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시린 겨울에도 봄같이 따뜻했다 영화 "눈길"의 이나정 감독
지독히 시린 겨울에도 봄같이 따뜻했다 영화 "눈길"의 이나정 감독
  • 스타포커스
  • 승인 2017.03.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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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주)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일제시대 영문도 모른 채 위안소에 끌려간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눈길'은 그 시절의 기록을 담담히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아픈 비극의 역사 속에서도 때묻지 않고 순수했던 소녀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표현한 이나정 감독은 '눈길'이 단지 과거를 담아낸 스토리가 아닌, 현재로 이어지는 그들의 상처를 녹여낸 작품이라 표현했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을 작품 속에 어떻게 풀어냈는지 스타포커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삼일절을 맞아 영화 '눈길'이 개봉한다.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드라마 PD이다 보니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본다는 점이 새롭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실시간으로 게시판에 올라오기에 바로 확인이 가능한데 영화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이 관객들도 비슷할 것 같다. 마음이 먹먹하면서 따뜻한 영화라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상영하기 전까지 우려했던 점은 없었나.

상영시간이 혹시 길지는 않는지, 내용이 잔잔하진 않는지 고민이 되긴 했다. '눈길'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당했다는 사건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정말 평범한 아이들이 겪은 그 소녀들의 아픔을 전달하고 싶었다. 김영옥 할머니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서 직접 눈으로 언니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셨다고 항상 얘길 하셨다.

'눈길'이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해외 반응들이 뜨거웠는데.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Prix Italia상에서 심사위원의 코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역사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현대적인 영화’라고 표현해 주셨다. 동양적인 영화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NHK 일본 기자들도 만났는데 어떤 분께서 확인되지 않은 사건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을 하더라.

영화 소재에 대해 반박하는 일본 관계자가 있었다니 그 당시의 분위기가 궁금하다.

영화제에 참석했던 시기가 우연히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이했던 해였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이나 참여하신 해외 분들이 “한국과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일이고 현재도 중동이나 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라고 말해주시더라. 영화를 보고 나서 우신 해외 관객도 많다. 현재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유럽으로 넘어오는 어린 소녀들 중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다 집단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그들도 영화를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진제공. (주)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처음부터 영화로도 제작될거라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들었는데.

방송하고 조금만 차이를 두거나 거의 같이 개봉을 하면 어떨까 하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방송과 영화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눈길'의 시나리오를 쓰신 유보라 작가님과 표현하고 싶은 정서나 디테일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고 편집에 있어서도 방송에는 1, 2부로 나눠서 나가야 했기에 어느 부분을 편집해야 하나 함께 고민했다. 영화에서는 영화적 느낌을 위해 편집에 힘썼다. 들어갔던 장면이 빠진 부분도 있고 풍경을 와이드로 표현해 방송보단 호흡을 더 여유 있게 줬다.

김새론, 김향기의 캐스팅이 탁월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김새론과 김향기로 생각하고 캐스팅을 원했다. 20살이 넘어가는 배우를 캐스팅했을 경우 다소 표현에 있어서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단 걱정을 했기에 김새론과 김향기를 캐스팅하고 나서 딱 맞는 배우를 찾았다 생각했다. 대본 리딩할 때도 흔쾌히 두 배우 모두 임해줘서 고마웠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많은 참고문헌이나 자료를 찾아보셨다 들었다.

준비과정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취재를 했다. 유보라 작가님도 시나리오의 디테일함을 위해 기록들을 많이 살펴봤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직접 쓰신 기록들이나 외국에서 발행한 서적들까지 두루 살펴봤다. 위안부에 관련한 영화 '낮은 목소리'나 연극 등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얻었다. 영상 자료원에서 1940년대에 만들어진 영상기록물을 보며 그 시절 소녀들이 실제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번 영화에서 일제 시대 아이들의 실제 모습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특히 소녀들의 생활 모습이 디테일하게 표현됐다. 두 소녀가 [소공녀] 책을 함께 읽는데 그 당시 실제 [소공녀] 책이 있었을까 싶었다.

실제 그 시절 아이들이 소공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박경리 선생님 초기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 당시 가난한 소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박경리 선생님 소설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소공녀] 책의 표지도 1940년대 표지에 맞춰서 고증을 한 것이다. '눈길'에서 함께 있던 소녀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 또한 할머니들께 여쭤보기도 했다. 최대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내고 싶었다.

영화 초반에 영애(김새론 분)의 일본학교 생활 모습이 나온다. 이 부분도 많은 참고 문헌을 살펴봤을 것 같다.

영애가 다니는 일본 학교 안에서는 한국말을 쓰지 못하는데 실제 그 당시에도 그랬다. 일본은 우리를 제2의 국민으로 생각했고 일본어를 가르치려 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지금 영어 잘하기를 원하듯이 영애처럼 일본어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교를 하면 그제야 조선말을 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일본어에 적응을 못한 종분이의 동생 같은 친구들은 학교에서 말을 잘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기록 중에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는지.

위안부에 한국 소녀들이 유독 어린 나이에 끌려갔다는 증언들이 있었다. 당시 다른 나라 위안부들의 기록 중 조선의 위안부들을 기억하길 그들끼리 모여 김치를 담가 먹었다거나 항상 옷을 하얗게 빨았다고 적혀져 있다. 왠지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 돼서 마음이 묘했다.

문소리, ‘똑, 똑, 똑’ 벽을 두드리는 소리, 베틀 짜는 소리 등 영화를 보면서 소리를 통해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 생각했다.

영화를 연출함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끔찍한 장면들을 재현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 영화를 볼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고 여성이 받는 폭력적인 장면을 하나하나 묘사하는 것 자체가 볼거리도 아니라 느꼈다. 다른 장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담담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섬세한 연출들이 여성 연출가이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표현의 방법을 많이 공부하려 노력했다. 아무래도 나이 어린 배우들과 함께 하는 영화였기에 폭력적인 장면의 경우 아역배우들과 촬영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가이드를 참고하기도 했다. 극중 피해자와 가해자를 최대한 한 공간에 있지 못하도록 했다. 위안소 복도를 촬영하는 씬에서 일본 군인들이 벨트를 막 풀고 웃으면서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현장에서 여성 스태프들은 연기조차 징그럽단 얘길 많이 했다. 그러나 남자 스태프들은 좀 표현이 약하지 않냐는 얘길 하더라. 받아들이는 부분에 있어서 다르게 반응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현장에서 최대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볼거리로 규정되지 않도록 연출하고자 했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사가 “내가 나를 속인다”라는 표현이었다. 그만큼 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아픔을 마음속에 숨기고 살아간다는 대사가 인상 깊었다. 이나정 감독이 뽑은 가장 인상 깊은 대사가 있나.

극중 할머니 대사에서 “나는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실제 중국 오지에 위안부에 끌려간 소녀들이 모여있을 때 누군가 한 명이 비소를 먹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죽은 친구에게 소녀 몇 명이 뛰어 들어가 죽었는지 심장소리를 들어보고 이불을 덮어주기도 했다더라. 소녀들이 혼자 있을 때는 끔찍한 상황이지만 종분이와 영애처럼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 같이 모여 서로 먹을 것도 챙겨주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그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크라우드 펀딩이 30분 만에 달성됐다고 들었다.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린다. 함께 진행했던 관계자들조차 놀랐다. 주변 지인들도 투자를 하려고 봤더니 이미 마감됐다고 놀라더라.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추가 이자가 발생하는 투자형 펀딩으로 수익금 일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기부될 예정이다.

영화가 상영된 후 앞으로 감독님께서 바빠지실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눈길'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지금 다시 보니 아쉬운 점도 있고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많이 우셨는데 그만큼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마음 깊이 공감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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