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12.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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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_image6z5r2jk8올해 상반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세 편이 동시 상영되면서 극장가에 이변을 일으켰다.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란 극찬을 받은 영화 '환상의 빛'과 '2010년 아시안 필름 어워드' 최우수 감독상 수상작인 '걸어도 걸어도'는 재개봉했다. 그의 신작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개봉을 기념해서 기획되었다. 현재까지도 좋은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몰이 중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소설가이자 사설탐정인 료타(아베 히로시 분)가 주인공인 영화다. 현재 아내 쿄코(마키 요코 분)와 이혼한 뒤, 근근이 밥벌이를 하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 분)와 작가로 명성을 얻는 일이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밤을 배경으로 어머니 요시코(키키 기린 분)의 집에 모처럼 흩어져 있던 세 가족이 모인다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여러 에피소드들이 수렴되는 구성이다.

어머니 요시코를 맡아 열연한 '일본 국민 엄마' 키키 기린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절반의 성공을 담보로 한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에게 하는 말들은 모두 주옥 같다. "어느 하나를 놓아버려야 행복이 온다." "사라진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비유적으로 세상사를 표현하는 화법은 관객의 마음에 고즈넉한 반향을 일으킨다. 노랑나비를 보며 "저런 나비는 겨울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저렇게 된 거야"라는 대사나, 베란다에 있는 화분을 보며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분명히 이것도 다 쓸모가 있다"는 말로 아들을 위로하는 장면에서는 연기 장인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를 연기해 국내에서도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고바야시 사토미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movie_imagemxarp0g8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라는 '알'을 가장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둥지'를 만드는데 탁월하다. 이번 신작을 계기로 방한한 그는 'JTBC 뉴스룸 대중문화초대석'에 나와 현재 일본 사회에는 관용이 없다고 했다. 혐오 발언을 예로 들면서 약자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영화감독의 일이라고 밝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소신 발언대로 작품들을 제작했다. '제57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최연소로 받은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 두 편의 작품들만으로도 증명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에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가족 영화'의 범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는 어른도 더 큰 존재로 성장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아이에서 청년으로, 그 청년이 아버지로, 그 아버지가 나이 들어 자신의 아들을 이해할 나이가 되는 과정으로 외연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자신의 '마지막 가족 영화'라고 한 점은 이 영화에서 그 동안 자신이 해온 것들을 모두 보여주었기 때문이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어쩔 수 없이 한 집에 있어야만 하는 해체된 가족들의 모습은 짠하다. 그 와중에 바람 속을 걸어가 놀이터 미끄럼틀 안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와 아들. 뒤늦게 합류해 같이 과자를 먹는 세 식구의 모습은 그 자체로 빛난다.

누구에게나 집은 가장 아늑한 공간이다. 굳이 태풍이 아니어도 여러 가지 시련을 겪었을 가족들. 예기치 않게 한 자리에 모여 어색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장면은 팍팍한 일본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삶은 비오고 바람 부는 것처럼 돌변하는 것임을, 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시절이 지나가야만 평온한 날이 오니 기다리라고 다독이는 따뜻한 말 한 마디처럼.

movie_imagec8sn1t1d어쩌면 각박한 일본의 한 연립주택 놀이터에 있는 문어 모양의 우스꽝스런 미끄럼틀 안이, 그들에게는 천국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싱고를 잃고 싶지 않아 야구화를 선물하는 료타. 야구화를 사주고 싶지만 당장 돈이 없다. 일부러 긁힌 자국을 내서 값을 깎아 사서 건네준다. 자신은 물로 목을 축이며 어린 아들이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잔상은 익숙하지만 매번 가슴을 울린다.

고경태 kkt1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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