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남자가 되고, 다시 여자가 되다 ‘남과여’
다시 남자가 되고, 다시 여자가 되다 ‘남과여’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8.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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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앤드크레딧 사진제공=앤드크레딧

한 남녀가 핀란드의 하얀 설원 속에서 우연히 만나 둘 만의 동행을 이어간다. 꿈만 같던 핀란드 설원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들어온 남과 여는 운명처럼 이루어진 또 한 번의 만남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는 뜨거움 속으로 빠져든다. 서로 닮은 외로움은 다시 남자가 되게 만들고, 다시 여자가 되게 만들었다.

영화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그 여자 ‘상민’의 흡연 신으로 시작된다. 왜 핀란드여야 했을까. 감독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남과 여의 사랑이 시작되길 바랐다. 실제로 핀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도 불구, 언어, 문화적인 부분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지는 나라이면서 차갑고 건조하다는 선입견이 있는 나라다. 극중 아이들의 캠핑 때문에 이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남자 ‘기홍(공유)’과 그 여자 ‘상민(전도연)’은 가장 낯선 땅에서 호감을 느끼게 되는 또 다른 낯선 느낌에 마주한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 폭설로 도로가 끊기고 하루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과정에서 익숙함과 낯설음이 지속적으로 교차되면서 감정의 역류가 시작된다. 아무도 없는 하얀 숲 속의 오두막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둘은 깊이 안게 되고,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된다. 이 장면은 남과 여에게 앞으로 들이닥칠 ‘사랑’이라는 감정의 출발점을 잘 표현해준 대목이다.

사진제공=앤드크레딧 사진제공=앤드크레딧

핀란드는 ‘기홍’과 ‘상민’의 처음과 끝을 함께 안고 있는 특별한 장소다. 현지 로케이션 당시 ‘기홍’역을 맡은 공유와 ‘상민’역을 맡은 전도연은 처음의 낯설고 설레는 감성과 후반부의 익숙하고 아릿한 감정을 단 몇 일만에 완성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함, 어려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윤기 감독, 배우 전도연, 공유는 핀란드에서 촬영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레 동화되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꿈속의 한 컷’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의 중반부는 일상을 감정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감정을 느끼는 남녀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상민’의 일상은 극도의 우울증세를 앓고 있는 아들과 건조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남편이, ‘기홍’에게는 피해의식이 많고 정신이 불안정한 아내와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딸이라는 일상이 있다. 이러한 일상에 지쳐가는 남과 여는 8개월 전 핀란드의 판타지 같던 하얀 설원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우연한 조우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끌림 속으로 빠져들고,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며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지속한다.

photographer.이보람 photographer.이보람

부산에서 깊은 사랑을 나눈 후 ‘상민’이 ‘기홍’의 배 위에 누워서 “우리 정말 큰일이다…”라고 했던 말, ‘기홍’이 ‘상민’의 눈을 바라보고 “우리, 돌아가지 말까?”라고 간절하게 했던 말,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상민’이 남편에게 “그 사람 없으면 안 되거든”이라고 했던 말들은 필자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모두의 가슴에 ‘사랑이 주는 안타까움’이라는 씨앗 하나를 톡 던졌을 것이다. 남과 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단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단순히 사고처럼 찾아온 뜨거운 끌림에 매달려 현실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뇌리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나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는, 남과 여가 각자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서로의 마음을 정리해나가는 장면이 그려졌다. 자기 부인의 솔직한 마음을 듣고 가정을 지키기로 한 ‘기홍’과 그런 그를 잊지 못하는 ‘상민’은 각자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되고, 이후 ‘기홍’과 ‘상민’은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 남자는 가정을 지키고 그 여자는 가정을 등진 것은 누가 가정을 먼저 깨느냐 아니냐의 차이보다는 누가 조금 더 절박한 사랑의 감정에 이르렀고 그 사람이 어떤 인성을 가지고 있는지의 차이일 것이다.

혹자는 이런 사랑을 ‘불륜’이라고 치부하고 넘긴다. 하지만 이윤기 감독은 ‘옳다’또는 ‘그르다’라는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판단 이전에 놀랍고 뜨거운 감정들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계기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뛰어넘어 사랑이 시작되는 그 불가해한 순간을 '남과 여'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필자 또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사랑이 주는 아련함을 느끼며 막연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또 한 번 느꼈다.

이보람 boram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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