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성 감독으로 살아가는 일. 감독 "이은희"
대한민국에서 여성 감독으로 살아가는 일. 감독 "이은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8.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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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이명수 Photographer. 이명수

올해 초 여성감독 작품이 ‘멜로’코드로 스크린을 두드렸다. 이윤정 감독의 ‘나를 잊지 말아요’, 박현진 감독의 ‘좋아해줘’, 이은희 감독의 ‘순정’이 공교롭게도 ‘사랑’을 택했다. 남남케미-블록버스터가 점령한 영화 시장에 ‘여성 감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 호부터 스타포커스는 감독에게 ‘영화계 이슈’를 듣는 코너를 마련했다. 첫 시간으로 올해 영화 ‘순정’으로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이은희 감독을 만났다. ‘멜로’를 선택한 ‘여성 감독’이은희는 ‘여성’이기 전에 ‘영화인’이었다.

데뷔 과정이 궁금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때 멜로 시나리오를 쓰면 주변에서 “그러면 데뷔 못 한다”고 말리더라. 그래서 다른 장르를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 시간이 흘러 36살이 됐을 때 ‘한풀이하듯’멜로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의 멜로 시나리오로 ㈜주피터필름과 인연이 됐고, '순정‘ 각색 및 감독을 맡게 됐다.

도경수(엑소 디오)의 첫 주연작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순정'에서 도경수가 주인공 범실 역을 맡았다. 나에겐 최정상 아이돌그룹 엑소 멤버가 아니다. 감성이 풍부한 연기자 도경수다. 여담이지만, 전남 고흥에서 배우 도경수로 만나다가 방송으로 보니 조금 어색했다. 배우 도경수와 엑소 디오가 다르게 느껴졌다.

도경수와 김소현이 영화 '순정'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인데, ‘멜로 요소’를 매력적으로 느낀 것 같다. 17살 캐릭터가 ‘인스턴트식 사랑’이 아닌 진한 사랑을 전한다. 지금 나이 때가 아니라면 다시는 못할 연기 아닐까. 영화 '순정'에는 ‘그 나이’에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첫 스크린 데뷔작 '순정'에 대해 여러 의견을 들었을 텐데.

나는 배우 도경수가 지닌 에너지를 믿었다. 배우 도경수가 갖고 있는 능력을 장점으로 봐주시길 바랐다. 아이돌그룹 출신 배우에 대한 편견이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또한 영화 '순정'을 도경수-김소현(범실-수옥)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는 분이 계셔서 안타깝다. 영화 '순정'에서 ‘멜로’를 빼면 0이 아니다. ‘묵직한 드라마’가 남는다.

Photographer. 이명수 Photographer. 이명수

'순정'이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여성 감독의 선입견과 맞닿아있지 않나.

마치 여성 감독이 할 수 있는 얘기는 ‘이런 것밖에 없다’고 보일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필모그래피에 '순정'을 데뷔작으로 올려도 되는지 고민했다. 나는 '순정'을 멜로가 아닌 드라마로 풀고 싶었다. 이다윗(개덕), 주다영(길자), 연준석(산돌)을 주체적 캐릭터로 살렸다. 오랫동안 추억을 간직하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 동력을 첫사랑으로 설정했을 뿐이다. 그래서 '순정'은 ‘우정’이 강한 ‘드라마’다.

여성으로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인 성 역할이 영화계에서도 존재하는가.

하긴 ‘남배우’란 말은 없는데 ‘여배우’란 말은 있다. ‘남성감독특집’은 없는데 ‘여성감독특집’은 있더라. 이것을 ‘고정된 성 역할’에서 파생된 편견으로 보지 않는다. ‘흔하지 않는 경우의 수’라고 본다.

촬영 현장에서 여성’ ‘남성의 차이가 있나.

나를 감독으로 생각하지, ‘여성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더라. 딱 이런 차이다. “내가 여성이라서 편하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촬영장에서 ‘내가 여성이다’라고 체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웃음).

그렇다면 충무로의 유리벽’, 여성이라서 반론을 펴고 싶은 주제가 있는가.

나만 보더라도 다른 남성 감독과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여성 감독도 ‘현장밥’을 먹는다. 나는 막내 스태프, 인물 조감독(배우 스케줄 조정, 오디션 준비), 스크립터 등을 하며 현장 경험을 익혔다. 결혼 후에도 매년 한 작품씩 연출부로 활동했다. 연출부로 일하면서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감독 중에는 글과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경우, 현장 경험을 쌓는 경우가 있다.

최근 충무로에서 여배우 기근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여성 감독 이슈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 같다. 최근 황석정 배우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여배우는 갈 데가 없다고 했다.

우선 영화 '순정'에서 황석정 배우가 개덕모 역으로 출연했다. 감독으로 맛깔난 연기를 해주셔서 고마웠다. '순정'에서 개덕모를 통해 황석정 연기가 빛난 것 같아 기쁘다.

이렇게 황석정 배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말 여배우가 빛나는 영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황석정 배우를 만났을 때 나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그때 마치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인물조감독을 할 때 황석정 배우가 오디션을 보러 왔다. 황석정 배우가 나에게 “여배우는 버텨도 기회가 안 오더라. 역할이 없더라. 여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써달라”고 하소연했다. 일리가 있는 말 아닌가. 그래서 나는 “배우가 상을 받는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배우 기근현상은)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멜로 영화를 전망해 달라.

‘멜로 영화’는 승부사가 될 수 있다. 복합장르 안에서 잘 녹여내 접점을 찾아내면 된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나도 늘 고민하고 있다. 아마 관객은 섬세한 멜로와 서사의 접점을 찾는 것 같다. 단단한 서사와 멜로를 잘 엮는 것이 나를 비롯해 많은 감독에게 주어진 숙제다.

그렇다면 영화 '순정'은 복합장르로 느껴진다.

'순정'은 ‘우정’이라는 강력한 드라마에 ‘멜로’를 얹은 것이다. 네 명의 친구, 그들은 23년 뒤에 다시 ‘그 시절’로 돌아온다. 멜로에 서사를 덧붙인 것이 '순정'의 차별성이라고 하겠다.

일부 멜로 영화는 사랑과 가정을 정반대 개념으로 여긴다.

조심스러운 언급이다. 꼭 ‘일부’라고 명시해 달라. ‘일부 감독’은 남녀 간 멜로를 ‘가정’으로 귀결시킨다. 그분 시각에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족 시스템’안에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진짜 행복’이라고 정의하는 것 같다. ‘사랑한다는 행위’가 다 용서하거나 면죄부가 되는 셈인데, 관객이 바라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순정'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을 선정한다면.

'순정'의 사랑은 타협하지 않는다. 결정적 순간에서 ‘사랑한다’는 이유로 훅훅 넘어가지 않는다. ‘사랑’은 ‘서사’를 둔하게 만들기 쉽다. 둔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찍었다.

'순정'에서 도경수가 김소현에게 “어딜 쏘다니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김소현이 보건소에 다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 김소현이 진심을 몰라줘서 서운한 표정, 그래도 김소현 미소에 녹아내린 모습이 다 담겨 있다. 섬세하게 연출하고자 애쓴 장면 중 하나다.

또 하나, '순정'은 멜로 요소를 지닌 ‘상업 영화’다. 영화를 발신하는 사람(감독)은 첫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OST, 색감을 고민한다.

올해 여성 감독은 멜로에 쏠렸지만 지난해 노덕 감독의 '특종: 량첸살인기'가 주목받았다. ‘특종: 량첸살인기여성 감독의 스릴러. 그래서 세간의 기대가 컸다.

노덕 감독의 '특종: 량첸살인기'를 보니 ‘다층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스릴러이지만 코미디처럼 웃기고 정극도 아니다. 조정석(허무혁)은 진실과 싸우지만, 개인의 변화로 덮는다. 노덕 감독이 고민을 많이 했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한 노덕 감독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여러 매체에서 노덕 감독, 이윤정 감독, 박현진 감독, 이은희 감독을 동시에 다루기도 한다.

함께 활동하는 여성 감독을 응원하고 있다. 내가 앞으로 갈 길에 대해 많은 생각과 영감을 준다. 다들 좋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감독은 성별을 떠나, 자신의 성향에 맞는 영화를 준비한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을 보면 여성 감독보다 영화인이란 생각이 든다. “계급장 떼고 말하자는 것처럼 이젠 영화인이은희로 대답해 달라.

나는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웃음).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감독으로 ‘영화를 한다’는 게 뭘까. 우리(감독과 제작진)는 책(시나리오)을 가지고 스태프와 함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그림, 장면으로 보여주고 소리로 들려준다. 이게 영화를 하는 것이다. 2015년 지난해, 나는 ‘영화를 해서’행복했다.

흥행 때문에 마음고생하지 않았나.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일 게다(웃음). 생각을 바꿨다. 난 이미 정말 행복한 영화를 했다. 하지만 결과에 따라 ‘영화를 잘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 어폐 아닌가. 마치 ‘내가 잘못된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없다. ‘관객 평가’와 ‘내가 영화를 하는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 같다. 만약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유명한 감독이 되고 싶다면 난 실패했다. 그러나 난 영화 <순정>을 찍으면서 행복했다. 나의 생각을 언어로 바꾸고 스태프-배우와 함께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 그렇게 행복하더라. 결과는 낮다고, '순정'은 실패했을까. 그건 아니다. 평가를 받는 부분, 영화 제작 과정에서 목적한 바를 이룬 부분은 전혀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흥행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 차원에서 영화 제작과 투자를 해주신 분께, 다음 작품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순정'으로 이은희 감독의 기량이 한 단계 성숙한 것 같다.

요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관객과 소통하는 차원에서의 고민거리다. 여러 사람과 공감할 화법은 무엇일까. 사람은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친절히 설명할 화법을 연구하고 있다. '순정'으로 책임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요즘 하루일과가 어떻게 되는가. 감독은 휴식기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감독이자 두 딸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다. 오늘 아침에 큰딸이 밥을 안 먹겠다고 해서 혼냈다(웃음). “엄마 빨리 출근해야 해”라며 두 딸을 보내고 사무실에 나와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순정' 후 감독 이은희의 영화 세계는 견고해진 것 같다.

'순정'이 잘됐다면 좋겠지만 현재 결과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 관객이 나를 키우고 성장하게 만들었다. 관객에게 받은 도움을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고 싶다.

오현지 email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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