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처럼 묵직하고 ‘꽃’처럼 아름답다. "스틸플라워" 박석영 감독
‘철’처럼 묵직하고 ‘꽃’처럼 아름답다. "스틸플라워" 박석영 감독
  • 스타포커스
  • 승인 2016.07.2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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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grapher. 이명수 Photographer. 이명수

박석영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를 읽어주는 시인처럼 묵직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감독이 직접 말하는 '스틸 플라워' 장면 속의 숨은 의미부터 다음 작품 '재꽃'의 힌트까지 들여다본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틸 플라워'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과 독립스타상(정하담) 2관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칸 영화제라고 불리는 15회 마라케시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상을, ‘14회 피렌체한국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까지 수상했다. 이렇게 호평을 받을 줄 예상했는가.

사실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원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초청을 받아서 오히려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상을 받는 기회는 없었다. 때문에 이야기에 호불호가 갈리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마라케시국제영화제에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고.

우리가 상을 받을 줄 알았거나 그렇게 좋은 반응일 줄 기대했다면 서울독립영화제 폐막식 당일 마라케시영화제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놀라웠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정하담의 연기에 대한 측면이 굉장히 크다. 그리고 '스틸 플라워'가 독립영화로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고, 핵심에 가까운 영화로 봐주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독립영화의 핵심에 가깝다는 것은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태도라기보다는 각자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고, 사랑하는 일관된 마음과 움직임들을 좋게 생각해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눠보겠다. 영화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담의 헤어스타일이다. 과거 시트콤에 나왔던 프란체스카가 떠오른다. 답답하게 보일 정도로 길다. 그런데 묶지도 않고 있다.

그건 극 중 하담의 생존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하담은 머리를 자주 자를 수도 없고, 혼자서 잘랐다면 세련되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다가 돈을 벌어서 미용실에 한번 갔다면 그 머리를 다듬지 않고 계속 길렀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우리도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겉모습은 뭔가 덥수룩하고 때가 껴있을 것 같은 느낌 아닐까.

그러다가 하담이 탭댄스 슈즈를 신고 전집에서 일을 할 때 머리를 묶고 있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건 고민하면서 결정했던 문제였다. 그때 하담은 머리를 풀고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면 음식점에서 일하니까 머리카락이 떨어지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하담이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은 영화의 미학을 위한 결정이라기보다는 하담의 캐릭터가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형태인가였다.

전집에서 하담이 의심을 받으며 일방적으로 맞을 때 사람들은 도와줄 법도 한데 모두 모른 척한다. 그렇다고 하담을 욕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그야말로 무관심이었다.

촬영 당시 부산에 있는 연기 지망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에게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뭔가 반응을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했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대로 담으려 했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돕지 못했고 리액션을 보니 겁에 질려있었다.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눈앞에서 2~3분 동안 일어나면 굉장히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장면은 특별히 하담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씬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는 알 것 같다. 흡사 ‘어린 아이가 맞고 있으면 어른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착한 마음이다. 그래서 그 장면이 답답한 분도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장면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더 중요했던 것은 하담이 곤란한 일을 당하면서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견뎌내고 스스로 가게를 나오는 것이다. 하담은 말수는 적지만 자기 원칙을 깨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아이다. 그 원칙은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최소한 몸을 팔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담이 일을 하고 돈을 받지 않은 유일한 곳이 바로 전집이다. 자신이 넘어지면서 깨진 그릇 값이라고 생각해서 돈을 받지 않은 것이다. 하담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쫓겨난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나온 것이다. 이것이 그 장면을 길게 쓴 이유다.

하담이 의심을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인가.

왜 그걸 피해자가 말해야 하나. 오히려 가해자는 설명하지 않고 피해자가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구도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마 주인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야기했다면 틀림없이 받아줬을 것이다. 그런데 하담은 그걸 해명하면서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또 인상 깊었던 것은 하담이 일한 전집 앞의 비닐 천막이다. 하담이 그 앞에 서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있는 장면은 마치 하담이 사회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애잔했다.

그렇게 봐주셨다면 감사하다. 그런 의미로 해석이 되겠다고 생각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영화를 위해 일부러 천막을 친 것은 아니다. 난 꾸미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 한다. 세팅을 하는 순간,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대부분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우리 영화의 미술이라는 것은 실제로 찾아낸 공간이지 만들어낸 공간은 없다. 공간의 의미를 촬영하는 방식 속에서 새롭게 찾아간다.

마지막 장면이 정말 압도적이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하담의 묘한 미소 때문에 더 강한 여운이 남더라.

극 중 하담이 자기 스스로를 무너트리지 않는 사람이길 바랐다. 세상엔 힘든 일도 많고 우리를 납득해주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좋아하는 어떤 것으로 인해 강단을 지키는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 그건 내가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하담의 마지막을 우울한 모습으로 갈 수 없었다. 하담이 ‘탭댄스’를 추는 과정에서 무엇이 해소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생존을 생각했을 땐 매우 무의미하고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을 무리하게 함으로써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지는 느낌을 담으려 했다.

연기한 정하담도 감독과 같은 마음일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정하담도 그런 맥락이었다. 정하담에게 완전히 맡긴 장면이자 표정이다. 정하담이 마음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 크다. 그래서 예측되지 않은 것이고 그 안에 담긴 많은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거센 파도를 맞으면서 탭댄스를 추는 마지막 장면을 무리한 행동이다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물에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는데, 촬영 당시 위험하지는 않았나.

실제 촬영은 화면에서 보이는 것처럼 위험하지는 않았다. 뒤는 막혀있었고 물이 다 빠지는 구조라서 사람이 물에 끌려가는 형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파도가 몰아칠 것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촬영은 아니었다. 정하담이 온몸이 물에 젖어가면서도 탭댄스 스텝을 해냈기 때문에 더 강인한 형태로 보인 것 같다. 그래서 그 과정을 끝까지 찍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깨트리지 않고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행동으로 인해 하담의 행복의 크기도 커졌을까.

자신에 대한 믿음의 폭이 커지지 않았을까. 극 중 하담은 물에 쓸려가지도 않았고 마지막까지 정당했으니까. 누구에게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힘을 얻는 사람은 ‘사막에서도 필 수 있는 꽃’이다. 그런 면에서 '스틸 플라워'는 모든 삶의 에너지를 자기 안에서 찾아내기 때문에 ‘자립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담의 행복이라는 게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다를 것 같기도 하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어떤 마음이었으면 하는가.

요즘은 행복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기면서도 가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결핍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진짜 좋아하는 무언가를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강인하게 살아가기에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 무언가는 우리 영화에선 ‘탭댄스’이고, 나에겐 ‘영화’다. 누군가에겐 봄날의 산책일 수도 있고, 혼자 펼쳐보는 책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면 한번 돌이켜보되 어려운 시대를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Photographer. 이명수 Photographer. 이명수

'스틸 플라워' 이후의 하담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가게를 끊임없이 전전하며 탭댄스 슈즈를 계속 닦으면서 지냈을 것이다. 다만 도시가 아닌 더 편안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다음 영화 '재꽃'의 이야기다.

안 그래도 '재꽃'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조금만 더 공개해 줄 수 있나.

'재꽃'은 '스틸 플라워'에서 옆으로 누워서 촛불을 바라보고 있는 하담의 눈을 보고 떠올린 작품이다. 유일하게 캐릭터의 한순간을 보고 생각하게 된 작품이다. '재꽃'은 유사 가족이긴 하지만 가족 드라마다. 하담이 시골에 사는 어떤 아주머니의 집에서 일을 해주는데 동네 사람들은 딸이라고 알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담과 10살의 하담이가 만나는 판타지가 가미된 영화다.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을 통해 세 가지 이야기를 보여준 하담을 완전히 보내주는 느낌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하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오가는 변주라고 생각한다.

영화 '들꽃', '스틸 플라워', 그리고 '재꽃'까지 꽃 시리즈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감독에게 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처음 본 꽃은 그것이 피기 전까지 무슨 꽃인지 예측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꽃은 이미 씨앗 안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치열하게 생존을 하면서 꽃을 피워내기에 그 아름다움과 생기가 특별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시로 보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에겐 줄기만 징그럽게 올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생명은 각자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꽃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제일 좋은 것 같다.

꽃 시리즈의 첫 작품 '들꽃'을 찍게 된 시작은 무엇이었나.

금요일 밤 사람들이 붐비는 홍대 놀이터에서 빈 병을 던지는 여자아이를 보면서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병을 한 개 더 던져달라고 가져다주기도 하면서 응원을 보냈다. 그 아이는 병을 깨트리다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그때 어떤 아이가 우리를 위로하는 이야기가 보고 싶었고 '들꽃'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위로받고 싶었던 건 나였을 수도 있겠다.

꽃 시리즈를 모두 함께한 배우 정하담에게 이끌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정하담이 '들꽃' 때 스스로 찾아내온 인간 하담의 캐릭터에 끌린 측면이 더 크다. 물론 배우 정하담이 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정하담이 찾아내 준 캐릭터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지 궁금한 지점이 있었고 그 자극과 영감으로 영화를 찍은 것이다. 다들 정하담과 계속 같이한다고 하는데 겨우 두 편의 영화를 찍었을 뿐이다. 정하담도 아마 그렇게 인식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정하담은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는가.

정하담이 마르고 여리게 생겼지만, 헌신적이고 철저한 태도를 보면 끝까지 싸우는 전사 같기도 하다. 연기할 때는 정직하고 선명한 부분을 가졌다. 연기를 연기해서 스스로를 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하담은 이미 좋은 배우이기에 더 주목해주셨으면 한다.

MBC예능 '라디오스타'에서 이해영 감독이 정하담을 극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혹시 나만 알던 보물을 빼앗긴 느낌이 들진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웃음). 나중에 정하담에게 들었는데 '라디오스타'에서 '검은 사제들'의 소머리 무당 이야기 뿐만 아니라 '스틸 플라워'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하셨다고 들었다. 이해영 감독은 정하담을 띄우려는 의도도 아니고 그저 영화를 좋아해서 한 이야기라는 걸 알기에 감사하다. 또 현실적으로는 적은 예산 안에서도 홍보나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나. 이해영 감독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빚을 진 셈이 됐다.

캐릭터를 입혀보고 싶다고 생각한 배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 김혜자 선생님과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 그분은 배우로서 위대한 성정과 자기 예술에 대한 정확한 자존감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한다. 강인하고 섬세하셔서 마음의 깊이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천진난만함과 선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배우들을 내가 상상하는 영화 속에서 균형을 맞출 자신이 아직은 없다. 난 배우도 동등한 예술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디렉션을 주지 않고 스스로 찾아오라고 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거나, 이미지가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과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재꽃'을 완성하고 아프리카로 떠난다고 들었다.

프랑스 영화감독 겸 프로듀서 바스티안 메르손과 함께 종군기자의 여정을 다룬 영화 <포토그래퍼>를 찍기로 했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지낼 것 같다. 한국에서 지내는 것과 별 차이 없이 익숙하게 지내면서 카메라 한 대만 들고 작업을 하고 싶다.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꽃'을 끝내고 나면 세 작품을 함께 한 아이(하담)를 이제 보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도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막 세 편의 영화를 만든 정도라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영화가 조금이라도 잘 된다면 독립영화라고 이름 붙여진 영화들도 투자사들에게 상업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인식되지 않을까 한다.

이은원 star-flow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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