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넘어, 류준열
신드롬 넘어, 류준열
  • 김주영 기자
  • 승인 2017.12.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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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배우일수록 그 진가를 찾는 것이 의외로 어려운 경우가 있다. 무수한 장점 속에서 '왜'를 찾아내는 과정은 관객에게 낯설지만 배우에게는 숨 쉬는 것과 같다. 왜 연기를 하는지, 왜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지,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당장 대답해야 되는 질문부터 언젠가는 말해야만 하는 추상적인 물음까지. 그래서 배우의 세계관은 하나의 우주와 같다. 그 안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할 터. 그런 면에서 류준열은 관객에게 친절한 사람이다. 최소한 스크린에서 그를 보고 실망하는 일은 없으니까. 그래서 올해 마지막 커버 스타는 류준열이다.

 

사진제공. (주)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용필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필라멘트픽쳐스/(주)엣나인필름, tvN

 

 

류준열을 보면 세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영화 '꾼'의 안세하(김 과장 역)와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 형으로 나왔던 안재홍(정봉 역)과 동갑인 86년생 배우라는 점. 스릴러 범죄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 출연했다는 점. 그리고 팬덤이 두텁다는 점. 스타를 향한 팬들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지만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의 줄임말)' 신드롬 이후 그를 둘러싼 것들은 많이 변했음을 감안할 때, 변함없는 팬들의 존재감은 경이로울 정도. 탄탄한 연기력만큼 팬이라는 지지기반은 최소한 류준열에게 거품이 아닌 계단이 되었다. 충무로에서 열일하는 '충무로 소'로 불릴 정도로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으니까.

 

 

'이유'는 류준열이 신인 때부터 개성 있는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관성이다. 영화 '소셜포비아'에서 레나라는 여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BJ 양게를 맡았을 때에도 영화 '글로리데이'에서 위기에 노출되자 부모 품으로 숨는 재수생 지공을 맡았을 때에도 지금 돌이켜보면 드는 생각은 하나다. '왜?' 여자를 상대로 현피(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제안하는 역할은 자칫하면 양아치로 전락할 빈도가 높다. 기성세대를 비난하면서 그들의 권력에 의존해 교묘하게 법망에서 벗어나는 스무 살은 비열함의 표본이다. 그 무엇으로도 면죄부를 줄 수 없을 것 같은 캐릭터들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것은 그의 개성 있는 연기에 있었다. 그 개성은 엽기나 폭소 같은 즉각적인 반응보다 사실 이들도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류준열이 아니었다면, 신인배우가 맡은 이 캐릭터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위태로운 청춘, 혹은 방황하는 젊은 세대의 심리를 거침없이 표현하며 주목을 받은 류준열은 '응팔'에서 좀 더 세밀하게 자신을 가다듬는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포스를 풍기는 고교생 정환을 맡아 폭 넓은 모습을 긴 호흡에 담았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성격은 그다지 좋지 않은 고등학생이 동네친구 덕선(혜리 분)에게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스파크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류준열의 미덕은 어떤 배역을 맡든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몰입한다는 데 있다. 보는 사람에게 부담감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점. 극중 정환도 덕선에게 그런 동네친구였다. 갑작스럽게 비가 오는 날에 연락하지 않아도 불쑥 나타나 우산을 건네주는 것처럼. 투박한 손길이어서 더 정감 가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남자. 그렇게 대중 곁에 친숙하게 다가온 류준열은 충무로에서 더 빛을 발하는 젊은 배우가 되었다.

 

 

영화 '더 킹'에서 조직폭력배 두일을 맡아 조인성과 기대 이상의 앙상블을 보여주며 거친 남성미를 끌어냈다. 친구이자 검사인 태식(조인성 분)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조직폭력배로 끈끈한 의리를 과시한 결과 남성 팬들까지 확보했다는 후문이다. 고교시절을 떠올리며 학교 운동장에서 태식과 운동장에서 뒹구는 장면은 피도 눈물도 없는 두일의 숨겨진 1%였다. 그 씬이 없었다면 그저 냉혈한에만 머물렀을 두일을 욕망에 찌든 엘리트 집단과 동급에 올려놓은 데에는 류준열의 날카로운 눈빛이 필수적이었다. 그 도식은 그가 신인배우였을 때 보여준 것과 같다. 이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침묵'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다.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사는 이야기, 살면서 고민했던 순간들이 영화에 다 담겨 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인데 '침묵'이 바로 그러한 생각이 들게 하고, 많이 웃고 많이 울게 하는 영화이다."

 

올 하반기, 류준열은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올해 유일하게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순박한 광주 대학생 재식으로 연기톤에 변화를 줬다. 자신만의 독특한 모습을 유지하되 친근감을 배가한 모습은 80년대 청춘을 재조명한 하면서 ‘응팔’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다. '침묵'에서는 비중은 적었지만 대선배 최민식과 투 샷으로 나올 때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영화를 지탱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선 도시의 삶에 지친 혜원(김태리 분)을 위로해주는 힐링 아이콘 재하를 맡아 사계절 동안 촬영에 임했다. 두기봉 감독의 영화 '마약전쟁'을 리메이크한 영화 '독전'에선 마약조직의 보스를 잡기 위해 형사와 협력하는 역할의 '락'으로 나온다. 또 다시 형사로 나오는 조진웅(원호 역)과 한 팀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어떤 조합보다 막강한 호흡을 자랑하지 않았을까.

 

 

청춘의 아이콘에서 시작된 류준열은 점점 보편성을 확보하며 현실 속 인물들로 관객의 마음 속에 안착하고 있다. '응팔' 신드롬 이후 가장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가 된 류준열. 그의 행보를 보면 영화계 대선배들이 신드롬 너머에 있는 것을 목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심에서 괄목할만한 문화현상을 촉발했지만 결코 함몰되지 않고 신선한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더 믿음이 간다. 앞으로 그로 인해 관객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영화를 극장에서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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