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간위의 집"을 관통하는 공간의 의미
영화 "시간위의 집"을 관통하는 공간의 의미
  • 스타포커스
  • 승인 2017.04.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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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피니/리틀빅빅쳐스>

하우스 미스터리 스릴러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탄탄한 짜임새와 노인 분장까지 감행한 김윤진의 1인 2역이 돋보이는 영화 '시간위의 집'. SNS상에서는 십대 관객들의 호응도가 더 높다. 여러 화제작들 틈에서 뒷심을 발휘하며 관객몰이 중인 '시간위의 집'은 원톱으로 영화를 이끈 김윤진의 활약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집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입체적으로 진행되지만 집은 그 시간 속에서 큰 변화 없이 같은 장소에 있다. 그래서 이 집만 잘 관찰해도 25년 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시간위의 집'에서 집은 세트가 아니다. 충남에 있는 적산 가옥(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극중 미희(김윤진 분)는 이 집에 가장 최근에 거주한 사람이다. 25년 전, 남편 철중(조재윤 분)과 아들 효재(박상훈 분)를 죽인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후두암 때문에 남은 형을 집에서 채우면서 다시 이 악몽 같은 공간으로 돌아온다.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은 예전에 다녔던 성당의 최 신부(옥택연 분) 뿐. 이 집을 설계했을 당시 음양사가 집터를 정했다는 부분이나 농민들이 이 집을 습격했다는 일화가 밝혀지면서 영화의 음산한 분위기는 고조된다.

황량한 곳에 위치한 집은 스산한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느낄 법한 온기가 사라진 공간으로 묘사된다. 집 안은 항상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었지만 목제 바닥은 미희가 조심스럽게 걸어 다녀도 위태로운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미희의 재혼과 예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효재 때문이다. 미희에게서 자신의 '진짜 아들'이 생기자 철중은 효재를 냉대한다. 이런 가족사를 말해주듯 집의 분위기는 아무리 미희가 아이들을 살뜰하게 보살펴도 뭔가 결핍된 모양새다. 비극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제공=페퍼민트앤컴피니/리틀빅빅쳐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 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지하실과 미희를 혼란에 빠뜨리는 '그들'이다. 미희가 교도소에 나와 다시 집에 왔을 때 깨진 창문이나 거미줄이 쳐져 있는 천장 구석은 25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과거로 시점이 변해도 지하실의 검은 공간은 여전히 벽으로 가로 막혔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1분 암전 장면'은 현재도 미희 근처에 있는 그들을 그녀가 최초로 마주하는 씬이다. 집터가 안 좋다는 동네 주민의 말을 듣고 영매까지 집에 들인 그녀는 영매가 접신할 때 절대 눈을 뜨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1분 동안 스크린이 블랙 아웃된 상태에서 관객은 오직 청각만으로 상황을 유추한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웅얼거림과 "아빠, 저 죽이지 마세요"처럼 암시적인 대사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발화자들은 첫 마주침 이후 미희가 자신의 마음 속 어둠을 계속 들여다보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어둠은 미희가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가 된다. '시간위의 집'은 할리우드에서 흥행한 오컬트 무비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했지만, 접신처럼 한국적인 정서로 변형해 몰입도를 높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은 누가 이 사건의 현장에 있었으며, 왜 그랬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미희의 선택은 대부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집에서 일어난 일은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그녀는 그 대가를 치렀고, 자신의 단 한 가지 소망 때문에 돌아왔다. 비록 지나간 삶은 어둠 속에 잠겨 버렸지만, 아들은 따뜻한 빛 속에 머물길 바랐던 어머니의 마음.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아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25년마다 단 한 번 열리는 시간의 틈새를 가로지른다. 기적처럼 자신의 삶을 바꿀 기회가 주어졌지만, 예전처럼 아들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미희. 아들은 그것을 희생이라고 말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마음이 자기 존재의 이유였다. 최 신부에게 "사제에게 주님이 신앙이라면, 어머니한테는 자식이 신앙이다"는 말처럼. 그 집에 어둠과 공존했던 미희의 진심으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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