너무 아픈 진실을 마주하고 있는 때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는 의식이 아직 우리들 사이에서 완벽히 갖추지 못한 탓이겠다. 모든 생명을 인격체로 대하고 존엄하게 여기는 것이 아직 우리에겐 어려운 습관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모든 생명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대하는 ‘힐링’ 영화가 개봉했다. <리틀포레스트>다. 취업과 연애, 자아실현 어떤 것도 성공에 실패한 20대 청년들이 시골 고향에 내려와 4계절을 보내면서 농사를 짓고, 삼시세끼를 해먹으며 꿈을 실현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마치 게임을 하듯 밥을 해먹는 장면의 나열과 대한민국의 푸른 사계절, 동식물의 뚜렷한 성장, 마음을 잔잔하게 만드는 느림의 미학은 이 영화만의 미덕이다. 뿐 만 아니라 20세의 딸을 두고 사라진 엄마의 기행에 묻어있는 모성애,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 딸, 강요는 미룬 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친구들, 두려움에 떠는 강아지를 아껴주는 인간, 모두가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꿈을 일궈내는 20대의 땀, 작물 앞에서 나오는 행동 모두가 정성이 가득한 농부의 태도 등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빠르고 과격한 큰 스케일의 블록버스터가 즐비한 가운데 레퍼런스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새로운 영화다. 이 모든 것을 완벽히 버무린 임순례 감독을 지난 2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연이은 호평에 푸근한 웃음을 지은 그는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며 “모든 생명 사이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영화가 정말 아름답고 순수하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탄생시키기 힘든 내용이고, 이미지다. 여러 장애물이 있었을 텐데도 꼭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을 것 같다. 

▲우리들이 도시에서 사는 방식들이 다들 너무 비슷비슷하지 않나 싶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삶.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보면 누구하나 행복해보이지 않고 다 지친 모습이더라. 모두가 너무 똑같이 살고 있지 않나 싶었다. 이럴 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을 보면 새롭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사회가 혼란스럽고 지친 상황이다. 2,30대들에게 자극적인 맛을 내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그래서 덜 자극적이더라도 건강한 한 끼 식사를 전해주면 어떨까 싶었다. 조미료는 없지만 재료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내 정신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그런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 언론시사회에서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당신이 하는 일이 선의라면 그 선의는 다 옳다”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풀어서 말해준다면. 

▲개인 자신이 느끼는 게 정답이고 거기에는 정답과 오답이 없다. 인간의 본성은 다 선하다. 실천을 못해서 그렇지 인간은 관념적으로 추구할 때는 선한 것을 추구한다. 그런 마음을 갖고 영화를 보면 더 위로받는 영화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 요즘 화두가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로 축약할 수 있다. 미투운동의 원인을 비롯해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들 모두가 특권의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나이와 서열로 인간을 구분 짓고 행하는 것들이 많은 사람들을 상처 준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런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배역들이 모두 아름다운 시선을 갖고 있다. 

▲저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고 말하고 싶다. 혜원(김태리)이 오구한테도 말을 붙인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 저도 다 실천하지는 못하는데 감독으로서의 특권을 많이 내려놓으려고 한다. 어떤 현장에 영향력 있는 스타가 있고 중요한 파트가 있다고 치자. 시간은 제한돼 있다. 그러면 제한된 시간 안에서 각자 필요한 시간이 있다. 그걸 기다려주고 대다수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려고 한다. 비단 배우 뿐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적용하려 한다.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도 물론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딸을 대하거나 고모가 혜원을 대할 때 인격체로 대한다. 혜원도 굉장히 편하게 대한다. 버릇이 없는 게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표현된 거라 본다. 만약 관객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우리 현장이 그렇게 작용했을 것이다. 저의 기질 자체도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 이 영화의 여러 재밌는 점 중 하나가 엄마와 딸의 관계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교육태도다. 아이를 철저히 인격체로 대하고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누가 보면 철없고 이상한 엄마로 보이겠지만, 문소리가 연기함으로써 모성애로 전달된다. 모든 걸 대신 해주려고 하는 우리나라 부모님들이 봐야 하는 영화 같다. 

▲원작이 있으니까 그 교육법을 의도했다고는 할 수 없다. 남성분들도 의식을 가질 수 있는데, 내가 여성이다 보니 여성이 너무 주체성이 없이 그려지는 모습을 원치 않았다. 그런 여성들은 저도 멋있다고 생각하고, 배우 자체도 김태리라는 배우가 비주체적이고 비독립적이면 안 어울리기도 하다. 극중 엄마는 딸을 애로 대하는 게 아니라 파트너로 대한다. 그 지점이 독립적인 혜원을 만들어낸 것 같다.

-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놀랍다. 김태리나 류준열이 연기를 못하는 배우들은 아니지만 이 정도까지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연기하지는 않았다. 이번만큼은 마치 자기 옷을 입은 듯 편하게 연기했다. 특히 류준열은 더 놀라웠다. 

▲류준열과 김태리의 연기가 자연스러웠다면 디렉션을 구체적으로 줘서는 아니다. 연기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연출력이라 생각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줬을 뿐이다. 준열과 태리, 기주 모두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잘 했고, 유난히 편해하는 것 같긴 했다. 그리고 류준열은 상당히 영리하다. 자기가 뭘 해야할지 신마다 톤을 딱 정해서 온다. 계산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걸 구현해낸다.

- 류준열은 감독님과 비슷하게 친환경적이고 사회적 활동과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되나. 괜히 더 예쁜 배우로 여겨질 것 같다. 배우 류준열, 자연인 류준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린피스나 아프리카 컴패션 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다. 놀랐던 건 차인표나 박진희와 같이 이 영역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중후반부에 자기 소신을 갖고 사회적인 공헌을 하는 경우가 흔한데, 준열씨는 굉장히 빨리 시작했다. 아직 자기 영역이 완전히 구축된 것도 아닌데, 그런다는 건 자기 소신이 있다는 거다. 자기 확신이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내공도 보통이 아니다. 배우 류준열도 훌륭하지만 청년 류준열도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김태리와 류준열은 복 된 캐스팅이었다면, 진기주는 다소 모험에 가깝다. 물론 영화에서는 연기를 잘했지만, 당시에만 해도 크게 검증되지는 않았는데, 평가를 내린다면. 

▲저는 연출할 때 세세하게 내리는 타입이 아니고 배우에게 어떻게 할 건지 기회를 준다.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 차이가 있으면 그 때 잡아준다. 기주는 우리 영화에서 정말 잘했다. 그건 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준열씨가 반장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를 잘 풀어줬다. 기주는 원래 영화 현장이 낯설고 긴장됐는데, 태리와 준열이 많이 풀어줬다. 그러니까 기주도 쉽게 현장에 녹아들어갔다. 베스트 신이 많았다. 기주나 나나 준열씨에게 빚을 진 게 있는 거다.

- 영화를 혼자 관객들과 함께 봤다고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아주 객관적으로 관객의 눈높이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나.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되더라. 초반에는 나도 좀 이 영화가 이상하더라. 먹기만 하고. 내 마음도 어딘가 갈 곳을 잃은 느낌을 받았다. 반성을 했다. 그러다가 은숙(진기주)이가 오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쉬운 게 참 많기도 하고 그런데, 최대한 관객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를 보는 내내 스며들었고, 가볍고 편안했다.

-자신의 영화를 정의 내린다면. 

▲유행가 가사인데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약간 슬픈데 좀 웃긴다던지, 웃기는데 그 안에 슬픔이 있든지. 뭔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본적으로는 따뜻함을 좀 갖고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소외된 위치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사람들의 심정과 시선을 이야기 하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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