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 나는 수컷들의 매력적인 작당, "불한당"
짠내 나는 수컷들의 매력적인 작당, "불한당"
  • 스타포커스
  • 승인 2017.05.0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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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볼룩스(주)바른손>

극중 재호는 현수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버려진 새끼들끼리 재미있지 않겠냐?" 때로는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또는 복선 역할을 하는 이 대사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영화의 주제이자 인물들의 행동 동기가 여기에 있다. 버림받은 남자들은 교도소 안에서도, 출소한 뒤 사회에 나와서도 그들 나름대로 줄기차게 범죄를 저지른다. '불한당'은 버림받고 배신을 일삼는 자들의 연대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자의(부모의 죽음을 방관하거나) 혹은 타의(예기치 못한 사건의 발생)로 사회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사람들. 관객이 무엇을 기대하든 그들의 끈끈한 의리와 우정은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감정으로 제한된다. '느와르'라는 장르의 특성에 기대어 이 감정은 더욱 끈끈하게 와 닿는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던 그들이 철창으로 가로막힌 공간에서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 것처럼, '불한당'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전혀 불한당 같지 않은 두 남자가 작당하고 뭉쳤다는 점. '불한당'에서 가장 중요한 팩트는 배우들의 조합에 있다. 누가 이 감정선을 끌고 가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설경구X임시완'이라는 조합은 새롭다기보다는 예외적이다. 설경구는 이미 '서부전선'에서 여진구와 합을 맞춘 적이 있으며, 임시완은 '미생'에서 이성민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연기 전환점을 맞아 '불한당'에서 마주하게 된 셈. 끊임없이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임시완에게 설경구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조합은 기대 이상이다. 무게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상적인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덕분에 '불한당'에는 배우들의 연기들만 놓고 보다면 빈틈이 없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볼룩스(주)바른손>

재호와 현수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데 동질감을 느끼며 친형제 이상으로 지낸다. 두 사람에겐 결핍된 가정에서 끊어진 혈육의 끈을 어떻게든 다시 이어보려는 욕망이 있다. 이 인위적인 시도가 그들을 맺어주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딜레마에 빠트린다. 두 남자의 다른 점을 꼽자면 일찍 부모를 잃은 재호와 달리 현수에게는 아직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신장이식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현수는 더 절박하게 엄마라는 존재에 집착한다. 재호는 현수에게, 현수는 엄마에게 모든 감정을 쏟아 붓는 상황이다. 현수가 느끼는 분노와 희망, 행복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위치는 엄마의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궁지에 몰려도 이 철칙은 깨지지 않는다.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의 뒤통수를 겨냥하지만 대부분 짐작 가능하며 딱 떨어지는 구성이어서 흡입력이 상당하다. 여기에 병갑(김희원 분)은 극에 흥미를 더하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한다. 센 캐릭터, 악역임에도 재호 못지않게 인간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이 살풍경한 난장판 속에서 그나마 팽팽한 긴장감을 느슨하게 조율한다. 동시에 스타일리시한 색감으로 빛나는 씬과 씬 사이에 재호가 현수에게 느끼는 감정에 힘을 실어주는 캐릭터가 병갑이다. 그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비상식이어도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조직원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에게 조직은 곧 가족이니까. 이 연대감은 재호의 선택과 평행을 이루며 영화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제70회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되며 85개국에 선 판매를 한 데에는 감각적인 연출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변성현 감독은 어찌 보면 비현실적이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숨쉬는 수컷들의 거친 호흡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2인 1조로 촬영하는 '테크노 그레인'으로 회전 앵글부터 수평 보정 등을 활용해 피 튀기는 액션 장면에서 배우들의 표정을 사실감 있게 담았다. 현수가 납치당하는 장면은 아이폰으로 작업해 배우의 호흡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실험적인 시도는 만화적인 연출로까지 이어지며 다른 듯 하지만 닮은꼴인 두 괴물을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변성현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연기한 사람은 설경구가 처음이었다'는 말을 했는데, 혼신을 다한 배우들의 노력에 보답하려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제작진들이 고민을 거듭한 흔적은 역력하지만 그 힘이 스토리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왜 인물들이 이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동기'는 끈질기게 파헤쳤지만 결과적으로 그 화살이 어느 과녁을 향한 것인지 모호하다. 남남케미가 충무로의 성공적인 흥행코드로 안착한 요즘, '불한당'은 색다른 시도를 통해 제작진과 관객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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