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실밥이 "툭툭" 터져나갈 때, 연극 "톡톡"
마음 속 실밥이 "툭툭" 터져나갈 때, 연극 "톡톡"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2.20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c%97%b0%ea%b7%b9%ec%97%b4%ec%a0%846_%ed%86%a1%ed%86%a1_%eb%a9%94%ec%9d%b8%ed%8f%ac%ec%8a%a4%ed%84%b0_blue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이 고안한 장르인 '블랙 코미디'를 처음 봤을 때 당혹스러웠던 감정이 떠오른다. 슬픈 상황인데 배우들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오히려 웃게 만드는 경우. 슬퍼해야 할지, 즐거워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순간이 일상에도 있다. 연극 '톡톡'을 관람하는 동안 많은 관객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생생한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손색없는 무대였다. 그런데 마냥 웃을 수만 없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에 이 연극의 묘미가 담겨 있다.

'톡톡'은 한 문장에 한두 번 정도는 꼭 욕을 하는 '뚜렛증후군' 환자(편의상 이렇게 표현하기로 하자) 프레드, 계산벽이 있는 택시기사 벵상, 질병공포증 때문에 옷도, 가방도, 구두도 모두 흰색인 블랑슈, 확인강박증에 시달리는 마리, 동어강박증 환자 릴리, 선(線)을 밟으면 기절해버리는 밥이 스텐 박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모인다는 내용이다. 원작자는 이들이 자신들의 기대처럼 순순히 치료받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아웅다웅하게 만든다. 그러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게임을 하며 서로를 알아 가고,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점까지 극을 끌어간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제목처럼 '톡톡' 튀는 설정으로 무장한 캐릭터들의 치부 아닌 치부를 까발리고 있는데 정작 그들은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공감. 그 안에서 이 여섯 명은 데칼코마니처럼 어우러진다. 남들이 봤을 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들이지만, 이들의 조합은 최소한 스탠 박사의 응접실 안에서는 탁월한 균형을 이룬다. 벵상이 무의식적으로 숫자를 나열하기 시작하면 프레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욕설을 내뱉는다. 주님을 부르짖으며 호들갑을 떠는 마리를 보며 릴리는 같은 말을 두 번씩 되풀이하며 침착하게 안정시킨다. 그 와중에도 밥은 선을 밟는 것이 두려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고, 블랑슈는 분 단위로 화장실을 드나들며 손을 씻는다. 극중 벵상의 말처럼 '참 볼 만한' 광경이다.

2005년 파리에서 첫 공연한 이후 십년 넘게 롱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연 당시에 생소할 수 있는 증상들을 이제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 비극이지만 그래서 강점으로도 작용한다. 무대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당신 혼자만은 아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느낌이 든다. 직설적으로 위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감추고 싶었던 부끄러움을 명쾌하게 털어놓는 방식에서 가늠할 수 없는 연대가 형성된다.

interpark_com_20161124_112925많은 사람들이 '톡톡'의 재기 넘치는 발랄함과 특유의 활력에 많이 공감한다. 분명 '톡톡'은 유쾌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그 웃음에 비례하는 비애감도 담고 있다. 조명이나 음악에 의존해 그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로 희비극을 넘나든다. 배우들은 이 복잡한 캐릭터들을 넘치지도, 부족함도 없이 알맞게 가열된 온도로 전달한다. 특히 릴리 역을 맡은 이진희의 연기는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느라 다른 배역에 비해 대사량이 적어서 편했다는 그녀는 꼭 하고 싶은 작품이어서 뮤지컬 '그날들'과 병행하는 초강수를 감내하면서까지 '톡톡'에 참여했다. 릴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동어반복증을 앓게 되었다. 아버지의 유언이 가시처럼 박혀서 목젖을 막아버린 셈이다. 릴리는 겉모습만 보면 수줍음 많고 정적인 여성이지만 이 극에서 가장 깊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다른 인물들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 자신의 존재감이 묻혀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진희는 릴리가 느끼는 감정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적절히 완급조절을 하며 치고 빠지는 순간을 잘 포착할 줄 아는 영민한 배우다. 밥과 함께 할 때 릴리의 캐릭터는 더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처음에는 다소 희미하게 느껴졌던 릴리의 아픔과 결핍이 중첩되는 곳은 밥의 눈빛 속에서다.

릴리의 동어반복증 치료에 도움을 준 것은 밥의 애정이다. 이 커플을 보면 서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이고, 그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주 자그마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 밥은 선에 갇혀 있으면서도 릴리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릴리 역시 자신이 앵무새처럼 말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간다. 아주 깊은 상처는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만 아물 수 있는 법이다. 연극 ‘톡톡’은 그렇게 관객의 마음 한 구석을 채워준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