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 영화 "원더풀 라이프"
사람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 영화 "원더풀 라이프"
  • 스타포커스
  • 승인 2018.01.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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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주)안다미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창기 대표작인 '원더풀 라이프'를 보면 영화라는 매체에서만 볼 수 있는 단단한 힘이 깃들어 있다. 지난 1998년에 관객과 처음 만난 후 내년 1월 4일에 재개봉하는 하는 '원더풀 라이프'의 형식은 판타지이지만 내용은 일상 그 자체다. 사람들이 죽은 후 천국으로 가기 직전, 잠시 머무는 중간 지점인 림보역에서 그들은 살아있었을 때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을 정리하며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모치즈키(이우라 아라타 분)와 시오리(오다 에리카 분)를 비롯한 림보역의 직원들은 망자의 선택을 도와주고 이를 재현하는 일까지 담당한다. 독특한 설정을 통해 '행복'이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보고 난 뒤의 여운이 짙은, 긴 생각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살면서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지만 행복은 모든 사람에게 매순간 주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극중 이십대에 일찍 삶을 마감한 이세야(이세야 유스케 분)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는 아예 자신의 삶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다가 칠십대에 숨을 거둔 이치로(나이토 타케토시 분)도 큰 차이는 없다. 안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사랑한 사람과 결혼한 것도 아니었고, 원하는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보통의 삶.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살아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렇게 살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무심결에 지나쳤을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역설한다.

<사진제공. (주)안다미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작은 일에서 그 감정을 찾는다. 기억을 더듬어 그들이 마주한 것은 어렸을 때 오빠가 사준 예쁜 원피스를 입고 치킨라이스를 먹던 일이나, 몸이 아팠을 때 누군가 물에 불린 생쌀로 정성껏 끓여준 죽을 먹었던 일처럼 사소한 것들이다. 영화에서는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프레임 안에 한 사람의 모습만 담아 그 에피소드를 고스란히 담는다. 눈에 띄는 기교나 미장센은 없지만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촬영에서 말하는 이의 진심이 와 닿는다. 시니컬한 청년부터 상처받을까봐 사랑을 믿지 않는 중년 여자, 머리숱마저 얼마 없는 할아버지, 자신의 기억마저 흐릿한 할머니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누구 하나 놓치지 않고 단정하게 포착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뚝심이 빛을 발하는 시퀀스들의 연속이다. 그 덕분에 극적인 사건이나 BGM 없어도 흡입력이 상당하다. 마치 그들의 이야기가 내 것 같고,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유년마저 더듬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자연광과 겨울날의 쓸쓸한 분위기를 아날로그 감성으로 촬영한 '원더풀 라이프'는 가와세 나오미, 이와이 슌지 감독의 90년대 스타일과도 닮았다.

잊지 않고 영원으로 가져갈 추억을 사후에 고르고, 그것을 재현한다는 플롯이 영화의 아련함을 더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떠난 뒤에 그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살아있었을 때에는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두 번 다시 마주 할 수 없는 지점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으로 전환된다. 사람은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한다. 작은 것에 깃들어 있는 이 보석 같은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죽음 이후의 시점을 택한 것은, 그만큼 우리가 행복을 잊고 살기 때문 아닐까. 한 번 정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선물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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