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와 쿠로키 하루가 만났을 때,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와 쿠로키 하루가 만났을 때,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1.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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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a6%bd%eb%b0%98%ec%9c%99%ed%81%b41 <사진제공=(주)더쿱/TCO(주)더콘텐츠온>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배우 중 한 명인 쿠로키 하루와 함께 한 신작 '립반윙클의 신부'로 영화계에 새로운 '랜선'을 연결했다. 12년만의 실사영화라는 프리미엄에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랜선 무비'라는 독특한 소재도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러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쿠로키 하루다. 메인 포스터를 통해 공개된 그녀의 옆모습은, 2004년에 개봉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전작 '하나와 앨리스'에서 앨리스 역을 맡아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아오이 유우와 무척 흡사하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플래닛'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전부인 나나미(쿠로키 하루 분)의 이야기다. 그녀의 존재감은 오직 SNS에만 있다. 맞선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는 과정을 "인터넷 쇼핑하듯 너무 쉽게 손에 넣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결혼한 후에 그녀가 남편에게 했던 거짓말들이 들통 나면서 이혼 당한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하던 그녀는 '립반윙클'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마시로(코코 분)와 만나 친구가 된다. 그렇게 나나미는 진짜 세상에 발을 들여 놓는다.

연약하고 병적으로 섬세한 나나미를 연기한 쿠로키 하루는 이미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작은 집'으로 '제6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일본에서는 해외영화제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이었다. 2011년에 테라야마 슈지의 희곡 '아아 황야'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는 바로 이번 작품의 주인공으로 러브콜을 받았다.

%eb%a6%bd%eb%b0%98%ec%9c%99%ed%81%b42극중 나나미는, 특히 초반엔 유리처럼 곧 깨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다. 남편의 외도를 확인한 순간 부엌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장면부터 이와이 슌지 감독의 말처럼 '영화 냄새가 나는 배우'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남편에게 전화로 이혼통보를 받고 캐리어를 끌며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의 여운은 짙다. 나나미는 예전부터 계속 도움을 요청했던 서비스맨 아무로(아야노 고 분)에게 전화해서 "나는 이제 갈 곳이 없어요"라고 울먹인다. 현실과 가상, 사랑과 고통 사이에서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아스팔트 도시의 음영과 절묘하게 부합되며 미로 속에 갇힌 앨리스로 각인된다.

쿠로키 하루는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전반적으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는 그녀이다 보니 때로는 관객이 답답할 정도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답게 '주인공이 너무 소녀감성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혼 후에 그녀가 하는 아르바이트도 결혼식장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가상 가족이 되어 하객으로 참석하거나, 월급 천만 엔짜리 가정부라는 황당한 일들이다. 그러나 영화 중간 중간에 그녀는 적절한 타이밍에 억압된 감정들을 분출한다. 무지함과 혼란스러움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에 남편과 마시로와 알 수 없는 사이트에서 고객의 업무를 대행해주는 무수한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찰나, 관객은 한 순진한 여성의 산산조각 나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만 난무할 뿐, 빈약한 서사구조를 보여주지만 초반엔 탄탄하게 나나미의 감정을 쌓는데 주력한다. 온라인에서 미래의 남편과 만날 때 그녀가 매우 심각한 거짓말들을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 이유는 나중에 시어머니의 추궁에서 밝혀지듯, 결혼식에 초대할 마땅한 하객들도 별로 없고, 부모가 이혼한 사실로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경험했을 법한 이런 일들은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육성이 아닌 모니터로 대화하기에 가능하다. 수많은 사이트에 떠도는 출처 불분명한 정보들처럼 우리들의 언어는 공간에 울리지 않고 회로에 폐기된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영화 '피크닉', '언두', '릴리 슈슈의 모든 것'등으로 '검은 이와이'라 불리던 시절의 감수성을 2000년대에 소환한 작품 같다. 서사는 다르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은 젊은 여성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에 여전히 탁월한 공력을 보여준다. 나나미는 일본에만 국한된 여성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여러 가지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바쁘게 걸어 다니는 그녀들은 이미 우리 주위에 가득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런 상황을 보고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미 그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학교 폭력이나 왕따 등의 문제를 채팅 형식으로 독특하게 풀어낸 적이 있었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그 당시보다 더 진일보한 온라인 문화를 배경으로 현실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나나미를 전면에 내세워 그 심각성을 더 포괄적으로 담아냈다. 쿠로키 하루는 선택의 여지없이 자동반사적으로 SNS에 의지하며 살다가 현실과 마주했을 때, 무기력해지는 한 여성의 맨 얼굴을 연기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극중 나나미가 '진짜가 되는 법'을 배운 것처럼 쿠로키 하루도 그렇게 배우가 되었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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