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는 논란이 아닌 봉준호 감독의 진화
"옥자"는 논란이 아닌 봉준호 감독의 진화
  • 스타포커스
  • 승인 2017.06.1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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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

틸다 스윈튼부터 제이크 질렌할까지,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배우들이 봉준호 감독을 믿고 출연한 '옥자'. 여기에 온라인 스트리밍 최대 업체인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측은 '논란'이란 화두를 던지며 전 세계 영화인들의 관심을 '옥자'에 집중시켰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재기발랄함을 바탕으로 풍자적 성격을 더했다. 봉준호 특유의 '허를 찌르는 새로움'보단 그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며 테마를 집결한 성격이 짙다. 보는 사람에 따라 '플란다스의 개'에서 느꼈던 아련함부터 괴생물체의 등장으로 긴장감 가득했던 '괴물', 부조리한 현실을 가차 없이 꿰뚫었던 '설국열차'까지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현재 '옥자'를 본 사람들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몇몇 사람들은 '옥자'가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다른 작품들처럼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유전자 배합으로 탄생한 새로운 생명체의 눈빛까지 절절하게 담아낸 봉준호 감독다운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특성과 제작사 넷플릭스의 최대점이 황금비율로 혼합된 강점이 있다. 깊은 산골에서 미자(안서현 분)와 옥자가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장면이나 옥자를 빼내기 위해 땀범벅이 된 채로 명동 거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미자의 상기된 얼굴은 둘의 연대감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갑자기 사라진 강아지를 찾기 위해 노란 후드티 차림으로 전단지를 붙이던 현남(배두나 분)의 얼굴이 오버랩 될 수도 있겠다.

장르적 특수성과 보편적인 감성을 접목시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괴물'은 파격이었다. 항상 휴머니즘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끔찍한 괴물에 의해 희생당하고, 그 괴물을 처단하는 과정은 결과적으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옥자'를 보는 동안 관객은 '괴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엇비슷한 소재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환한 아이디어에는 감탄하게 된다. 옥자는 괴물에 비해 사랑스럽고 연민을 유발한다. 미란다에 의해 납치당해 식탁에 오를 운명이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옥자라는 캐릭터 자체가 귀엽다. 괴물이 징그러운 외관과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적으로 간주된 점을 감안한다면 '옥자'에서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식용으로 만들고자 한 시스템의 상부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극중 미란다 코퍼레이션의 또 다른 CEO인 낸시의 말처럼 '기업은 돈이 되는 일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실체 없는 괴물이다. 친환경을 위시해 유전자 조작을 정당화하고, 이윤을 위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는 집단.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자본과 욕망을 비난한다.

그런데 이런 무게감을 안고서도 오히려 가장 유쾌하고 신선한 템포를 유지한다는 점이 경이롭다. 어쩌면 그런 특성들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봉준호의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옥자'에서 '봉테일'이란 별명에 부합할 만큼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은 다리우스 콘지의 촬영과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 다리우스 콘지의 최근작은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부터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까지 다양하다. 광활한 풍광부터 섬세한 심리 변화를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는 감각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 씬에서 정점을 찍는다. 다리우스 콘지는 동물보호단체와 경찰들이 한데 뒤엉켜 난장판을 이루는 상황과 미자와 옥자의 감동적인 재회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동시에 잡아낸다. 약물 때문에 판단력을 잃은 옥자가 미자의 팔을 물지만 미자는 언제나 그렇듯 옥자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한다. 영화에서 귓속말은 미자가 옥자와 소통하는 행위로 사람과 동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순수한 몸짓이다. 휴머니티로 요약되는 이 접촉은 '슈퍼 돼지' 옥자를 놓고 자신들의 입장 챙기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빚어내는 혼란과 대조되어 더 부각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이런 설정들은 동시에 '옥자'의 상징이 된다. '옥자'는 그런 이유로 넷플릭스가 아닌 봉준호의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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