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재용" 감독
100세 시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재용" 감독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9.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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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p_9356 <사진제공=박호 photographer>

윤여정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영화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을 만났다. 인터뷰 분위기가 진중할 것이라 예상했던 바와는 다르게 여유 있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깊이 있는 주제들을 다뤘지만 덤덤하게 풀어낸 '죽여주는 여자'의 숨은 해석이 궁금하다면 인터뷰를 탐독해보자.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봤다면 이재용 감독의 인터뷰에 집중해보길 바란다.

이재용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영화 '죽여주는 영화'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탔다. 처음엔 배우 윤여정의 연기에 호기심을 갖던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재용 감독이 던진 메시지에 많은 공감을 느꼈다. 노인 문제와 소수자들의 삶을 다룬 '죽여주는 여자'가 다소 익숙하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영화를 만든 이재용 감독에게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위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한 이재용 감독이 '죽여주는 여자'를 통해 어떤 문제를 화두에 던지고 싶었는지 인터뷰에서 밝혔다. "'죽여주는 여자'는 현시대의 한국을 기록한 타임캡슐 같은 영화입니다. 관객들이 세월이 지나도 이 영화를 보면 현재를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죽여주는 여자'의 제목이 중의적으로 표현되었어요. 외국에서는 'The Bacchus lady'로 번역됐는데요. 번역된 제목이 영화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조금 아쉽진 않으세요?

'죽여주는 여자'의 제목은 주위의 반대가 많았던 제목입니다. 고상한 제목은 아니니까요. 결과적으로 영화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적합했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외국에 나갔을 때는 이만큼 적합한 제목이 없더군요. 외국 저널에서는 저희 영화를 '박카스 레이디'로 해석합니다. 알 만한 사람은 알 수 있지만 일반 외국인들은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할 순 없지요. 저는 그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제목을 보고 '박카스 레이디가 뭘까'라는 의문 정도만 가져도 상관없습니다. 나중에 제가 '박카스는 한국에서 국민 음료수로 통한다'라고 설명한다면 충분히 그들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의 첫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카메라가 맨 처음에 하늘을 보여주고 다음엔 땅을 보여주는데요. 이러한 장면을 구상한 의도가 있으세요?

영화의 도입부에 옛날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면을 심플하게 표현했어요. 첫 장면은 소영(윤여정 분)이 하늘을 보는 장면인데 영화 중반부에 그녀가 성매매를 하면서 바라보는 하늘과 대비시키고 싶었어요. 장면들을 통해 들꽃 같은 여자인 소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죠. 첫 장면은 어찌 보면 그냥 지나쳐갈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나중에 연결되는 장면으로 집어넣고자 노력했습니다.

소영의 옆방 청년 도훈 역을 윤계상 씨가 열연하셨는데요. 특히 '마침 단백질이 필요했는데'라는 대사가 영화에서 가장 코믹하게 다가왔어요. 이런 도훈의 캐릭터를 처음부터 의도 하셨나요?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 장애인, 코피노 등 소수계층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래서 다소 '죽여주는 여자'가 무겁게 느껴지기보다는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였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온기도 있고, 블랙 유머도 있는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랐죠. 마침 도훈의 캐릭터로 인해 영화의 진지한 분위기가 환기되는 것 같아 탁월한 캐스팅이었다고 만족합니다. 처음엔 도훈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인을 캐스팅할까 고민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백 번 잘했단 생각이 드네요.

티나 역(안아주 분)을 캐스팅할 때 고민이 많으셨다고 들었어요.

다들 진짜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연기를 하는 배우를 캐스팅하길 바랐죠. "중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여자배우를 해라", "남자 중에 선이 고운 사람을 찾아봐라" 등 다양한 의견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배우를 원하지 않았어요. 확실히 긴장감이 떨어지더군요. 몇몇 배우들의 오디션을 봤는데 여배우들은 전혀 몰입도가 떨어졌어요. 남자 배우들은 전형적인 연기를 하더군요. 트랜스젠더를 흉내만 내는 거죠. 사실 제 목적은 나이 든 트랜스젠더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오디션보단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마침 안아주 씨를 추천받았는데 사진을 보고 느낌이 좋았어요. 연기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잘 해주었습니다. 그녀의 삶이 녹아났다고나 할까요.

php_9317 <사진제공=박호 photographer>

코피노 소년 민호(최현준 분)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현재 우리나라에 코피노 수가 3만 명가량이에요. 민호 같은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거죠. 그런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얘기를 풀어 넣고 싶었어요. 소영이 민호를 돌보려 했던 이유를 다들 궁금해하시던데 소영은 자식을 버린 어미로 나와요.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았죠. 그렇기에 민호가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본능적으로 돕고 싶었을 거예요. 평소에도 그녀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있어요. 민호와 소영이 함께하는 장면을 통해 평생을 수동적으로 살아온 그녀가 한편으론 선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했어요.

윤여정 선생님과의 호흡이 돋보였던 영화였어요. 특히 윤여정 선생님이 치킨을 계산하면서 던지는 농담이 인상 깊었어요.

"계산해 줄 것도 아닌데 뭘 도와준대"라는 대사 말이죠? 그 대사와 비슷한 표현을 제가 평소에 농담 삼아 자주 해요. 가끔 레스토랑에 가면 "테이블 치우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참 아이러니한 대답이라 생각했죠. 그런 상황을 영화 속에서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윤여정 선생님과 제가 자주 만나기에 서로의 유머 코드를 잘 알아요. 그래서 평소 윤여정 선생님의 성격과 대사가 영화와 잘 맞아떨어져서 재밌게 표현된 것 같아요.

함께 사는 그들이 임진각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 장소로 '임진각'을 선택한 까닭이 있으세요?

소영은 어찌 됐건 사람을 죽였기에 자신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 생각했을 거예요. 이미 자신이 감옥에 갈 수 있을 거라 직감한 거죠. 영화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그녀는 3.8따라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놀러 가서 자신의 고향이 보이는 곳에 가보고 싶었던 거예요.

소영은 양로원보다는 교도소를 택해요. 이러한 결말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소영이 교도소를 택한 이유는 경찰차에 앉아 소영이 했던 말에 집중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거기 가면 세끼 밥은 먹여주겠죠." 감옥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원래는 마지막 결말이 달랐습니다. 소영이 경찰차에 오르고 담배를 피우며 끝나는 결말이었는데 수정되었어요. 교도소에 들어간 소영은 에필로그로 찍어 놓은 것인데 그 모습을 고민 끝에 결말로 정했죠. 마지막을 소영이 프랑스 여배우처럼 세련되게 끝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소영은 그런 여자가 아니잖아요. 그녀의 삶을 바라봤을 때 비록 그녀가 남과 다름을 강조해보려는 삶을 살았지만 실상은 몸을 팔고, 식모살이를 하며, 공순이로 비루하게 살았죠. 그런 그녀의 마지막 결말이 더 쓸쓸해 보이길 바랐습니다.

영화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노인들이 나오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영화를 포기할까 생각도 해본 적 있어요. 이러한 상황의 뉴스가 요즘 자주 언급되잖아요. 노부부가 같이 죽음을 선택했다든지, 자식이 치매노인을 죽인 사건이라든지요. 저는 이런 결론으로 가지 않도록 노인들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었어요. 웰 다잉(well dying)이란 메시지를 관객에게 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계기로 시한폭탄처럼 터질지 모르는 노인들의 문제를 가지고 사회가 뭔가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실 지금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이 이미 늦었는지도 몰라요. 이미 예전부터 문제의식을 가져야 했지 않나 싶어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줬으면 하시나요.

'죽여주는 여자'는 영화가 섬세하고 디테일해서 곳곳에 사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야기 자체가 무거운 감이 있어 관객들이 보고 재밌어할 수 있는 요소를 집어넣고자 노력했어요. 계속 영화를 보다 보면 작은 요소들을 숨겨놓았기에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시대의 다양한 이슈를 집어넣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저는 2015년 11월의 한국을 기록한 타임캡슐 같단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지나도 영화를 볼 때마다 '저 시대에 저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관객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역사의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촬영했습니다. 그렇지만 한상균 위원장의 모습은 예측을 하고 영화에 삽입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촬영 날짜에 맞춰진 우연이지요.

php_9194 <사진제공=박호 photographer>

이번 영화가 '죽여주게'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쉬운 부분은 없으실까요?

영화를 찍고 나면 늘 아쉽습니다. 다음번엔 진짜 잘해야지 하면서도 막상 쉽지는 않죠. 이번 영화는 제 영화들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입니다. 실제로도 못하겠다고 프로듀서한테 선언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주위의 도움으로 이렇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때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영화의 마무리를 잘했단 생각에 안도했습니다. 좋은 배우들과 함께 일했기에 '내가 배우운이 좋은 감독이구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기회라도 가져서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김서해 free70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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