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향한 일침, 영화 ‘4등’ 정지우 감독
사회를 향한 일침, 영화 ‘4등’ 정지우 감독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9.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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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과 ‘동주’가 다양성 영화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보편타당한 정의’를 화두로 꺼냈고 관객은 열광했다. 이어 올해 세 번째 기대작이 온다. 영화 ‘4등’이 특별한 소재로 스크린을 두드린다. 정지우 감독은 ‘4등’에서 ‘스포츠계 군기폭력’을 건드렸다.

정지우 감독 작품은 겹치는 듯 겹치지 않는다. 특정 장르에 몰방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정 감독은 ‘없었던 것’을 추구한다. ‘해피엔드’ ‘은교’를 만들었던 사람이 ‘4등’을 우리에게 툭 던졌다. 상업영화 틈바구니에서 ‘작은 영화’로 분류된 ‘4등’ 말이다. 스타포커스는 정 감독이 밝히는 ‘4등’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photographer.이명수 photographer.이명수

영화 ‘4이 대작과 맞붙는다. 솔직한 심경이 궁금하다.

한 나라의 영화시장에 ‘블록버스터 영화’만 있으면 될까. 다양한 규모의 영화가, 안정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형태로 관객과 만나길 바란다. 거꾸로 말하면 영화 ‘4등’이 잘 버텨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면 순정한 상태가 된다.(영화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로 제작됐다) 다른 것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순정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고, 제작 과정을 통해 기력을 회복한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기분’이 든다. 영화 제작은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만, 기운이 생기고 힘이 난다.

올해 초 작은 영화귀향’ ‘동주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올바른 것을 앞세운 작은 영화의 선전, 부담스럽지 않은가.

스크린의 다양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큰 예산을 갖고 스타 배우가 전면에 나선 작품, 상업적 쾌감을 중심에 놓는 영화가 있다면, 다른 영화도 필요하다. ‘만든 사람’ 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득하게 전하는 영화 말이다. ‘귀향’ ‘동주’와 ‘4등’처럼 메시지를 진하게 표현하는 영화 말이다. 이런 영화가 안정적으로 관객과 만나길 바란다. 특히 영화 속 ‘정의로운 소재’는 소중하다. ‘정의가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더 만들고 싶다.

영화 ‘4에서 광수 역에 박해준을 캐스팅했다. 캐스팅한 이유는.

영화 ‘화차’에서 사채업자로 출연한 모습을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어휴, 저 사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라. 진짜 무시무시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화차’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다. 막상 만나니까 ‘그렇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배우 박해준은 여러 갈래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박해준은 영화 ‘4등’의 광수와 정말 잘 어울린다. 광수는 겉으로 거칠고 폭력적이지만 내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 아이의 재능을 한 번에 간파하는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다. 박해준의 이미지와 광수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수영선수 비주얼을 유념했을 것 같다.

물론 비주얼도 고려했다. 수영선수다운 체격 아닌가. 보통 사람 기럭지는 확실히 아니다.

박해준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정가람도 눈에 띈다. 흑백 화면으로 봐도 박해준과 외모가 비슷했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감성이 좋은 배우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박해준과 정말 닮았더라. 정가람의 출연분량은 흑백화면으로 처리했다. 정가람이 맞는 장면, 유재상(준호)이 맞는 장면을 연결하고자 했다. 흑백 체벌 장면이 ‘씨앗’임을 얘기하고 싶었다.

영화 ‘4은 스포츠계의 체벌을 다뤘다. 그런데 뉴스와는 사뭇 다르다. 보통 접하는 뇌물수수, 폭력, 부정행위 등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박해준이 비리의 영역까지 발을 담그면, 연민을 잃을 것 같다. 조금 더 영역을 좁혀도, 폭력 문제로도 얘기할 문제가 많다. 영화 ‘4등’의 출발점은 엘리트 스포츠의 관료가 아니었다. 스포츠행정가가 직업인 사람들, 그런 얘기는 처음부터 포함하지 않았다.

코치 박해준과 유재상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에 주안점을 두셨다. 계속 4등만 하는 유재상이 박해준에게 맞으면서 거의 1을 한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이 없다. 우선 유재상의 동생 서환희(기호)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서환희가 “맞아서 2등한 거야?”라고 물으면서 상황이 바뀐다. 형에게 쩔쩔 맨다. 엄마인 이항나(정애)에 의해 학원에 끌려가는 장면이 재미있다. 이항나의 뒤를 따르며 터덜터덜 걷는 앵글이 마음에 든다(웃음). 서환희는 운동하는 형제, 자매를 둔 아이를 투영했다. 서환희는 한참 어린 동생이지만, 운동하는 형 때문에 의젓하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엄마에게 운동하는 형이 먼저 아닌가.

최무성(영훈)도 변한다. 박해준이 피해자일 때 묵인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되니 전형적인 학부형이 됐다.

최무성은 현재 아버지상에 가깝다. 요즘 속된 말로 치면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집착, 할아버지의 재력이 손주를 키우는 적합한 환경이다’라고 하지 않은가. 박해준의 구타 사실을 알고, 해결하고자 나섰다. 그런데 ‘아버지가 가진 한계’로 해결하려고 했다. 본질적 해결, 뿌리째 뽑는 방법이 아니었다. ‘부모의 약함’이거나 ‘비겁함’같다. 우리 중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박해준 처지에서 보면 최무성이 이상했을 것 같다.

과거에 최무성은 박해준에게 “니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최무성에게 “유재상이 폭행당한 것은 왜 다르게 대응하냐?”고 물으면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것을 ‘일상적으로’행하고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박해준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박해준이 유재상에게 악한 감정을 품은 것 같지 않다.

유재상이 박해준의 폭력을 피해 수영장에서 잠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박해준은 그 찰나, 유재상의 재능을 간파하고 급히 부른다. 그러나 이미 유재상은 도망간 뒤다. 오죽 급하면 수영복을 입은 채로 달아난다. 자신의 훈련방식, 즉 폭행을 거부한 것과는 별개로 유재상을 응원한다. 에피소드인데 박해준은 유재상이 수영할 때 열과 성을 다해 기합을 넣는다. 나중에 목소리가 안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독으로 미안했다.

유재상이 맞는 장면이 많은데 실제 부모님 걱정이 컸을 것 같다.

박해준이 유재상을 때리는 장면은 정말 꼼꼼하게 상의했다. 유재상이 수영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께서 흔쾌히 촬영을 승낙해 주셨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 예컨대 안전장비나 보호대를 만들 때 최선을 다했다.

유재상의 천부적 기질, ‘4의 주제가 잘 드러난 공간이 수영장, 레일이다.

유재상이 레일을 걷은 수영장에서 몰래 수영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촬영할 때 레일이 없는 수영장은 엄격하지 않았다. 경험담인데, 레일을 걷은 상태로 첨벙거리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다. ‘레일이 있으면 경쟁만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장’이란 공간은 달라지지 않는데, 레일이 처지면 경쟁해서 1등을 해야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 유재상이 수영할 때 비치는 레일을 ‘우주선’으로 만들고 싶었다. 수영장 속 물이 팩트지만, 우주처럼 보이길 바랐다. 유영해서 수영장 곳곳을 누비는 모습, 레일에 갇혀 수영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렸다.

영화 ‘4의 포스터야말로 환상적이다.

제가 직접 구상한 디자인은 아닌데, 정말 좋았다. 유재상의 눈에 기포처럼 얹어진 모습, 대부분 NG라고 여기는 모습일 테다. 그런데 이 기포가 사람 눈처럼 ‘반달 모양’이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유재상, 그 기분이 너무 선명하더라. 포스터 한 장이 ‘많은 것을 설명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박해준이 유재상을 위해 큰 결심을 한다. 유재상의 성장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 행복을 느끼는 일을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승부’를 보고 빨리 ‘정답’을 맞히는 것에 훈련됐다. 시간을 써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인색한 것 같다. 유재상은 수영을 정말 좋아하고, 좋아하는 방식의 훈련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이 다사다난하다. 성공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모두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떠나서 ‘진정 나에게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소중하다. 필수불가결하게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데, 시간을 들이면서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기다리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기다려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다.

상업영화가 아닌 작은 영화로 컴백했다. 상업영화의 반대 개념으로 다양성 영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양성 영화란 말 자체에 호감을 갖지 않는 분도 계신다.

우리가 통상 써왔던 ‘작가 영화’, ‘아트 영화’등의 개념이 있다. ‘다양성 영화’가 마치 영화를 ‘대상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양성 영화’가 ‘금 바깥에 있는 것’을 뜻하는지 궁금하다.

선배 감독으로 여러 영화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영화계에서 꿈을 키우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아직 내가 영향력이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나이로 치자면 중간 이상이 된 감독이다. 내 나이가 50대를 바라보니 중간 이상에 해당한다. 아직 다섯 편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이런 책임감이 있다. ‘선배가 포기하지 않고 생생한 기분을 갖고 영화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것. 내게 그런 무게가 있다.

오현지 email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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