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영화의 민낯과 뉴 페이스를 오가는 "특별시민"
한국 정치 영화의 민낯과 뉴 페이스를 오가는 "특별시민"
  • 스타포커스
  • 승인 2017.05.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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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주)쇼박스>

영화 제목에서 '특별하다'는 형용사를 보고 조금 의아했다. 시민의 사전적 의미는 민주사회에서 참정권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런데 그런 시민이 왜 특별할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권리, 그리고 마땅히 행사해야만 하는 투표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건 아닌지.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 수많은 야합과 비리에 대해 대중이 차별받지 않고 공정하게 정치인들을 처벌할 수 있는 방식이 선거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제목 '특별시민'. 그런 맥락에서 '배신의 정치'를 응징해달라는 말이 전직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대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특별시민'에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은 타이밍만은 아닐 터.

'특별시민'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영화다. 그래서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에는 더 무게감이 실린다. 특히 변종구(최민식 분) 선거캠프본부장인 심혁수 역할을 맡은 곽도원 배우는 검사나 형사 등 특정 직업군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아수라’의 김차인, '변호인'의 차동영, 여기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무뢰한'의 문기범까지. 자기보다 하수이거나 약자를 억압하는 공간에 어느 순간부터 곽도원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자리 잡았다. '특별시민'의 차이점은 다른 인물과의 차이를 통해 캐릭터의 본질을 더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이 미세한 간극에서 영화의 디테일이 빛난다.

곽도원이 전작에서 맡은 김차인이나 차동영은 '독고다이'식으로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심혁수는 더 신중하고, 예리하며, 멀리 보고 계획을 세운다. 오히려 '독고다이'는 변종구의 슬로건이다. 심혁수의 유일한 취미인 구두를 관리하는 방식을 보면 단적으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구두를 사서 드레스룸에 모아 놓는 수집벽이나, 선거 캠프에서도 열심히 구두를 닦는 결벽증. 그래도 한번 구두에 잡힌 주름이나 스크래치는 되돌릴 수 없다. 가죽에 비친 심혁수의 모습은 항상 일그러져있다. 그 사실을 본인도 잘 알기에 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구두에 집착하고 공들여 관리하지만 그것이 부질없는 행동임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구두는 자신일 수도 있고, 정치라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는 좋은 구두를 신으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에게 좋은 곳은 김 대표(김홍파 분)에게 넌지시 말한 것처럼 당 최고위원이 되어 차기 대선까지 연결되는 탄탄대로다. 심혁수는 이런 야망을 머릿속에 심어두고 쉴 새 없이 판을 짠다. 곽도원 배우의 힘 있고 섬세한 연기는 그의 주변부에서 폭풍처럼 몰아친다.

<사진제공=(주)쇼박스>

특별한 사람들이 짜 놓은 판에 광고 전문가 박경(심은경 분)이 투입된다. '특별시민'의 색다른 점은 남자는 남자에 의해, 여자는 여자에 의해 대비되며 입체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앞에서 변종구와 심혁수가 그런 경우였다면, 박경은 정제이(문소리 분)와 비슷한 패턴으로 변주된다. 영화를 보면서 심은경 배우가 박경을 연기했기에 선 굵은 캐릭터들 사이에서 더 눈에 띄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배역들을 선보였던 심은경 배우에게 박경은 다른 배우들과 어우러져도 여전히 자신의 빛을 잃지 않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목적을 위해 박경에게 접근해서 녹취까지 하는 정제이 기자와 달리 박경은 '동기'를 가장 중요시한다. 영화 후반부에 시장실을 나서는 박경이 정제이와 잠깐 마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강렬하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박경이 변종구의 '충고'를 들었다면 그녀는 '권력'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경은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운운하지만 이미 그것을 져버린 정제이와는 달리 진실한 유권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특별한 유권자'. 비록 변종구가 그런 건 다 부질없다는 식으로 말해도, 박경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떨어도 그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신념을 굽힌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의 차이는 크다. 심은경 배우의 깨끗한 마스크는 어리고 연약해보이지만 누구보다 강단 있는 박경의 감정선을 무리 없이 보여줬다. 극 초반에 변종구를 향해 이제 가식적인 모습은 그만 보여 달라며, "정치에는 명분이 필요한데 시장님한테는 그게 없거든요"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정치관을 일축하는 그녀. 변종구를 뒤로 하고 시장실을 나설 때 그녀가 흘렸던 눈물이, 꽉 쥔 주먹을 보며 다들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그 감정이 희망이든 씁쓸함이든 대한민국 정치판에 특정한 감정을 유발한다면 그건 배우들의 공력이 클 것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영화 속에 녹여낸 덕분에 한국 정치 영화는 새로운 표정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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