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사용설명서, 수백 가지 가능성을 상상하라.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판도라’ 사용설명서, 수백 가지 가능성을 상상하라.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 스타포커스
  • 승인 2017.01.1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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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강승휘 Photographer.강승휘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봉했다는 ‘판도라의 상자’. 박정우 감독이 지진 발생, 원전 사고를 소재로 재난 영화를 제작한 이유는 우리에게 단지 판도라가 열릴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니다. 판도라의 사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심하라는 것이 아닐까.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판도라'를 기획했다는 박정우 감독의 인터뷰에 집중해보자.

영화 제목을 ‘판도라’라고 지은 이유가 궁금한데.

‘판도라’에 대한 나의 지식은 보통 사람들 수준이지 않았을까 싶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재앙이 되어 열면 안 된다는 얘기 말이다. 딱 그 정도 의미로 생각하고 정했다. 그래도 감독은 구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기에 그리스 신화를 살펴봤다. 그런데 재앙이나 불행만 나오는 것이 아닌 마지막에 희망도 있더라. 나는 이 영화가 겁만 주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길 바랐다. 엔딩의 마무리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뉘앙스를 풍기길 원한다.

영화 '연가시'를 찍는 도중에 이번 시나리오가 생각났다던데.

'연가시'를 제작할 때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힘들게 촬영했다. 그렇기에 '연가시'가 잘 돼서 다른 재난 영화를 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단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연가시'가 반응이 좋아서 발판이 되어 있는 차에 영화 '판도라'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놓기 시작했다.

실제로 '판도라'에서처럼 경주 지진도 일어났고, 여러모로 시기적으로 들어맞는 내용이 많다.

원전 사고 원인 중에 지진은 수백 가지 가능성 중 하나다. 전력상실, 쓰나미 침수, 결함에 의한 원인 등 다양하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몇백 년 주기로 큰 지진들이 일어났던 경력이 있어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과연 지진이 일어나면 구조물이 견딜 수가 있겠나’란 생각에 원인을 지진으로 설정했다. 근데 실제로 지진이 일어났다. 혹자는 영화 홍보에 어마어마한 도움을 줬겠다란 말을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런 가능성들을 설정했는데 진짜 사실처럼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겁이 났다. 이제는 오늘 당장 사고가 나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자주 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사실 속상하다.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정권이나 사회를 비판하려는 영화가 아니라 원전에 대한 이야기다. 전국적 재난의 상황이기에 컨트롤 타워가 청와대로 설정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을 인성도 좋고 국민들 목숨 소중한 것도 아는 휴머니즘적인 사람으로 그려 넣고 싶었다. 권력의 싸움에서 무능하게 돼 버렸어도 자기 위치를 찾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자꾸 정치적인 부분 때문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집중이 흩어지는 것 같다. 오히려 언급을 피하기 위해 몇몇 대사들을 편집하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소 안을 촬영하기 위해 필리핀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이번에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현장감과 사실감 확보다. ‘원자력 발전소 안을 빌려서 찍었나 보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제처럼 꾸미고 싶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정보들을 최대한 모았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 원전에 근무하고 계신 분들 등 많은 조언을 구했다. 실제로 운영만 안되고 있을 뿐, 우리나라 발전소와 똑같이 만들어 놓은 필리핀 원자력 발전소에 가서 촬영을 했다. 필리핀 원자력 발전소는 가동을 안 했을 뿐이지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던 기술진들이 똑같이 만들어 냈다.

마지막 장면이 아쉽다는 평이 있다. 장면이 좀 짧았으면 좋겠단 의견도 있었는데.

장면을 좀 줄여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장면이 정말 중요하다. 만약 내가 '판도라'를 성공적으로 잘 이끌어 왔다면 그 장면에서 재혁이 나일수도 있다는 감정이입을 관객들이 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왜 우리는 국가의 보호를 못 받고, 국가는 왜 우리를 못 지켜주는지에 대한 생각 말이다. 영화 엔딩에서 오는 감정들. 슬픔과 분노가 같이 촉발됐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짧게 편집을 해보려 했는데 그 느낌이 살지 않더라.

이번에 주연을 맡은 김남길의 연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김남길이 기존에 맡은 이미지가 있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누구나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청년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의 연기에 만족한다. 이 영화를 하면서 김남길에게 해줬던 얘기가 있다. '판도라'가 나와서 혹시나 결과가 안 좋더라도 김남길과 김주현, 둘의 연기는 살 것이라고 말이다. ‘김남길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이렇게 하는 배우였어?’라는 얘기를 듣게 만들고 싶었다. 현장에서 나조차 그의 연기에 놀랄 때가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면?

'판도라'에서 첫 번째 나의 승부처는 아침 출근길이다. 풀샷으로 보이는 원전 전경. 이 장면에서 원전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란 사실감을 확보해야 나중 이야기들이 어색해지지 않는다. 만약 여기서 엉성하게 보이면 다들 원전에 대한 얘기를 믿지 않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 승부처는 폭파 직후의 상황들이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보고 감독인 나도 ‘억’소리가 나오더라. 나조차 그랬는데 관객들은 더 세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이 장면에서는 겁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지옥도 같은 모습이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개인적으로 영화가 완성이 돼서 정상적으로 개봉한 것만으로도 나름 소위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판도라'는 영웅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계기로 원전의 위험에 대해 사람들이 인지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늦었다.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고민을 해 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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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강 2017-01-15 02:56:18
판도라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