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로 뒤덮인 회색 도시에서 정의를 찾는 권종관 감독
갑질로 뒤덮인 회색 도시에서 정의를 찾는 권종관 감독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8.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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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9884 <사진제공=NEW>

신작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 영화감독의 참을성에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쓰는 기간만 족히 잡아도 1~3년, 제작 및 후작업만 대략 1년 안팎. 그렇게 투자해 세상에 내놓는 것이 한 번의 고비다.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는데 복병을 만난다. 얼핏 떠오르는 장애요소도 엄청나다. 전혀 예상할 수 없다. 한 치 앞을 모른다. 감독이 어찌할 수 없고 대응할 수 없는 변수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런 두려움을 수년간 안고 작품을 잉태한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부터 극장에서 내려질 때까지. 수년의 피 말리는 시간을 버틴 그들은 진정한 용자다.

또는 알고 있는가. 그렇게 긴 시간을 거쳐 만든 작품에 100% 만족하는 감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은 투자 지원한 이십세기폭스를 극찬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믿어줬기 때문이라고. "전혀 손대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믿어주셨다"는 나홍진 감독의 말. 누군가는 그 말이 부러웠을 테다.

영화는 감독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장치다. 다른 외적인 요소에 의해 자잘한 줄기가 바뀔 순 있으나, 극의 중심에는 감독의 심지가 있다. 감독의 뜻이 오롯이 살아있는 영화는 축복받았다.

이렇게 썰을 길게 풀어놓은 것은, 필자가 권종관 감독에게 수없이 반복한 말이기도 하지만,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재단이 잘 된 영화'임을 전제로 깔기 위해서다. 적재적소에 주연과 조연이 딱 필요한 분량만큼 등장한다. 권 감독이 원하는 의도가 고스란히 살아 날뛴다. 권 감독의 초기 기획이 존재한다. 권 감독의 메시지가 생생한 날 것 그대로다. 싱싱해서 그대로 소화하면 된다. 아무리 먹어도 체하지 않는 영화. 관객에겐 얼마나 큰 기쁨인가.

권 감독의 이력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을 마친 후 스타포커스와의 대화를 공개한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권 감독은 영화 '새드 무비', '이발소 이씨'에서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바 있다. 그러나 권 감독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개봉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렇게 많이 기자님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그의 말은 '제대로 칼을 뽑은 상업영화'로의 첫 관문을 지나고 있단 뜻이다.

영화 제목이 특별한 것 같아요. '특별수사'란 말이 입에 착 붙어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최필재(김명민 분)의 일탈을 그렸어요. 다시 말하면 최필재는 사건이 끝나고 속물 브로커로 돌아간다는 것이죠.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일생에 한 번 정의를 실현할 수나 있을까요? 그것이 일종의 일탈로 연상된 거죠. '번외', '가외'같은 쪽, '엑스트라'같은 의미에서 '특별수사'라고 지었어요. 보통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했다는 뜻이죠.

영화를 보면서 조연이 제 몫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주연을 맡은 김명민 배우와 김상호 배우가 공통으로 한 말이 있어요. "만약 편집한다면 최필재, 권순태에 손을 대라"는 것이죠. 그들이 느끼기에도 극을 끌고 가는 두 사람은 편집해도 남으니까요. 저 역시 조연배우가 누수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이 영화에 힘이 실린다고 생각했죠. 조연 캐릭터가 잘 보이고 살아있길 바랐죠.

자료조사를 많이 하셨어요. 대기업 횡포, 가진 자의 막장 사건이 연속해 떠올랐어요.

경찰, 전직 경찰 출신인 변호사 사무장, 변호사 등 참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참, 재벌가 사모님은 못 만났습니다(웃음).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여사님을 보면 영남제분 사건이 떠올라요.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 정확할 거예요. 시류에서 사회적인 상황을 담았어요. 시기성, 기시감을 줄 수 있는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죠.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요?

최필재(김명민 분)와 권순태(김상호 분)가 마지막에서야 만나는 것이죠. 상관없는 사람들의 인연이 흐름의 중심이죠. 제가 처음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모태가 되는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이 부분이 가장 끌렸어요.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비슷한 소재의 영화와 다른 점도 있어요. 갑과 을의 대결은 베이스에 있지만 이야기 흐름은 인물의 위치와 그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요. 최필재를 중심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관계를 갖느냐 하는 것이죠. 선-악, 갑-을 대결이 아닌 관계에 의해 인물이 움직여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중요한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 최필재부터 알아볼까요?

배우 김명민은 MBC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의사 장준혁을, 영화 '조선명탐정'에서 양반집 자제이면서 탐정인 김민 역을 맡았어요. 특히 '하얀거탑'의 목소리, 눈빛, 말투가 인상적이었죠. 굉장히 신뢰감을 주는 배우였어요. 김명민은 '사'자 직업이 잘 어울리는 배우죠. 이를 테면 '하얀거탑'의 의사 장준혁이나 MBC드라마 '개과천선'의 변호사 김석주 같은 역이요. 그래서 저는 의외성을 주기 위해 사무장 역을 제안했어요.

갑질 끝판왕으로 여사님은 어떠셨어요?

여사님은 자신의 행동이 나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김영애 선생님은 이러한 생각을 공감하셨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그대로, 연륜이 빛나는 연기를 하셨습니다. 갑을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악당은 어떤 성별을 가져야 할까?'가 큰 고민이었어요. 대해제철 특성을 짚을 필요가 있어요. 예컨대 선거를 앞두고 있거나 사리사욕, 야망을 채우기 위한 기업이 아닙니다. 대해제철은 지역토착재벌이고 10대 기업 안에 들려고 애쓰지도 않아요. 선민의식을 즐기는 거죠. '인천사람 반은 먹이고 공부시킨다'는 의식 말이에요. 극단적인 선민의식에 의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런 특징을 고려해서 '연륜이 있는 여자 캐릭터'로 최종 낙점했죠.

여사님 옆에는 박소장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박소장을 통해 고단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여사님 선친 때부터 일했으니 고단하겠죠. 습관적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김뢰하 배우님의 연기에 정말 만족해요. 박소장의 서늘함, 고단함이 잘 드러나서요.

억울한 사형수 권순태와 배우 김상호가 잘 어울렸어요.

제가 기존에 봐왔던 배우 김상호는 '구수한 아저씨'였어요. 그런데 OCN드라마 '특수사건 전담반 TEN' 시리즈에서 백도식을 연기할 때 전혀 달랐어요. '아, 저렇게 멋있는 모습이 나올 수 있구나'라며 감탄했죠. 제가 생각한 권순태는 감정적이거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아요. 당당하게 버텨내죠. 저와 같이 해석해 주셔서 권순태가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최필재에게 권순태 못지않게 양형사(박혁권 분)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여사님이 등장하기 전까지, 최필재의 긴장감은 양형사로부터 나와야 해요. 파트너였고 속칭 '마누라'로 최필재와 양형사는 많은 사건을 해결하죠. 양형사는 승진에 대한 욕망, 최필재는 아버지에 관한 트라우마가 있죠. 결국 양형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필재의 옷을 벗겨요. 이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연관이 돼 정말 도와줄 사람이 없는 권동현(김향기 분)에게 넘어가죠.

아역배우 김향기의 활약이 대단했어요.

제가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권동현입니다. 권동현은 또래 아이에겐 정말 극한 상황에 놓이죠. 하지만 아이다운 순수함도 같이 공존해야 해요. 너무 극단적으로 가면 한쪽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김향기 양이 충분히 고단하고 애잔함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해요.

젊은 형사로 나오는 배우 이지훈이 인상적이었어요.

촬영장에서 친근하게 행동해요. 마지막 장면에 "지금부터요"라는 대사를 치는데요, 제가 촬영장에서 봐 왔던 지훈이랑 닮았어요(웃음).

명불허전 배우 성동일이 김판수를 맡았어요.

김판수는 성동일 배우님의 기존 모습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았어요. 신선하게 가는 인물이 많아서 관객이 공감할 캐릭터가 필요했으니까요. 김판수는 편안한 캐릭터였고, 성동일 배우님이 그 이상을 보여주셔서 감사하죠.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주는 시원한 전개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최필재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도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참고할 수 있는 사건이 정말 많더군요. 이슈가 되지 않은 사건이지만 누가 봐도 억울한, 그러나 재심 청구가 전혀 되지 않은 사건이요. 저는 스위치를 켜서 관심을 끄는 감독이잖아요. 흥행에 성공해서 꼭 속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여사님(김영애 분)이 출소하면서 2편이 시작되면 정말 재밌을 겁니다.

오현지 email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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